2017. 1. 10. 10:18

- 회사에서 나로 하여금 눈물까지 흘리게 한 사건은 진짜 일같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어제 퇴근길에 B에게 그 일에 대해 얘기하고서는 오늘 아침에 부끄러웠다. 아, 남들이 들으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나는 그걸로 울었다고 얘기하다니 부끄럽다.. 게다가 내가 다니는 회사가 기업분류로 대기업이고 내가 차장씩이나 됐는데, 그런데 고작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았다고 하다니. 너무나 사소한 일.. 어제는 너무나 스트레스 받아서 일 분에 한 번씩 그만둘까 고민했고, 그래서인지 집에 돌아와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일찍 잤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 어제의 일이 너무나 부끄럽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물론 나는 지금도 그 일이 잘못됐고, 시간을 다시 돌려도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 생각하고, 여전히 내게 그 일은 스트레스가 맞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일은 얼마나 우습게 보일것인가, 이런 일로 스트레스 받다니 부끄럽다, 하는 생각이 내게 든 것이다. 이런 일은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것을...부끄럽다..


오늘 아침 B 에게, 어제 너에게 이런 얘기를 한 게 부끄러웠노라 말했더니, 그러지 말라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면 우리에게 뭐가 있겠냐, 서로의 사소한 일들에 대해 얘기하는 게 사실은 전부가 아니겠느냐 말했다. 너는 기꺼이 화낼만했고, 스트레스 받을만했고.. 나 역시 너에게 그런 일들을 많이 얘기하지 않냐, 하더라. 부끄러웠지만, 다정했어..


부끄러운건 부끄러운거고 화나는 건 화나는 것.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일로 화가 나있고, 그래서 보쓰의 얼굴을 꼴도 보기가 싫다. 이렇게 한 공간에 있는 게 숨이 막힐 지경이다. 말도 섞기가 싫은데, 오늘 오전만 해도 벌써 보고 한 건 들어갔다왔고 결재도 한 건 들어갔다 왔다. 쓰벌..인생... 하기 싫은 것 하고 살아가는 것이 결국 인생이란 말인가......... 결재 들어가기 전에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하기 싫은 것도 하고 사는 게 인생이여... 하고. 하아-



- 어린 조카와 함께 살면서 그 조카가 너무 사랑스러워 행복해하는 여자1이지만, 늦은 퇴근을 하고 가서도 놀아주는 것은 힘들다고, 그럴 때 그냥 제엄마가 봐줬으면 좋겠는데, 제엄마는 조카랑 하루 종일 있었던 터라 여자1이 퇴근하면 자신의 시간을 갖고 싶어한다는 거다. 이 일은 둘 다를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이 얘기를 들으면서 새삼 함께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했다.

단순히 남자들이 가사노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도 편견에 가득 차서 '여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은, 다시말해 동성결혼은 이성 결혼에 비해 마찰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여자들은 가사 노동을 더 잘한다는 걸 전제한다는 것일테다. 여자랑 여자가 연인이 되어도 싸우고 화해하고 서운해한다. 마찬가지로 함께 산다면 거기에서 분명히 마찰이 발생하고. 가사노동을 예로 들어도,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하고 누군가는 설거지를 해야하고 누군가는 분리수거를 해야하는데, 이걸 늘 한 쪽이 도맡아 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마찰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다른 역할을 맡아서 서로 분리가 잘 돼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바이오리듬이나 컨디션이라는 게 늘 좋지만은 않아서, 집에 돌아가 언제나 스마일한 상태가 될 수는 없잖은가. 여자1도 마찬가지. 정말 예쁘고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야근 후에 돌아가서는 본인도 쉬고 싶었던 거다. 그럴 때는 '나도 피곤해!'란 말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런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건 어느 한 쪽이 못되거나 못나거나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각자는 좋은 사람들이지만, 이 좋은 사람이 언제나 좋은 상태로 함께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전에 한국 영화 [맛있는 섹스] 였나, 정확히 제목이 저거인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보면 여자가 퇴근하는 남자를 기다리며 선물을 준비해 내미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남자는 여자가 기대하는 만큼의 반가운 리액션을 하지 않는 거다. 나는 너를 기다리며 이 선물을 준비했는데 네 반응은 왜 그모양이냐며 서운해하고, 남자는 이에 밤샘 작업인가, 여튼 업무상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화내며 얘기하는 거다. 여자는 그때 '말을 해야 알지, 니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걸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라고 해서 싸움이 일어나는데, 아아, 아무리 좋아하는 사이어도 열이면 열 다 기분을 짐작하고 맞춰주고 이해할 순 없는 노릇.  오늘 야근한 후에 들어가 조카랑 놀아줘야 했던 여자1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사는 거 참 쉽지 않네, 했더랬다. 물론, 그 시간을 제외한 아주 많은 시간들은 사랑과 기쁨이 넘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렇게 피곤한 시간을, 아 오늘은 이러면 정말 지치는데, 하는 시간을 넘길 수 있는 것이겠지.



- 결국 위기의 순간, 상황이 나빠진 그 순간에 서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오늘도 누군가의 트윗을 보면서, 당신이 그렇게 힘들어하면 당신의 상대도 힘들텐데,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나는 네가 아니고 너 역시 내가 아니니 우린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가장 먼저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함께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유지하고 싶은 관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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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