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 1은 자신의 지금 여자친구와 거의 10년째 연애를 해오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결혼은 이사람하고 하겠지, 라고 생각한다는데, 그 긴 연애기간 동안 다툰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 다툰 것에 대해 얘기해줬는데, 어떤 사연인지는 프라이빗 한 것이니 패쓰하고, 그 과정에서 여자는 화를 냈고 남자는 '왜 그걸 이해 못하지?' 라고 생각했다는데, 전화 상으로 얘기하다가 안되겠다, 얼굴보고 얘기하자, 하고는 당장 택시 타고 달려가 얼굴을 봤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아 이건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잘못했다고 빌었다고.
왜 이 얘기를 나랑 하게 됐었는지 모르겠는데, 아, 올리브 키터리지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에 대해 얘기해다 그랬다. 맞다. 그 얘기 하다가, 이성을 도와주는 것을 어디까지 해야하나, 그 한계는 어디인가, 얼마만큼을 해야 내 애인이 화나지 않나, 이런 거 하다가, 내가 '그건 느낌으로 정하는 거 아닐까' 같은 얘기하다가, 남자가 자신이 도와준 이성에 대해 여자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여자친구가 벼락같이 화를 냈다, 뭐 이런 거 얘기하다 저 얘기로 연결된 듯. 어쨌든 그 얘길 듣다가, 아, 이렇게 화가 났을 때 당장 달려가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이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보고 얘기할 수 있다는 거, 그게 가능하다는 건, 그 자체로 큰 것 같다, 는 생각이 든거다. 만약 B 와 나도 혹여 서운하거나 화가 났을 때, '야 만나서 얘기해'가 되는 거리에 있었다면, 그렇다면 모든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던 것. 그렇다면, 그렇다면 우리도 다르게 풀어갈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다가 멈칫, 아, 만약 그랬다면, 언제든 쉽게 얼굴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면,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문제였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 혹은 연애에서 생기는 문제라는 건, 그 건건이 다 저마다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거구나. 멀어서 해결을 못한 게 아니라, 멀어서 문제가 생겨버린 거야. 그렇다고 가까이 있는 관계 혹은 가까이 늘 붙어 있는 연애가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관계에서는 거리가 아닌, 다른 문제가 언제든 비집고 들어올 수 있으니까.
톨스토이가 그러지 않았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 안나 카레니나, 문학동네, P.11)
- 남동생과 남동생 여자친구 사이에는 상견례 얘기가 오가고 있다. 결혼은 내년을 생각하는데 상견례하자고 여자쪽 부모님이 먼저 말한 것. 나는 남동생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고, 우리의 우애는 대단한 것이었고, 며칠전에도 '아 얘가 있어서 너무 좋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남동생이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이 모든 게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지면서 너무 서운한거다. 남동생 결혼하는 거 싫다고, 장가보내는 거 싫다고 말하면, 너무 꼴보기 싫은 시누이가 될 것 같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면서, 아, 얘 그냥 결혼 안했으면 좋겠어, 라고 혼자 못난이처럼 속으로 생각했는데, 며칠전에 여자1에게, '너무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지만, 나 사실 남동생이 결혼 안했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자 1은, '이해해, 나는 내 남동생이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아무에게도 말 못해' 라고 하더라. 아아, 미치겠다 이런 기분.
어제 회사에서 모멸감을 느끼고, 그 틈틈이 그리고 집에 가서도 남동생이 내 기분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서, 아, 얘 장가가고나면 나에게는 이제 회사에서 느낄 모멸감만 남을텐데, 내가 그걸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 그러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새끼 장가가고 나면, 나는 외국가자...한국을 뜨자......한국이 의미가 없어져........ 역삼동 사주에서는 언제 가라 그랬더라. 50살에 외국나가 산다 그랬던 것 같은데, 인생, 그냥 내가 운명 막 바꿔버려야지.... 뜨자, 한국을 뜨자......
하하하하하.
- 어제 집에 돌아와 씻고 나오니 남동생이 맥주를 꺼내서 까가지고 잔에 따라주었다. 그러다 내가 인바디 한 얘기 했다. 내 근육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라는 얘기를 했더니,
"근육돼지인 줄 알았는데 그냥 돼지야?"
이러는 거다. 아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그랬다.
"응. 근육돼지인 줄 알았는데 체지방 돼지였어."
이러고 둘이 낄낄대고 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남자1로부터 '니 글 사랑해', '니가 화났을 때 쓰는 글조차도 좋아' 라는 말을 들었다. 남자2는 내게 '알라딘에 있는 글들 다 읽는데 더 읽고 싶다, 개인 블로그 주소 알려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싫다고 했다. 안알랴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자1은 내게 '힘차게 살아줘서 고마워' 라고 했다. 이 말들에 마음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