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1. 09:48

4월

                                    -이응준

내가 기차같이 별자리같이
느껴질 때
슬며시 잡은 빈손을 놓았다.


누군가 속삭였다. 어쩔 수 없을
거라고. 귀를 막은 나는
녹슨 피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너의
여러 얼굴들을 되뇌었다.


벚꽃 움트는 밤 아래
무릎 꿇었다.

어쩔 수 없었다. 




- 벌써 4월이라니, 시간이 참 빠르다. 5일은 여동생과 제부의 결혼기념일인데, 이번 해가 벌써 여덟번째라 했다. 아, 내동생 잘하네, 잘지내네, 새삼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십년 이십년 잘 지내는 부부들도 있지만, 사람이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던 다른 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아는 바, 8년간 잘 지내온 게 참 기특한거다. 쓰다가 생각했다. 아, 예쁜 꽃바구니나 꽃다발 하나 보내줘야겠다. 음, 바구니는 좀 아까워, 꽃다발을 보내야겠다. 5일에 맞춰 받을 수 있도록 해야지.


- 여동생이 같이 근무하는 학교 선생님들 몇 분께 내 책을 선물로 드렸었는데, 그 책을 읽으신 분들의 반응이 좋아 여동생으로서도 뿌듯한 것 같다. 어떤 선생님께는 내가 만든 엽서도 같이 드렸다고 했다. 어쨌든 그중에 읽으신 분이 일전에 교사연수때 부르면 안되겠냐고 하셨다는데, 그때는 그냥 웃어넘겼더랬다. 그런데 어제 다른 선생님이 오셔서는 한 번 모시고 싶다고 했단다. 국어쌤이라는데, 교지편집하는 학생들에게 미리 읽게한 다음에 작가와의 만남을 좀 하게 하고 싶다고. 월요일 저녁 다섯시 정도면 어떻겠냐고 했다는데, 여동생은 '언니가 직장인이라 시간맞추기도 힘들거고 또 거리도 너무 멀다' 라고 했다는데, 나도 처음엔 당연히 못하지, 생각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으음, 할 수도 있지 않나? 싶어지는 거다. 게다가 학생들이라면.. 뭔가 더 멋지다. 학생들을 독서의 세계로 이끌고 싶어! 갑자기 욕망이 자라기 시작했다. 독서를 하면서 페미니즘 얘기도 할 수 있을테고, 앞으로 선거권 생길 아이들이니 투표에 대해 말할 수도 있을거고, 이거저거 다 떠나서 소설 무시하는 사람들을 욕할 수도 있을 거고...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거다. 그래서 여동생에게 말했다. 음, 그 국어쌤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라면, 나에게 뭘 바라는건지 내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내가 할 수도 있을거란 생각도 들어...라고 소심한 얘길 해두었다. 억지로 묻지는 말고 혹여라도 어느날 둘이 있게 된다면 슬쩍 물어보라고, 그게 진지한거였는지. 뭔가 자신감 가질만한 말들을 떠올렸다. 회사에서 직원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설명 듣고 이해를 못하면 몰래 내자리로 찾아와 자기한테 설명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던 일들 같은 것, 직원들에게 말하기 교육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어느 은행 지점장의 말 같은 것. 평소 이런 말을 들어왔다면, 음, 게다가 책에 대한 거라면, 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다가...아....갑자기 이걸 너무 잘하는 나를 스스로 발견하고 이걸로 돈 벌고 싶다, 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라고 썼지만 이러다 또 금세 자신감이 없어져서 '아니야, 내가 무슨...'하고 뒷걸음질 치겠지...  어쨌든 계속 생각해봐야겠다. 뭔가 나쁘지 않잖아? 사실 좀 멋있는데?

라지만, 책 한 권 써놓고 이걸로 너무 우려먹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빨리 두 번째 책을...하아-


- 오늘 여자직원1과의 대화

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쟁반국떡에 쫄면사리 넣은거고, 세상에서 제일 싸기지 없는 놈은 저 놈(=ceo)이고,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사람은 (지금은 아닌)내 남친이다.

여자직원1: 차장님, 지금 랩하신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빵터져서, 아니, 나는 랩 스타일 아니니까, 곡을 붙여볼까, 했다.



- 쟁반국떡이란 건 '스쿨푸드'의 메뉴중 한가지인데, 여기에 쫄면사리를 넣으면 그렇게나 맛있다. 진짜 핵좋은맛... 요즘엔 이걸 먹는 게 너무 좋다. 사진은 아래와 같다.




- 오전에 외근 다녀오면서 약국에 들러 약을 사왔다. 하아- 속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것 같다. 약사는 내게 술을 마시지 말라며, 오늘도 술 마시는 건 아니죠? 물었고, 나는 '오늘도 마실거에요' 했다. 아하하하. 술은 술대로 먹지 게다가 쟁반국떡+쫄면사리에 빠져있지, 아아, 내 속이라고 이걸 어떻게 견디겠나. 미안하다, 속아. 내가 이번주까지만 너를 막대할게. 다음주부터는 살살 달래주고 돌봐줄게. 아름다운 속으로 만들어줄게. 쓰담쓰담 해주고 달콤하게 해줄게. 이번주까지만 잘 견뎌줘.



- 새로 산 원피스는 가슴이 돋보이는데, 오늘 처음 입고 온 나를 보고 여자직원1이 '가슴 진짜 크네요' 했다. 그래서 내가 '어, 나도 오늘 보고 놀랐어' 했다. 아하하하하. 나는 아직도 나한테 이렇게 가끔 놀라곤 하는 것이다.



- 어제, 새로 산 옷들을 입어보면서 남동생을 불러 야 어때, 물어보고 그랬는데, 남동생이 내게 그랬다. "이제 우린 서로만 애타게 찾는구나" 하하하하하. 그 말에 빵터져서 웃었다. 남동생도 며칠전에 애인하고 헤어졌다. 네 속이 말이 아니겠구나 싶어, 계란후라이 두 개만 해줘, 하는 부탁의 말에 응 그래, 하면서 해줬다. 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는 '국 데워줄까?' 했다. 새로 들어간 직장에 연차를 낼 수 있다면 친구가 있는 태국에 놀러가고 싶다고 하길래, '나랑 같이 가자' 했는데, 단번에 '싫어' 란 대답을 들었다. 나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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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