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했던 어제, 그렇지 않은 오늘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친구가 쓴 글을 읽었다. 친구는 글속에서 나의 미숙함을 얘기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은 인간해방으로부터 시작된 거라는,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남녀라는 진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내 이해가 부족하다고 했다. 글속의 나는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글은 정확했다. 나는 공부한지 얼마 안돼 모자랐고 서툴렀다. 서툴러서 섣부르게 다다다닥 하기도 했을터. 내가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이라 내가 좀 더 공부하고 좀 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아, 이친구는 그냥 나를 무식하게 보고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이 얘기를 나누고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야 이런 글을 쓴다는 건, 이 친구에게도 이 일이 계속 남아있기 때문이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일단 나는 친구에게 사과했다. 내가 서툴렀고 배움이 부족한 건 맞다, 이 과정에서 너에게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면 사과한다고 말했다. 친구는 내게 너는 대체적으로 온건하고 책읽고 생각하는 태도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고가는 댓글은 나쁜 말이 결코 없었지만, 나는 우리 사이의 이 먼 거리를 좁힐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아침일찍에 그 글을 읽고 잠이 오질 않았다. 머릿속에 아주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인간해방?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공부하는 게 맞다. 내가 부족한 건 누가봐도 사실이다. 일단 내 스스로가 안다. 그렇지만 객관성, 이것은, 내가 여자라는 입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나아간, 더 위에 있는 성질의 것인가? 여기에 대해 진짜 내가 머리터지게 고민했다.
객관성은 가장 위에 있는 개념인가? 이게 옳은가? 그러나 이게 가능한가? 사람에게 객관성이 있을 수 있나? 객관성을 자꾸 말할 수 있는 건, 어차피 본인이 남자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이미 그쪽의 입장에서 객관을 얘기하긴 쉽지 않나? 객관이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이게 진짜 더 위에있나? 내가 이미 한쪽 진영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눈이 멀어 객관적이 될 수 없는건가? 객관은 궁극적 시선인건가? 지향해야 하는것인가? 그래야만 페미니즘은 앞으로 갈 수 있을것인가? 이친구가 지금에와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내내 이것에 대해 생각했을 터. 우리의 대화에서 받았던 상처를 이 친구도 받았던건가? 만약 다른 누군가가 그런 글을 썼다면 나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을텐데, 친한 친구라서, 또한 내 얘기를 하고 있어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저런 글을 썼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또 아파왔다. 너무 아프고 슬펐다.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아 일어나서는 밥을 먹고 까페에 가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일자산으로 향했다. 향하면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서 자꾸만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 같아서, 아, 생리전증후군이 지금은 아닌데, 그런데 생리전증후군약을 먹으면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이 우울함을 그냥 냅두면 나 진짜 큰일날 것 같은데, 싶어서 걷다가 가장 먼저 보이는 약국에 들어가 우먼스타이레놀 주세요, 했다. 그리고는 바로 앞 편의점으로 가 물을 사서는 꿀꺽, 타이레놀을 삼켰다. 머릿속에 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미숙해서 실수한건가? 이 친구와 이 시선을 좁힐 수 없나? 나는 결국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그렇지만 객관적이라고? 그게 더 위에 있는게 맞아?
하루종일 나는 이 감정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싶었고 그래서 A와 M과 대화를 나눴다. 두 친구 모두, 특히 A 는 여기에 대해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중이었다. A 는 객관성을 말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남자들에게 인식시키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남자들도 이런 환경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나 역시 그점에는 동의했다. A 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공부한다 말했고, 그래, 나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못된 걸 알리고싶어해서, 그래서 이렇게 힘이든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래서 힘드나? 페미니즘 공부하기 전에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왜 공부하고나서부터 힘든거지? 공부하지 말까? 공부를 하되 밖으로 꺼내질 말까? 엊그제 통화한 친구는 '니가 왜 교육을 시키려하고 책임감을 느끼냐' 라고 했는데, 역시 궁극적으로는 혼자서 공부하고 혼자만 깨닫는게 맞는걸까? 그러면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나의 고민을 듣고 M 은 '아니,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도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성장통인것 같다, 시행착오인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며,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것 아니겠냐는 대화들을 우리는 나눴다. 공부하고나니 더 힘들어지고, 이렇게하다가는 종국에 내 주변에 남아나는 남자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입을 닥쳐야 하나? 그렇지만 왜? 잘못된 것을 나만 아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혼자 잘하는 건 무슨 의미지? 일단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잘못된 걸 바로잡을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 중요하지 않나?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자 라고 우리는 결론을 내렸는데,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 아직 문제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문제야'라고 꺼내들 수 있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잘못하고 있나? 이천번을 생각해도 나는 내가 맞는것 같은데? 객관성은 진짜 아닌데? 이건 정말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보고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건 이해가 안되는데? 근데 이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 힘들어야하지? 그냥 쟨 저렇고 난 이렇다, 고 생각하고 넘기면 그뿐 아닌가? 왜 이렇게 아프지? 왜이렇게 슬프지? 나는 지금 되게 시간낭비 하고있는 거 아닌가? 머리랑 가슴이 막 폭발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Y 님, 미숙이랑도 대화를 나눴다. 또 이곳, 내 일기장에서 측근님과 T 님의 댓글을 보았다. 고마웠고, 진짜 눈물이 핑돌았다. 나는 여전히 객관성은 받아들일 수가 없고, 사람이 객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사귀는 남자가 객관성을 내게 계속 주장한다면 되게 힘들어질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사귀는 남자는 내게 객관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러다가 내 주변에 남자가 남아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다가, 아니 그런데 굳이 남길 필요가 무언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들어주고 나를 이해하고 응원하며 지지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친구가 내게 답답함을 느끼고 나 역시 똑같은 바를 느꼈고, 이 사실이 무척 아프다는 것에는 틀림없지만, 하루종일 머리 터지게 고민해서 얻은 결과가, 나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또 이루고자 하는 바대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족하지만 내가 맞는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루종일 질질 짜면서 생각해봐도 내가 맞는 것 같다. 친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서 들으려고 해본건데, 그래서 자꾸 머리터지게 고민해본건데, 그렇다면 내가 친한 사람들이 틀릴 수도 있는 거잖아. Y님은 하던대로 계속 해달라고 했다.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정리되기도 한다고. 그렇다면 이 마음 아프고 슬픈 일은 내게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는가, 라고 돌이켜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건 결과적으로 내게 도움을 줬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내가 아팠듯이 친구 역시 내 글에서 자신을 보며 답답하고 불쾌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글을 쓸 때 좀 더 신중하게 쓰자는 결심을 했다. 그러니 내가 이 일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다. 또한, B 가 내게 말한것처럼, 말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유연해지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것도 이번에 내가 깨달은 바다. B는, 내가 공부하고 생각하는게 좋다고 말했다.
이번 일이 있어서 나는 내 공부가 부족하다는 걸 확실히 자각했고, 글 쓰는데 더 신중하자는 생각도 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는 있고 또 들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말이 다 맞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내게 객관성은 궤변으로 들리고, 그것이 더 나은 경지에 이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더 공부를 하고 더 생각을 하다가 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다가 내가 '아 중요한 건 객관성이야' 라고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객관성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친구는 그런 글을 남겨 불쾌하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결과적으로 좋았다,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마음이 아픈건 사실이었지만, 그러므로 나는 좀 더 공부할 생각을 했다, 라고 말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친구는 또 인간해방을 들고 나왔다. 이게 중요한거라고, 그래서 내가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객관성을 또 얘기해...그래서 내가 우리 이렇게 얘기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니가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부족한 건 사실이니 공부하겠다고 했다. 친구는 여전히 나를 답답하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나 역시 친구가 답답했다.
A와 M 과 Y 님과 미숙이와 얘기를 하면서 또 측근님과 T 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나는 바닥에서 올라왔다. 밤이 되었을 때는 기분이 나아져있었다. 게다가 B 는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라며 폭풍스윗한 말들을 속삭여줬다. 아침에 일어나니 나는 가뿐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존나 떠들기로 했다.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면 잘못됐다고 존나 지적질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사람은 자기 경험과 거리 개념이 일치한다. 인식론적 혼란이 없다. 이때 사람들은 세상과 자신이 일치한다고 느낀다.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거나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든 위치에 서게 된다. 익숙하고 당연하니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살면서 자기 경험이 보편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그저 서울에 산다는 사실뿐이다. 우연히 얻은 기득권과 이 사실에 대한 무지와 둔감함이 몸과 생각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p.9)
경계를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fo oneself) 즉, 여행이다. 근대의 발평품인 이성(理性)이 정적이고 따라서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p.3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