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에너지

ssabine 2015. 8. 30. 22:49

- 금요일엔  D를 만났다. 여러 좋은 얘기를 많이 듣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참치집에 남은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어서, 어어, 뭔가 우리도 정리해줘야 할 분위기인데, 하고 핸드폰을 보니 벌써 열시 반이 넘어있더라. 아아, 시간이 이렇게까지 된 줄은 몰랐어. 우리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헤어졌다.

굉장히 똑똑한 친구라 늘 '왜 나는 이제서야 하는 생각을 저 친구는 저렇게 일찍 알았을까' 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색다른 생각을 들었다. 내가 이 회사에서 임원이 되기전에 퇴사하고 싶다고 하자, 임원이 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거다. 어차피 누군가가 임원이 되어야 할거라면, 네가 되는 게 더 낫지 않겠냐, 라고 한 것. 네가 있는 남초집단에서 한심한 임원들의 밑에 있느니 너를 임원으로 두고 있다면 밑에 직원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느냐, 는 취지의 말이었다. 나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뭔가 솔깃해졌다. 너는 화나는 상황에서 뛰쳐나가는 게 아니라 견디면서 그걸 바꾸려고 하니-지난번 성추행 사건에 대한 대처를 언급하며-, 너가 임원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고 하더라. 아, 이 말은 그날 D 가 한 숱한 좋은 말들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말이었다. 그래, 어쩌면 그게 나을 수도 있겠구나. 그래, 어쩌면 임원이 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어, 그게 내가 뭔가를 바꾸려고 하는 것에 더 유리할 수도 있겠어, 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아, 어떻게 이 친구는 이런 생각을 했지? 하면서 새삼 감탄했다.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 친구인데, 나는 또 거기까지 생각해보질 못했으니. 단순히 임원이 되기 싫다, 라고만 생각했으니. 그렇다면 나는 오래오래 이 회사를 다니면서 임원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관두고 안관두고 어떻게 되든지간에, 생각은 해볼만한 게 아닌가. 그래서,

 

아, 나는 진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다, 라고도 느꼈다. 나는 이걸 정말 좋아해.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렇게 내가 모르던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역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받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또 몸 속에 막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비염 때문에 코가 막혀 코가 빨개지도록 코를 풀어야했던 건 안습이지만 ㅠㅠ 이렇게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또 하는 것이 너무 좋다, 나는!!!!!

 

 

- 토요일에는 포르투갈에 함껴 다녀온 친구1과 친구2를 만났다. 여행 뒷풀이 하자며 만난건데, 여행 다녀오고나서 내가 술을 많이 마신 날이 거의 없었으므로 이 날 술을 가장 많이 마신 날이 되었다. 그건 친구 1,2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렇게 둘은 술 얘기를 하다가 친구2가 '나는 다락방을 만날 때만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고 했고, 친구 2가 그 말을 듣고 '친구들과는 이렇게 많이 안먹는데 다락방하고 먹으면 술이 잘도 들어간다'고도 했다. ㅋㅋㅋㅋ 아 뭔가 씐나! 그래서인지 나는 혼자서 소주 두 병을 마시는 기록을 세웠다. 소주는 한 병이 주량인데, 내가.

 

여행에서 좋았던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함께 여행을 했던 시간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다음의 만남도 기약하게 됐다. 친구2의 남동생이 내년 3월에 영월에서 결혼을 한다고 하길래, 친구1과 나는 스맛폰 일정에 적어두고는 영월에 가,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렇게 벌써 내년 3월의 일정을 잡아두었고, 10월중에는 함께 국내여행을 하자고도 계획해두었다. 9월의 어느 한 주말에는 타버나 드 포르투갈에 가자고도 말해두었고. 그자리에서 스맛폰의 달력을 보며 스케쥴을 잡고 있는데, 스맛폰을 보지도 않고 일정을 적지도 않은 친구2는

 

나는 아무때나 다 돼요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그렇게 씐나게 이야기하고 좋은 시간이었는데, 우리의 분위기가 파할무렵, 각자 황태며 쥐포, 골뱅이를 포장해가기로 했다. 집에 있는 남동생에게 황태 포장해가까? 물으니 좋다고 한다. 맥주도 냉장고에 부족하니 올 때 좀 사오라고. 나는 동생과 술 마실 생각에 신나서는 ㅋㅋㅋ 빨리 가고 싶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성을 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택시를 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택시비 졸 나옴 ㅋㅋㅋㅋㅋㅋㅋㅋㅋ부자년이냐 ㅋㅋㅋㅋㅋㅋㅋ 술마시려고 택시타서 택시비 졸 쓰고 술 사고 황태 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부자년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썼지만, 생각해보니 이건 이성을 잃은 게 아니라, 이성이 너무 있었던 거다. 그래서 나름 계산하고 선택을 한거야. 남동생하고 술마시고 싶다-그러려면 빨리 도착하고 싶다- 그러려면 택시를 타야한다!!!

 

멋져!!

 

 

역시 나는 좀 똑똑한 것 같다.

 

 

 

- 아, 2016년 달력을 검색해보니 내년 설(구정)연휴가 2/6-2/10까지이구나. 총 5일을 풀로 쉴 수 있구나. 흐음. 그렇단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