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이 쓰였겠지요

ssabine 2016. 9. 20. 23:07

일전에 나도 연애중이고 M도 연애중일 때, 그때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이제 앞으로 살면서 더이상 연애는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하다, 더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이만큼으로 됐다, 고. 우리 둘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하면서, M은, 지금의 연인이 설사 자기를 떠난다 해도, 주변 친구들과의 동료애와 자기 고양이들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가는 일이 즐거울 것 같다고 얘기했다. 나 역시 그렇게 말했다. 주변에 친구들만으로도 내 일상은 충족된다고, 이 연애가 끝난다고 해서 다른 연애를 더 하진 않아도 될 것 같다고. 그 뒤로 시간은 흘렀고 나의 연애는 끝났으며, 나와 이야기했던 친구는 아직 연애중이다.


그런 생각을 요즘에도 했다. 나는 지금 나를 둘러싼 사람들 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이정도면 괜찮은 삶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연애라면, 이미 해볼 건 다 해본 것 같으니, 더 없어도 좋았다. 그러나, 내가 봄씨에게 거절을 말한 이유는 그것은 아니었다.


내가 대답을 뒤로 미룰수록 봄씨의 희망은 자라고, 그것을 보는 일은 어려웠다. 그러니까 어느정도까지는 나도 그것이 희망이 될지 절망이 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내가 확신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게 된 건, 며칠전에 텔레비젼에서 보여준 [뷰티 인사이드]가 계기가 되었다. 그 영화를 보고 자막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그래, 거절을 말하자, 고 생각했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 연애를 할 수 없다, 고 확신했다. 내가 이 연애를 하기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결국 둘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봄씨가 좋고, 봄씨가 좋은 사람이고, 봄씨는 사려깊은 사람이니, 거절을 말할 때 돌려 말하지 말자. 나는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여기에는 적을 수 없는 진짜 이유를 그에게는 말했다. 내가 너와 연애할 수 없는 이유는 너 때문이 아니다, 전적으로 나의 문제다, 라고. 


이미 입밖으로 좋아한다고 말한 이상, 그걸 서로가 알고 있는데, 친구로 지내는 일이 가능할지 나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너랑 사이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다. 그렇지만 그것이 너에게 혹여 이기적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니가 나를 더이상 보기 싫다 한다해도 나는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봄씨는 내가 하는 말을 잘 알겠고, 나와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거절을 듣게 된 봄씨의 마음이 어떨지 하루종일 마음이 쓰였다. 어쩌면, 하는 희망으로 붕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가라앉았을 그 기분이 염려되었다. 마음이 쓰이는데, 거절을 말한 당사자인 내가, 거기에대고 뭐라 묻기도 난처했다. 어쩌지. 우리는 친구로 지내기로 했으니, 나는 조만간 그의 기분을, 마음 상태를 조심스레 다독여주어야 할것이다. 

그러다가 B 생각이 났다. 나는 사귀지도 않은 사람에게 거절을 말하고 하루종일 마음이 쓰였는데, 사귄 사람한테 헤어지자고 말한 B도 마음이 쓰였겠구나. 내가 이런데, 그라고 아무렇지 않진 않았겠구나. 온종일 내가 봄씨의 마음이 다쳤을까 염려하는데, B도 그랬겠구나. 이 여자 괜찮은가, 마음 쓰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당신도 그때 내게 마음이 쓰였겠구나.


갱년기인건가, 요즘에 사흘에 한번씩 꼬박 밤을 새우고 잠을 못자는데, 바로 어제가 그랬다. 새벽 네시반까지 잠을 못잤어. 오늘은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러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