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여름
나는 내가 이렇게 오래 직장을 다니면서 갖게 된 타이틀이 좋다. 어떤 면에서는 즐기고 있다. 나랑 또래의 남자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 나보다 덩치 큰 남자들이 직급상 내 밑이라서 나를 마주치면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는 거, 이런거는 내가 그간 직장을 다니면서 쌓아올린 경험, 직위 탓이다. 같은 직급이나 더 낮은 직급의 남자들에게 얘기할 때 그들이 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만족스럽다. 이게 다 권력의 힘이구나, 싶으니 아아, 나는 권력을 사랑하는구나, 나는 권력이 너무 좋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란 인간, 이렇게나 권력을 좋아하는 인간이라니.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권력을 줘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 한편, 이 직급이, 이 생활이 너무나 지겹다. 지친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관두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것처럼, 그냥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위에서 하는 말 잘 들으면서 상대해주고, 밑에 사람들 일 시켜놓고 봐야 되고...이런 거, 다 싫다... 싶어지는 거다. 오전에도 밑에 직원한테 일을 몇 개 지시하고, 위에 상사한테 뭔가 요구를 하면서, 아, 그만두고 싶다...생각했다. 지쳐.....
며칠전에 e 와 술을 마시면서, 날도 추운데 따뜻한 나라로 여행갈래? 하고는 충동적으로 베트남 여행표를 검색했더랬다. 쌀국수 먹여줄게, 최고야, 이러면서. 그러나 e 도 자신만의 사정이 있고, 나 역시 나만의 사정이 있어서, 둘이 함께 갈 수 있는 날짜가 많지 않았고, 그 날짜들을 검색해보니 비행기표는 비쌌다. 추우니까, 따뜻한 데로 가고 싶은데....추울 때 걷고 여행하는 건 별로야. 지치지. 더워야 해...
직장생활도 그렇고, 나의 성격도 그렇고, 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겨울이 지나면, 다 그만두고 산 속에 가서 혼자 살고 싶다. 통신수단도 다 끊고, 책이나 쌓아두고, 그냥 혼자 처박혀서 살고 싶다.....겨울엔 일단 히터 있는 데서 뜨뜻하게 지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