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과 수치
피우진의 책을 읽고 있는데, 군생활에 관련된 내용이다. 이미 SNS 상에서도 유명한 일화 부분을 읽었는데, 1군 사령관이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다 불렀는데 안나갔던 것, 또 술마시다가 다른 여군을 찾길래 아프다며 보내지 않은 것, 술마시면서 여군들 보내라고 했는데 전투복 차림으로 보낸 것 등이 나왔다. 이게 모두 1군 사령관이 한 짓인데, 책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이 나중에 '합참의장' 이 됐다고 나온다. 이런 새끼가 위로 위로 진급하는 게 남자들로 가득한 사회의 현실인데, 나는 보쓰의 친구 생각이 났다. 보쓰의 친구 중에도 前합참의장이 있는 거다. 자서전까지 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은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알기도 전부터 딱 보고 너무 싫었는데, 보쓰의 친구라기 보다는 아는 선배, 혹은 형님 쯤이었는데, 회사에 찾아와서는 귀엽다고 보쓰의 볼을 꼬집었던 거다. 그 때 보쓰의 볼이 빨개졌었는데, 보쓰가 거기다 대고 아무 말도 못하는 거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알아왔던 보쓰는 버럭버럭 소리지르는,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비서들 앞에서 볼 꼬집혀도 그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더라. 이거, 뭐지? 하는 생각을 했었고, 그 뒤로도 그 사람은 너무나 당당하게 사무실에 찾아왔고, 어깨에 힘 뽝 들어 있었는데, 피우진 책을 읽으면서 저 일화에 등장하는 합참의장이 혹시 이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역대 합참의장을 검색해보니, 그 사람이 아니더라.
보쓰를 찾아오는 그사람을 보면서 진짜 둘다 너무 싫었다. 이미 세상의 모든 권력은 내게 있다는 듯한 그 사람의 태도도 싫었고, 자기보다 아랫 사람에게는 미친 빽빽이 소리를 질러대면서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는 찍 소리도 못하는 게, 너무 진짜 역겨웠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온갖 환멸을 다 느끼게 되는데, 돈 많은 어른 남자가 얼마나 진짜 개같은 짓을 일삼는지, 내 눈으로 다 보고 있다. 혀를 내두를만한 짓을 하도 저질러대서, 나는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여자든 남자든 나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나와 친구든 연인이든 그 어떤 관계든, 수시로 그렇게 말하곤 했다. '너는 돈 많아져도 절대 그러면 안돼, 니가 보쓰가 된다고 해도 저렇게 살면 안돼' 라고. 나 역시 반면교사를 얻은 셈이다. '내가 오너가 된다면 저렇게만 안하면 된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아, 진짜 돈 많은 어른 남자는, 이미 거기에 이 사회의 힘이 다 실려 있어서 너무 지멋대로다. 소리지르고, 화내고, 지 맘대로 안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여자란 자기 옆에서 술이나 따르는 존재고... '돈이 많아'도 꼴사나운 짓을 하기 쉽고, '어른'이라는 이유로 역시 개같은 짓을 일삼기 쉽고, '남자'라는 위치도 이미 기득권인데, 이거 세 개를 죄다 합쳐놓으니 진짜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유형이 만들어진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어.. 진짜 유해한 인간들이다.....
하아- 근데 내가 그런 인간의 밑에서 일하고 있어...수치스럽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