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k 가 전전직장동료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8,9년만이라며 굉장히 설레어했다. 맛집을 알아보며 여길 갈까 저길갈까 상대에게 물었던 모양이다. 상대는 당시에 상사였고 나이도 k 보다 많은 사람이다. 나는 8,9년만에 연락이 와 만나러 간다는 말에, 으음, 혹시 피라미드가 아닐까, 라고 말을 던졌다. 그러자 k 는 웃으며 혹시 그렇다면 자기가 얘기할테니 전화를 달라 했다. 생각한대로 말을 던져놓고는 앗차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다며 들떠있는 사람한테 내가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싶었던거다. 8,9년만에 연락해서 술이나 한 잔 하자, 라니. 듣자마자 '피라미드' 생각이 났지만, 내가 그 둘의 관계를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생각한대로 던졌구나 싶었던 것.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잘 만나고 와~' 했더랬다. 그런데,
k로부터 밤 9시 넘어서 문자가 왔다.
<헐..피라미드 였어요...>
<헬프 미>
헐...이게 뭐여... 진짜 전화해야 하는건가? 잠시 망설였다. 헬프 미는, 도와달라는거지? 이게 그냥 자기 상황이 난처하다는 말을 우습게 하려는 게 아니라..전화 해달라는 거겠지? 에라이, 뭐가 됐든 일단 전화하자, 하고 전화를 걸었다. k 는 내가 하는 말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말을 하면서 식구중 누군가 아프다는 통화를 나와 했다. 그래서 나는 '빨리 들어와' 라고만 큰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나서 한 십오분쯤 지났나, 혹여라도 상대가 놔주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전화를 해서는 받자마자 '아직도 출발 안했어?' 라고 크게 말했다. 그러자 k 는 어 미안미안 지금갈게, 했다. 그리고 한 이십분 후였나, 집에 가는 길이라며 전화했더라. 고맙다고. 아니, 어쩌면 그렇게 촉이 좋냐고..하아- 그러면서 사실 내가 전화해주지 않았으면 자기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단 말을 하더라. 솔직히 좀 혹했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다.
세상에 다른 사람이 돈 잘 벌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없어. 다 자기가 돈 많이 벌려고 애쓰는 거지. 그 사람이 지금 너 돈 잘 벌게 해준다고 혹하게 말하지만, 그거 결국 자기 돈 벌려는거야. 혹하지마.
그러자 k 는 '내일 한 번 더 그렇게 얘기해달라' 청했다. 휴... k는 씁쓸해했다. 자기는 정말 반가웠는데, 내가 피라미드 얘기해도 정말 피라미드일거라고는 1도 생각안했는데, 반갑게 달려간 자기 자신이 너무 바보 같이 느껴진다는 거다. 하아..
인생.....
- 오늘 아침엔 k 가 어제 일이 너무나 고마웠다며 스타벅스에서 크렌베리치킨샌드위치를 사다줬다. 커피랑 함께 먹었다. 맛있었다.
- 여자1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그중 한 친구가 자신의 회사 동료 남자들을 그 자리에 데리고 왔단다. 그래서 함께 술마시며 노래방도 가고 재미있게 노는데, 2차에서부턴가 남자1과 남자2가 서로 자신의 옆에 앉으려고 했던 것. 남자1은 여자를 외모평가하고 후려쳐대서 영 싫었는데 남자2가 너무 좋더란다. 그래서 그 날 둘 사이에 약간의 거시기한 기류가 흘렀단다. 그리고 그 거시기한 기류가 오랜만이라 너무나 좋았고 다음날 계속 생각났는데, 내게 고민이라며 말했다. 그 남자 또 만나고 싶은데 여자친구가 있다고.
"안...되겠죠?"
하아- 이 말을 듣는데, 참, 뭐라 답해야할지..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나는 너에게 참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네 감정이 얼마만큼의 크기인지 내가 알지도 못하는데, 거기다대고 내가 어떻게 이래라저래라해. 여자친구가 있어도 너랑 그렇게 됐다는 건, 그 남자가 너한테 진짜 완전 영혼까지 송두리째 빼앗겨서 그랬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여자친구 있지만 다른 예쁜 여자보니 충동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을텐데, 내가 그런 걸 전혀 모르잖아. 너한테 달린 거지, 앞으로의 일은. 네가 마음먹기에 달렸지.
여자1은 그래서 이래저래 고민하는 눈치인데, 자기 대학시절에 동기 여자애 하나가 여자친구 있는 남자랑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그러자 그 남자는 기다려달라고 말하고는 여자친구랑 정리하고 이 여자애랑 사귀었으며 지금은 결혼하고 애도 낳고 살고 있다고. 아마 여자1은 그런 희망적인 것들을 보고 싶어지는가보다. 이해한다. 참..인생이 어려워...어렵다...
- 요즘엔 L 생각을 많이 한다. 생각할수록 너무나 화가 난다. 나한테 객관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너 그러다가 꼴페미 되는거야' 라는 말을 했던 게 자꾸 생각이 나면서, 그때 당시에 '아 꼴페미란 단어를 이렇게 쓰다니, 얘는 안되겠구나' 했던 기억이 요즘 불쑥불쑥 튀어오른다. ㅂㄱㅂ이 최근에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을 읽으면서 '아, ㅂㄱㅂ은 여혐러가 되어 돌아왔구나' 하고 씁쓸해하면서(사실 뜻밖의 일은 아니다), L 생각이 났다. ㅂㄱㅂ은 자신의 트윗에 '메퇘지'란 표현을 썼다. 일단 메퇘지라는 단어를 썼으면 말 다한 것 같다. 꼴페미와 메퇘지라는 표현을 쓰는 남자들은 걍 자신이 여혐러임을 인정하는 것 같다. 예전엔 '우리 사이에 좋은 기억이 아주 많았다'는게 그를 쳐내지 못할 이유가 됐었는데, 요즘엔 '내가 사랑하는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참 많은 걸 감싸고 싶어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좋았던 시간들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ㅂㄱㅂ도 그렇고 L 도 그렇고, 자신이 너무나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너무나 공정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 같다. 아니, 그들은 다른 면에서 많이 똑똑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다만 똑똑한 남자들에겐 무슨 일인가 일어난것 같다. 아주 잘못된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