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영화를 보고 좋은 기분으로 여동생에게도 추천해주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의 목소리는 매우 안좋았고 영화를 볼 시간적 마음적 여유도 없다고 했다. 왜냐, 이유를 물으니 타미가 유치원에서 남자 아이에게 맞고 왔다는 거다. 서로 싸우며 투닥거린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다섯 대나 맞았다는 것. 그래서 남자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싸웠는가보다. 여동생은 남자아이 엄마가 사과할거라 생각했지만, 네 딸도 내 아들을 꼬집은 적 있으니 오늘은 네가 피해자지만 예전엔 내가 피해자였다, 하면서 사과하지 않았는가 보다. 이에 빡친 여동생은 진단서 떼겠다, 등등으로 싸웠다고 했는데, 일단 전화를 통해 듣기를 했지만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그저 타미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또래 아이들 앞에서 맞았을 때 챙피했을 것 같아 신경이 쓰였고, 이게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종국엔 눈물도 흘렸다. B는 이런 내게 '맞은 게 잘못이 아니라 때린 게 잘못이다' 라고 말했고, 나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타미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 같아 미치겠는거다.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진 않을까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어제.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치원에가서 CCTV를 보았다는 거다. 화면속에서 남자아이는 화가 나있었고, 그래서 블럭장난감을 마구 집어던지고 있었단다. 주변에 아이들이 '하지마, 그러지마' 라고 말하는데도 씩씩대며 마구 던졌다는 거다. 그러자 타미가 남자아이 손목을 잡으며 "하지말라구!"하고 큰소리로 말렸고, 이에 남자아이는 주먹으로 타미의 목 옆 어깨를 연달아 때리기 시작한거다. 다섯대까지 때렸을 때 유치원 선생님이 그 장면을 보게됐고, 그래서 달려와 말리게 된 것. 만약 선생님이 보지 못했으면 타미는 몇 대를 더 맞았을 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거다. 화면속에서 타미는 맞자마자 울진 않았고 이 상황에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져있었다고. 물론 조금 시간이 자나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울엄마가 유치원에서 타미를 데려왔을 때는 맞은 부위가 벌개져 있었고.
화면을 본 여동생은, 이건 명백한 폭력이다. 어떻게 이렇게 때리냐. 라며 같이 화면을 본 원장과 선생님들에게 '폭력이 나쁘다'라는 교육을 하고는 있는거냐, 라고 물었다고 한다. 유치원쪽에서는 '우리는 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수시로 시키고 있지만 이렇게 또래 폭력에 대해서는 놓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잘못을 인정했다고. 여동생은 '그렇다면 내가 정식으로 이 자리에서 건의하겠다, 아이들 사이, 친구 사이에 때리는 건 나쁜 거라는 걸 확실히 교육시키고, 이번 일을 계기로 인한 가정통신문을 만들어 돌려라. 그리고 나는 이 남자아이 엄마의 정식적인 사과를 받아야겠다. 마음으로 치자면 유치원에 불러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리고 싶은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아이 엄마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안하고 있으니 나는 사과를 받아야겠다, 또한, 이 아이가 이렇게 폭력적인 것, 수시로 물건을 집어 던지고 때리고 하는 걸 보면 분노조절장애가 있거나 혹은 집안에서 폭력에 심하게 노출이 되어 이게 잘못인지 모르는 게 아닌지도 의심된다, 거기에 대해서도 신경을 썼으면 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유치원에서는 이 아이가 처음엔 안그랬는데 최근에 이렇게 화를 참지 못하는 경향을 많이 보인다며, 더 신경쓰겠다고, 한 번만 더 믿고 맡겨달라고 말했단다. 여동생은 한 번 더 믿고 맡겨보겠지만, 나는 이미 몇몇 엄마들과 이 일에 대해 공유했고, 후에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이 잘 되는지를 보고 판단하겠다, 라고 했단다. 유치원에서는 남자아이 엄마를 불러서 같은 화면을 보여줄 거라며, 조금 기다려달라고 말했단다.
여동생은 이 일에 대해 타미에게 꼬치꼬치 묻는 게 오히려 악영향을 줄 것 같아, 조심스레 하나만 물었다고 했다.
"타미야, 그런데 왜 친구가 타미 때리는 데, 타미는 같이 안때리고 맞고만 있었어?"
그러자 타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친구를 때리는 건 나쁜거니까, 그리고 선생님한테 혼나니까. 타미는 선생님한테 혼나는 거 싫어!"
아 ㅜㅜ 이 말 듣는데 눈물이 ㅠㅠ 어제 <시사인>의 '정혜신과 이명수'의 글을 읽은 게 생각났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온전하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존재다'
타미는 이미 '친구를 때리는 건 나쁜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타미의 친구들 역시 '물건을 마구 던지는 행위는 말려야 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마침 어제 친구가 해준 말도 생각났다.
락방아, 타미는 네 생각보다 강할 수 있다.
이 모든게 복합적으로 다가와서 다행스럽고 안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한편 나는 그 CCTV를 볼 남자아이의 부모에 대해 걱정이 생겼다. 혹여라도 그 부모가 그걸 보고 집에 가서 자기 아이를 마구 혼내거나 때리는 걸로 벌을 주진 않을까, 하고. 일전에도 이 아이는 블럭 장난감을 타미에게 던져서 타미 눈밑에 맞아 피가 나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끼리 놀다그랬으려니, 하고 대수롭잖게 반응했었다고 한다. 마침 생각난 김에 물어봤다. 꼬집은건? 타미는 수시로 그 남자아이를 꼬집었대? 친구를 때리는 건 나쁜 것이며 그러면 선생님한테 혼난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수시로 꼬집었을 것 같지 않아 물었다. 여동생도 선생님들에게 물으니, 선생님들은 한 번도 그런 장면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한 번 둘이 같이 꼬집어서 서로 사과시킨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때는 남자아이가 타미에게 할머니 흉을 봤다고 했다. 물론 울엄마 말이다. 그래서 타미가 듣기 싫어 '하지마하지마'라고 했는데 계속 놀려대서 타미가 꼬집었고, 이에 남자아이도 꼬집어서 선생님이 둘을 불러 사과시켰다는 거다. 여동생이 타미에게 물으니, 타미도 꼬집은 적 있다고 대답했단다. 걔가 자꾸 할머니 놀렸어, 하면서. 그날 타미는 친구들이 제 할머니를 놀린다고 울고왔단다. 나는 그때도 '할머니를 놀려서 챙피해서 울었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타미는 집에 돌아와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 '타미는 할머니 너무 좋은데 친구들이 놀려, 우리 할머닌데' ... 아, 타미는 정말 내 생각보다 강하구나 ㅜㅜ 내가 너무 걱정이 앞섰어 ㅠㅠ
암튼 이런 이틀을 보내고난뒤, 나는 어제 여동생에게 말했다. 너 고생 많았다, 잘 대처했어, 라고. 그러자 여동생은 '글쎄, 내가 잘한건지 잘 모르겠다' 라고 답했다. 이 과정들이 끝난 뒤에 아마도 긴장이 풀리고 이제야 이생각 저생각 복잡하게 들면서 잘한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가 보다. 이에 남동생도 '아냐 작은누나 정말 잘했어, 아무도 누나만큼 대처하진 못했을 거야' 라고 했는데 잠시 후 여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화니 기저귀 갈다가 북받쳐서 엄마한테 달려가 엉엉 울고왔어.
라고.
아, 그렇게 단호하게 대처했지만, 그 시간들이 여동생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겠구나, 이렇게 무섭게 대처하는 동생이지만, 그 시간들이 힘겨웠겠지 당연히, 하는 생각이 들자 코끝이 찡해졌다. 아이를 키우는 건, 아이의 성장을 보면서 어른도 같이 성장하는 걸 의미하는구나, 그런거구나, 새삼 생각했다.
어제 이 얘기들을 여자사람친구1과 하면서, 아, 역시 아이는 안낳는 걸로....라며 둘이 결론 내렸다. 이런 순간순간들을 힘들어서 어떻게 견디나. 게다가 나는 아이들에 관련된 일이라면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스스로 감당이 안되는데 ㅠㅠ 조카인데 혼자 눈물짜고 있으면 내 자식일경우 어떻겠어. 아아, 나는 안돼안돼, 부모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부모는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그나저나 울 타미는 예쁜 것만 제 이모 닮지, 빡치는 것도 제 이모를 닮았구나. 하아- 타미야, 그렇게 살면 힘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