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3. 08:33

- 금요일에는 스페인에 일년간 있다 온  F 를 만났다. 한국에 오면 만나자, 라고는 했지만 일정을 정하지 않고 있다가 금요일 아침에 갑작스레 약속이 잡힌 것. 삼겹살에 소주를 먹자 말해두고 만났는데, 우와, 거의 일 년만에 만난 F 는 몰라보게 멋진 여성이 되어 눈앞에 똭- 나타났더라. 너무나 멋진 모습에 나는 진짜 쉬지 않고 칭찬을 했다. 난 상대의 장점이 있다면, 좋은 점이 있다면 계속 칭찬해야 한다고 믿는 스타일이다. 그래야 장점을 더 발전시킬 수 있으니까. 암튼 살은 시꺼멓게 태우고 머리는 길고 민소매에 짧은 원피스를 입고 나온 이 발랄한 여자는 대화에 있어서도 충분히 멋진 상대였는데, 크- 뭐랄까, 되게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달까?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얘기할때도 강경한 어조가 아니라 '이런 게 아닐까?' 라고 말하는 게 너무 멋져서 귀기울이게 되더라. 그간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나 역시 강하게 나가고 싶어지게 되던데, 이건 내가 먼저 강하게 나가도 마찬가지. 그런 참에 뭔가 대화의 기술을 나는 이 친구로부터 배웠달까. 여튼 겉모습에서 주는 이미지가 완전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였다. *)쌍년-이건 '벨 훅스'의 책에도 나오는건데, 지금 인용하려고 *치고나니, 그 인용문 안적어놓고 팔아버렸네 ㅠㅠ- 캐릭터 같은건데, 뭐랄까, 꼰대 아저씨들이 보면 고개를 저을 스타일? 후훗. 졸 멋져. 암튼 졸 멋지다고 내가 폭풍칭찬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내가 오래 알고 지낸 여자사람이 뭔가 점점 더 근사해지는 모습을 발견하는 엄마미소 같은 게 지어지고.. 크- 지난번 노가리 모임에서 N 님이 MBTI 해줬을 때처럼, 나는 사람이 스스로 잘난 거에 무척 감동을 받는 사람이라, 내가 도와준 게 전혀 1도 없고, 내 영향이 1도 없음에도 '혼자 알아서 잘난' 혹은 '혼자 알아서 잘 지내는' 사람을 보면 폭풍 감동이 찾아온다. 그런 사람이 너무 멋져 ㅠㅠ 그래서 그 사람이 스스로 기쁨을 찾고 스스로 보람을 찾고 이런 걸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어진달까. 여튼 이 사람을 만나고 온게 너무 감동이었다. 너무나 인상적인 만남이었어. 너무 기뻐서, B 에게도 통화하면서 너무 멋진 여자가 되어 돌아와서 너무 기뻐, 라고 막 수다떨고 ㅠㅠ 내가 알던 남자들은 점차로 찌질해지고 멀어져가는데 여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멋져지는 것 같아 ㅠㅠ


내가 F 를 이렇게 멋지게 생각하게 된 건, F 가 내게 '동안' 이라고 말해줘서는 결코 아니다. 




- 레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를 남동생에게 읽으라 권해줬었다. 지난주 지방 출장 길에 기차를 탄다며 얇은 책을 추천해달라길래, 이거 얇고 좋아, 하면서 건네준 것. 그러나 업무상 내려온 길이고, 읽다 말았던 책도 한 권 가져갔던 터라 그 책을 읽을 수 없었다 했고, 어제는 이 책 읽고 싶지 않다며 추리소설 산 거 없냐고 하길래, 일전에 읽어보고 싶다고 했던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권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같이 남동생 차를 타고 오면서, 남자들은~ 읽어봤냐고 하니 안읽었다며, 읽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어때? 하니 아직 얼마 안읽어 잘 모르겠다고. 그러면서 나는 '니가 남자들은~ 읽었으면 좋겠어,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도와줄 수 있을텐데' 라고 말을 했는데, 이 말에 남동생은 발끈했다. 누나는 아집이 있다고 하면서, 대체 누나가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는 거였다. 암튼 그래서 약간 다투었는데, 남동생은 그러면서 '누나는 안티가 많이 생길 스타일이야' 라고 하더라. 안티는 누구나 있지 않냐? 라는 물음에 남동생은 '그래, 나도 있지, 누군가한테 나는 나쁜놈이겠지' 라고 말하길래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지만 안티가 없는 게 좋은 건 아니잖아? 그건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한 거란 거잖아?' 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융화를 잘 하는 걸 수도 있지' 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누나는 자기를 너무 띄엄띄엄 본다는 거다. 여튼 다른 얘기로 돌아가고 결국 다정하게 출근 잘해, 하고 헤어지긴 했는데,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걸어오는데 생각이 복잡해졌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 에서는 여자들이 자기들보다 아는 게 적을 거라는, 부족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가르치려 드는 남자들이 나온다면, 내가 지금 내 남동생에게 한 짓이 그들이 한 짓과 다르지않게 느껴지는 거다. 나는 내가 내 남동생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는 확신으로, 내 남동생이 '부족하다'는 확신으로 녀석을 '가르치려'든 게 아닌가. 이 생각이 들자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졌다. 나는 대체 뭘 근거로, 무슨 생각으로 남동생을 자꾸 가르치려 들었을까. 대체 왜 어째서 남동생이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혼자 생각한 건가. 내 남동생이 부족하다는, 덜 성숙했다는 생각은, '나의 기준'에서 나온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진짜 쥐구멍에 숨고 싶어졌다. 내가, 내가 그간 욕하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게 아닌가. 하아-

나는 남동생보다 책 좀 더 읽었다는 걸 이유로 해서, 남동생을 가르치려 들었다. 녀석은 그 자체로 자신의 생각으로 잘 살아나가고 있는건데, 내가 막 바꾸려고 노력했어... 더 나은 인간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욕심이, 나는 그저 '욕심' 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건 나의 욕심이라기보다는 오만이 아니었을까. 오만하고 교만함. 그게 내가 가진 게 아니었을까.


너무 부끄러워서 가슴이 아프다.


앞으로는 나의 태도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가져오는 내 기본 마인드도. 나 혼자 잘났다는 미련하고 고집스런 생각도 좀 바꿔야겠다. 그간 남동생은 부지런히 나의 그런 점이 안좋다고 얘기했는데 내 귀에는 잘 닿지 않았다. 그런 반응들을 마주할 때마다 늘상 '니가 아직 잘 몰라서그렇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게 내 오만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한다고 매일 부르짖으면서, 나는 퇴보한 게 아닌가. 왜 이렇게 고집스러웠을까. 


사무실에 도착해 보쓰의 방에 있는 티븨를 잠깐 켜보았는데, 마침 날씨가 나오고 있었다. 이번 주엔 폭염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일기예보였다. 나는 남동생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이번주엔 폭염이 더 심해진다는 뉴스를 들었어 땀 폭발하겠네, 라고. 남동생은 '내가 선풍기 샀으니까 이제 좀 괜찮을거야' 라고 답해왔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 가 나의 모토였다면,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하지 않기. 겸손하기. 일단 그런 뒤에야 공부를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어설프게 알고 잘난척만 들입다 하는 병신 캐릭터였어. 




-  이러다가 내 주변에는 진짜 남자사람이 하나도 남아나질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해오고 있는데, ㅠㅠ, 금요일에 F 를 만나서도 또 토요일에 친구들을 만나서도 L 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까. 오늘 꿈에는 L 이 나왔다. 꿈에서 L 과 나는 오랜만에 만나 그간 밀린 얘기를 했다. 조잘조잘 그간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는데, L 이 내게 그랬다. '아니, 그런 일은 나에게 먼저 말했어야죠' 라고. 그 말이 좋아서 웃으면서 대꾸를 하다가 꿈에서 깨었는데, 꿈에서 우리의 관계는 예전, 다정하던 때와 같았다. L 과 내가 서로 말하지 않게 된지 한 달쯤 되어가는 것 같은데, 이렇게 되어버린 것도 우습고, 앞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도 하지만, 과거에 우리가 잘 지냈던, 그가 나의 베스트프렌드였던 때는 이렇게나 가끔 그립다. 나중에야,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에 좋은 사람으로 더 포장해 옆에 두고 있었다는 걸 알긴 했지만, 어쨌든 그는 내게 좋은 친구였다. 그를 친구로 두면서 연애를 두 번쯤 하는 동안, 나는 내 애인들보다 L 이 나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를 만나면서도 '내 애인들이 나를 좋아하긴 하지만, 나를 더 잘 아는 건 너인 것 같아' 라고 하기도 했더랬다. 그는 내게 제대로 된 칭찬을 언제나 애인들보다 더 적합하게 던졌고, 애인들보다 더 많이 나를 웃게했었다. 그래서 나도 그를 잃고싶지 않다고 생각했었고. 예의를 지키고 친하게 지내는 게 무척이나 좋았던, 소울메이트 같은 친구였는데, 이제는 우리가 서로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아마 L 도 내게 그렇겠지. 모르겠다. 그는 내게 무슨 생각인지는. 그러나 가끔 그가 그립다. 정확히는 그와 내가 대화를 나누었던 다정했던 때가, 우정을 나누던 때가 그리워서 속이 상한다. 




- B 가 돌아가고나서도 하루도 쉬지 않고 놀았다. 화요일엔 평냉과 소주를, 수요일엔 갈비와 소주를, 목요일엔 갈비찜과 소주를, 금요일엔 삼겹살에 소주를...야, 써놓고도 무섭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플 것 같다면서 잘만 먹고 돌아다니네!' 라는 말을 B 로부터 듣기도 했는데, 아아아아아, 그렇지만 나도 인간이었던 것이었다. 금요일 밤에는 샤워하다 코피가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거 보고 나 웃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는 변태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피 보고 웃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B 도, 친구들도 너무 늦게 코피가 터진 것 같다고 했다. 여동생은 토요일에도 술마시러 가는 나를 보고는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언니는 저렇게 맨날 나가서 놀 수 있다니 체력이 진짜 대단하지 않아?' 라고 ㅋㅋㅋㅋㅋ 토요일에 술마시고 들어온 내게 여동생이 또 그 말을 하길래 내가 말했다.


아니야, 나도 인간이더라고. 금요일에 코피 터졌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동생이 웃으면서 '그건 순수하게 피곤해서 난 그런 코피네' 라고 말했다. 내가 그렇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원래 학창시절 코피가 하도 잘 터져대서 수술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건 그것과 무관하게 진짜 오롯이 피곤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번주에는 진짜 경건하게 잘 지내도록 해야겠다. 목요일에 평냉에 술 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그것 말고는 다이어트에 매진해야지. 오늘 저울에 올라가니 살이 또 쪄가지고 씨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남동생이 출근하면서 '뺀 거 다 돌아왔지?' 하더라. 그래서 아니, 다는 아니고 절반쯤....이라고 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씨게는 아니어도 조금씩 해야겠다. 그래서 커피도 지금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속옷 새로 사면서 사이즈 줄었다고 좋아했는데, 금세 다시 가서 큰 사이즈로 사게 될까봐 무섭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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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