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우리>라는 단어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한 연구에서는 심부전증 환자들을 배우자와 함께 인터뷰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비롯하여 여러 질문들에 대답했다. ˝두 분이 심장병을 극복해 오시면서 제일 잘한 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배우자가 이 질문들에 답할 때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사람일수록 6개월 후 환자의 상태가 더 좋아졌다. 배우자가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환자의 건강 문제를 부부가 함께 전념해야 할 공통의 문제로 보았다는 의미였다. 부부가 병을 극복하려고 함께 노력하는 경우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p.318)
며칠전 퇴근 후에 엄마가 보던 텔레비젼을 잠깐 같이 보게 되었는데, 175kg 의 오십대 여자가 나왔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 몸을 가눌 수가 없고, 그래서 화장실조차 갈 수가 없어 남편이 수시로 소변과 대변을 받아내야 한다고 했다. 생활보조비로 나라에서 백만원 정도가 나온다고 했고, 여자는 수시로 소변이 마렵기 때문에 남편은 밤사이 잠도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대변이 보고 싶으면 너무 통증이 와서 남편이 발로 배를 맛사지 해줘야 했다. 자신이 엎드린 자리에서 뒤로 눕거나 옆으로 눕는 것만 간신히 할 수 있었고, 누워서는 가슴이 얼굴로 쏟아져 내릴 정도로 살이 쪄있었다. 그녀에게는 아흔의 노모가 있었는데, 노모가 돌아가셨을 경우 장례식에 참석할 수도 없을 것 같아 그게 너무 걱정되고 속이 상한다고 했다. 여자는 남편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남편은 정말이지 단 하루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쓸 수가 없었다.
그녀가 결혼 초기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한 후에 임신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변으로부터 받았고(왜 임신안하냐 같은 것들), 그걸 폭식으로 풀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몸무게가 된 것. 남편은 그런 그녀의 옆에 내내 붙어서 그녀의 모든 걸 챙겨주고, 그러다가 화도 나고 짜증도 나서 신경질을 내면서 바깥으로 나갔다가, 잠시후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거다. 어휴...
예전에 아파서 병원에 갔었을 때, 그때는 원인을 모르는 병이라고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약 알러지였던 것이 분명한 그때에, 당시 사귀던 남자가, '너에게 별 일이 없고 낫기를 바라지만 혹여 네가 큰 병이라고 하면 내가 평생 간호할게' 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이 남자는 아마도 다정하고 스윗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가 사랑에 빠진 건 내가 아니라 '사랑'이구나 싶었다. 이 사람은, 사랑과 사랑에 빠져있어...라는 생각. 저 말을 듣고 내가 좋아했어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랬어야겠지? 그런데 저 말이 나는 좋질 않은 거다. 뭔가 '애인을 간호하는 착한 남자'역할을 맡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연애하는 자기가 좋았던 것 같아.. 어쨌든 그 프로를 보면서, 아아, 나는 너무 싫다, 저렇게 내 몸을 가눌 수 없어서 나랑 함께 사는 상대에게 24시간 내 옆에 붙어있으라고 하는 것도 싫고, 상대의 옆에 저렇게 있으면서 내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도 싫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물론 그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저 사람도 저러고 싶어서 저런 것이 아니고 또 저럴 줄도 몰랐겠지만, 아아, 저렇게 되지 않게 계속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신경쓰고 최선을 다해야겠다 싶은 거다. 혼자 살면 혼자사는 대로 또 같이 살면 같이 사는 대로, 건강해야 해 ㅠㅠ
그런 한편, 저렇게 남편이 마치 자신의 문제인듯 간호해주니, 저들에겐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덩달아 들었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의 책, 《단어의 사생활》을 읽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거다. 이들에게는 아내와 남편이 '우리'라서 희망이 있겠다, 하고.
두 사람이 서로의 언어 스타일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앞서 살펴보았듯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이 적응은 보통 몇 초 안에 일어난다. 이때 두 사람은 상대방의 형식성, 명확성, 감성적인 정도, 사고방식에 맞추어 즉시 적응한다. 두 사람 모두 어떤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즉 그녀, 그,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따라간다. 대화라는 공이 계속 굴러가게 하려면 둘 다 주제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사실 둘 중 한 명이나 둘 다 순간적으로 한눈을 팔거나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면(거짓말 등) 상대방은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p.312)
아마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넘치도록 행복하게 하거나, 미친 듯이 화나게 하거나,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 사람의 이름은 뺀 채 그 사람을 가리키는 다양한 대명사를 넣어 말할 때가 많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이 한 친구에 대해 생각하면서 말하고 있다면 3인칭 단수 대명사를 높은 비율로 사용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p.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