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2. 09:30




졸리면서, 무척 졸리면서도 안 졸리다고 눈을 부러 크게 뜨는 아이. 제 외할머니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갓난장이 제 동생을 예쁘다고 할 때마다 꼭 그 사이로 파고 들어가 저를 봐달라고 한다. 한창 재롱질 시작한 둘째에게 모두 예쁘다 할 때, 남동생과 나는 꿋꿋하게 여전히, 타미가 훨씬 더 예쁘다고, 그건 아마 이모와 삼촌이라 그런 것 같다며 우리 둘은 둘째보다 타미를 훨씬 더 많이 본다. 


눈 밑에 작은 상처가 나있어서 그게 무어냐 물었더니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가 할퀴었단다. 아마도 하나의 장난감을 가지고 티격태격했는가본데, 눈 밑의 상처를 보니 정말 큰일날 뻔 했다 싶으면서 또 무척 속상한거다. 울엄마랑 여동생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눈 밑에 상처가 있는 걸 보고 너무 속상해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너도 때리고 할퀴어야지!' 했단다. 그런데 타미는 그러면 선생님한테 혼나..했다고.


하아- 너무 힘들다.


나는 엄마랑 동생이 타미에게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때리고 할퀴고 꼬집는 것은 나쁜 거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말라고, 그건 나쁜 짓이라고 해서 저 아이만 자꾸 상처를 입고 돌아오면 어쩌나 싶어져 어찌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거니까 그냥 넌 맞기만 하렴, 하는 건 아니니까. 엄마는 맞고 들어오는 것 보다는 같이 때리는 게 낫다고 하고 나는 도무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저 아이가 누군가를 때리는 아이가 되는 것도 싫고 저 아이가 누군가에게 맞고 들어오는 것도 싫다. 아이들끼리의 티격태격이니 이건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이 일을 보니 앞으로의 일들이 너무나 걱정이 되는거다. 저 아이도 이제 학교를 가게 될텐데, 더 거친 세계에 자꾸 들어가게 될텐데.


선생님한테 혼날까봐 눈 밑에 상처를 입고도 한 대 때리지도 못한 아이의 마음이 너무 여린 것 같아 또 그건 그것대로 속상했다. 집에서는 제 할미에게며 엄마에게며 그리고 이모에게도 큰소리 떵떵 치는 아이인데, 나가서는 선생님 한테 혼나는 걸 무서워하다니. 뭔가 속이 터지기도 하고.. 하아- 뭔가 지혜로운 방법이 있다면 내가 기꺼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데, 나는 다섯살 아이가 다섯살 아이한테 상처를 입고 돌아온 상황에서 도무지 뭐라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금요일에는 여동생 생일이어서 안산엘 갔다. 홍콩 갈 때 사왔던 양주를 들고갔고 제부는 얼음을 얼려두고 꽃게와 대하를 잔뜩 사와 배터지게 구워주었다. 졸린 타미는 제 삼촌과 장난 치고 놀며 크게 웃었고, 나는 그게 좋다고 행복해서는 영상을 찍고 그랬다. 취한 남동생이라 영상을 공개할 순 없지만, 그 영상을 볼 때마다 타미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와 마음이 아주 좋다. 게다가 내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눕고 남동생 무릎에 다리를 뻗어 누워서는 제 이모와 삼촌의 사랑을 고스란히 받았다. 나는 한껏 이마를 쓰다듬어 주며 우리 타미는 어쩜 이렇게 이마도 이뻐, 하고 남동생은 발이며 다리를 쓰다듬으며 다리도 이뻐, 하고 양껏 사랑해주었다. 잠깐 자리를 떴다가도 이내 다시 제 자리를 찾아 머리며 다리를 뻗는 타미를 보노라니, 이 아이도 지금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걸 알고있구나, 싶어 무척 흡족했다. 그 순간이 자꾸만 생각난다. 양껏 사랑해준 것 같아, 흠뻑 사랑해준 것 같아 흡족하다. 그런 우리를 보며 제부도 좋아했다. 



아무쪼록, 이 아이가 자라면서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모든 순간에, 우리로부터 받았던 큰 사랑이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해줄 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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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