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는 봄씨를 만나 와인을 마시기로 했었다. 내가 가자고 했던 레스토랑 근처에 마트가 있고, 거기에서 내가 와인을 사가겠다 라고 했는데, 봄씨가 같이 만나서 레스토랑에 가자고 하는 바람에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같이 마트로 가 와인 두 병을 (내가 혼자)골랐고, 직원분이 한 병씩 따로 넣어드릴까요, 두 병 함께 넣어 드릴까요, 묻는데, 나는 당연히 봄씨가 다 들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두 병 한꺼번에 넣어주세요, 했다. 그렇게 두 병이 하나의 케이스에 담겨졌는데, 직원이 그걸 내밀며 우리에게 주려고 할 때, 봄씨는 당연히 자기가 그걸 가져다 들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럴 때 남자가 너무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이 있으면 무거운 거 당연히 들어주는 거 진짜 너무 좋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 좋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소주 뚜껑 따는 것도 힘들어해서(이래뵈도 손목 힘과 팔 힘이 약함), 그것도 당연히 자기가 따는데, 이것도 너무 좋음 ㅋㅋㅋㅋㅋㅋㅋ 집에 가는 길에는 비가 멎었고, 우산 들고 가기 싫다고 툴툴댔더니, 제가 들게요, 하고 내 우산도 들고 갔다. 이런건 진짜 너무 좋아. 남자는 이래서 만나는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더니 가방도 들어줄까요,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가방은 절대 들게 할 수 없지. 내 가방은 내가 들어야지. 내 가방 들고 튀면 어쩌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거워서 들고 튀기도 힘들겠지만.
아, 그런 순간순간들마다 역시 남자사람을 만나고 살아야된다는 생각이 든다. 즐거워...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니까 무거운 걸 자연스레 들어주고, 내가 또 레스토랑 가는 길을 못찾아서 방향 찾아주고, 뭐 이런다고 해서, 내가 그 남자사람한테 쑝 가는 건 아니다. 그래서 오늘 곰곰 생각해봤는데(나는 일을 통 안하는가..) 나에게 남자는 숲이나 산에 있는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가면 나무들이 초록초록한채로 있는 거 너무 좋고, 가끔은 그걸 보고 싶어서 산에 가고 싶지만, 그렇다고 내가 우리집 마당에 나무를 심고 싶진 않은 거다. 그냥 나무는 산에 있고 숲에 있는 게 좋다. 나무의 자리는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뽑아다 내 집 마당에 심고 들여다보고 싶진 않은 거다. 나는 그냥 마당 없는 아파트에서 화초도 안키우면서 살고 싶어...
문득 몇 해 전에 사주를 볼 때, 그 분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락방씨 마음에는 남자들이 뿌리를 내릴 수가 없어요, 라고. 뿌리를 내릴라치면 내가 죄다 뽑아버린다고 했는데, 오오, 이거 생각나기 전에 나는 이미 남자를 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절묘하다.
내가 남자를 나무라고 생각해서, 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숲이나 산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좋다. 내가 연애에 올인하는 사람이 아닌 것도 너무 좋고, 남자 좀 좋다고 다 연애해야지, 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너무 좋다. 남자사람 만나는 거 넘나 즐거워하면서 남자들을 그자리에 두는 거, 넘나 좋다. 너 좋긴한데 너랑 연애는 아니야, 이러는 거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뭔가 약간 변태 싸이코 같기도 하지만 졸 멋진 캐릭터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