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5. 15:25

- 새로 들어온 막내는 스물두살이다. 진짜 애긔애긔하다. 집도 멀어서(수원) 앞으로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비서학과 출신이니 아무래도 쉽게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너무 애긔애긔해서... 잘 될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열심히 다녀주길 바랄 뿐이다. 어제 함께 양재역까지 걸으면서 쫄지말라고 계속 얘기해주었다. 뒤에 내가 버티고 있다, 쫄지 마라, 혹여라도 스트레스 받으면 나한테 다 얘기해라, 지금은 가만 앉아있기만 해도 퇴근하면 기운이 하나도 없을 거다, 그렇지만 출퇴근이 반복돼서 생활에 패턴이 자리잡으면, 니가 하고 싶은 걸 꼭 하고 살아라, 그래야 직장생활 버틴다 등등 얘기해주었다. 보쓰가 담배 피우지 않는 게 너무 좋다고 하는데, 일전에 비서 실습 나갔다가 거기서 상사가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담배를 피워서 재털이 비우는 것도 짜증났지만 사무실에 가득한 담배 냄새가 너무 싫었다는 거다. 그래, 우리 보쓰는 담배도 안피고, 당연한 거지만 성희롱이나 성추행도 없다, 내가 알기로는 밑에층 남자 직원들이나 상사도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안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여라도 니가 회사 생활 하다가 성희롱이나 성추행 당했다면 그 즉시 나한테 말해라, 내가 다 처리해주겠다, 라고 말했다. 여기 보쓰는 듣자하니, 마음에 안들면 내보내기도 한다면서요, 라고 하는데 ㅠㅠ 거기에 대고 내가 할 말이 없더라. 제가 기본만 해도 내보내진 않겠죠? 이런 거 막 물어봐서...하아, 심호흡 한 뒤에, 반반인데, 설사 보쓰가 화내고 소리소리 지르고 널 내보내고 싶어한다고 해도, 그건 니 잘못이 아니라, 저 사람이 평생 화를 참으며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고, 사소한 거에 더럽게 화를 잘 내기 때문이니, 거기다대고 괜히 자책하지말고 쫄지도 말고, 좆까라, 이러고 그냥 나가버리라고 말했다. 



- 작년부터였나 재작년부터였나 인문학과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깨우치는 게 너무 재밌다. 아는 것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아, 공부는 재미있는 거구나, 싶더라. 너무 재미있고 그래서 또 하고 싶고 더 하고 싶고..그렇게 되는 거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 같다. 학창시절엔 공부를 하라고 하라고 해도 안하더니 지금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막 책 읽어보고 강연도 찾아가고 그러잖아. 사실 나는 강의라면 딱 질색이라 여태 들어본 적이 거의 없긴한데, 이번엔 친구가 같이가자, 해서 정희진의 페미니즘 강연에 다녀왔다. 정희진 쌤은 강연 도중에 이틀 일하고 이틀 놀고 이틀 공부하고 하루 쉬어야 된다고 했는데, 와- 진짜 가슴에 와서 박히는 거다. 그러면서 공부를 멈추면 사람이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아, 진짜 흥분됐어. 사람이 보수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해야 한다, 공부를 멈추지 말아야한다, 라고 하시는데, 이틀 일하고 이틀 노는 것보다도 이 이틀 공부한다는 게 진짜 너무 좋은 거다! 비록 내가 좋아하는 것만 관심있게 보긴 하지만, 공부하는 거 넘나 좋다! 강연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엄청 들었다.

강연에는 남자사람들도 더러 보였는데, 정희진 쌤의 강연을 들으러 온 남자사람들이라니 참 좋구나.. 했다. 물론 다 듣고 새기기 위해서 온 건 아닐 수도 있겠다. 쌤은 중간에 자기 강연이 외부로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특히 남자들은 말을 이상하게 옮긴다고 하더라. 진짜 빵터졌다. 어쨌든 페미니즘에, 녹색당에, 정희진 쌤에 관심이 있어서 들으러 온 남자사람들이라니...

그러고보니 나의 구남친도, 그리고 봄씨도 다 일전에 정희진 쌤의 강연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갑자기 이거 생각나서 너무 좋았다. 대한민국에 정희진 쌤에게 관심을 갖고(대표적인 여성학자가 아닌가!), 강연을 듣고자 마음 먹는 남자사람들이 몇이나될까. 그런데 내가 내 주변에 두었던, 혹은 두고 있는 남자사람들은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게 너무나 좋은 거다. 사람은 끼리끼리 노는건가..혼자 이런 생각도 해보고. 이게 너무 좋았다.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니, 만약 페미니즘도, 정희진 쌤에도 다 관심이 없었다면, 나랑 친해지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 어제 순대국이 너무 먹고 싶어서 퇴근하는 길에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나 순대국 먹고 싶어, 했다. 집에 와서 운동중이던 남동생은, 우리동네에 순대국집은 진짜 많은데 다 누나가 싫어하는 순대인데..일단 집에 와봐, 했다. 집 근처에 도착해서 다시 전화해서 나 너무 순대국 먹고 싶어, 하니까, 누나 길동사거리에 누나가 좋아하는 순대국집 있어, 거기로 가자, 하더라. 히히히히. 그래서 들어가서 가방 두고 지갑하고 핸드폰만 쏙 빼가지고 남동생과 길동사거리를 향해 걸었다. 걸으면서 남동생의 소개팅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내가 소개팅해줄까, 생각한 것. 회사 동료인데, 참 괜찮은 것 같아서..그런데 너무 얌전해서 잘 안맞으려나 싶고...어쨌든 남동생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라며 다그치는 가운데, 


그 직원이 나 되게 좋아해.

누나 좋아하면 나도 좋아하겠네.

그게 그거랑 같냐? 나는 페미니스튼데.

나는 졸라 페미니스트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졸라 페미니스트라 그래서 길바닥에서 완전 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처구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한남시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문제는 그 직원이 페미니스트에 별 관심이 없다는 거다. 내가 페미니즘 책도 사줬는데..... 하하하하하. 아직 확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긴한데, 내 회사 부하직원과 내 남동생을 소개팅시키는 일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 하하하하하.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도 셀프 칭찬  (0) 2016.10.10
아침부터  (2) 2016.10.07
떠나려는 그대를  (2) 2016.10.04
20160929  (4) 2016.09.29
오늘의 사주  (2) 2016.09.26
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