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3. 09:42

- m 과 a 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 우리는 마치 누가누가 더 찌질한가 내기라도 하는듯 짜증나고 속상한 일을 얘기하기에 바쁘다. 간혹 우리중 누군가는 눈물을 그렁그렁하고 또 우리중 누군가는 눈물을 질질 흘리기도 할만큼,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한 일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누가누가 찌질한가, 경쟁하는 것 같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만남후 일요일이 되었을 때, 웃었던 기억밖에 나질 않았다. 우린 평소처럼 그런 찌질한 이야기들을 나눴던 것 같은데, 왜 웃었는지도 모를 것에 대해 웃었다는 잔상이 남아 있었다. 찌질한 이야기만 실컷 늘어놓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나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아, 한번은 이 얘기에 빵터진 것 같다. 내가 한 말에 대해서.


나는 플라토닉 러브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라고 했지. 그러자 m이 읭? 했던가. 이 얘기에 모두가 웃었던 것 같다. 왜웃죠? 네? 어째서 웃죠? 네?



- 그간 나는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소심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연애를 하면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서 알게 되는만큼, 최근의 연애에서 나는 나의 소심함을 자꾸 발견하게 된다. 이 소심함은 내가 좋아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관계에 큰 행복을 느끼고 또 기쁨을 느끼면서도 일순간 쪼그라들게 된다. 


처음에는 더 심했다. 혹여나 말 실수를 하게 되지 않을까, 혹여나 뭔가 기분 나쁘게 하지 않을까, 무언가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움이 가득차, 내 안에는 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가 보이는 게 아니라 나만 보였다. '그를 좋아하는 나'만 인식하고, '잘보여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달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가 하는 얘기들이 귀에 들어왔다. 정보로서의 그에 대한 것들이 아니라, 그가 말하고자 하는 자신의 기분과 마음 같은 것들이. 그것들이 처음엔 내게 와 닿을 수가 없었다. 좋다는 말조차도 내게는 닿지 못해, 계속해서 나는 '내가 좋아해'에 휩싸여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나를 처절하게 약자로 만들고 소심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 '최선을 다했'고 나는 이제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상대가 말을 들어주지 않을때, 상대가 내 마음을 모른척 하거나 몰라줄 때 나오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을 이젠 한다. 그러므로 좋은 관계에서는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공식이 성립할수 없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좋은 관계에서는 '약자'라는 느낌을 받는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소심하다.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고, 이제는 약자의 포지션에 처박혀 있지도 않으며, 이제는 그가 보이고 그가 하는 말이 들리는데, 그가 나를 향해 얘기하는 그의 생각들과 마음들이 이제는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소심함이 저기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것 같고, 나는 나의 이 소심함이 좀 마음에 들질 않는다.


지난주말에는 그가 친구들을 만나 내 얘기를 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나는 이렇게나 많이 친구들에게 그의 얘기를 하면서, 한번도 그가 내 얘기를 친구들에게 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우며 아무것도 숨기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체 이 소심함은 뭘까. 연애중이냐 물으면 고민 없이 그렇다 하겠지만,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물으면 역시나 그렇다 하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 물으면 또 역시 그렇다 하겠지만, 남자친구냐 라는 물음에는 어쩐지 답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차마 내가 내 입으로 그는 나의 남자친구다, 라는 말을 하는 것도 어색해, 두어번쯤 시도해보다 포기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내게는 꽤 힘든 일이듯이, 누군가의 포지션을 정하고 말하는 것도 내게는 꽤 힘든 일이구나, 생각한다. 그런걸 내가 막 혼자서 해도 되나, 싶어지는 거다. 어쩌면 내게는 확신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어지는 것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오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방금전, 오늘자 w의 일기를 읽으니 가슴이 좀 싸-해졌다.



- 보쓰의 카드청구서 보고는 내가 들어간다. 간혹 청구서상에 큰 금액이 있으면 그 내용이 무언지 확인해놓고 혹여라도 보쓰가 이 큰 금액이 무어냐, 물으면 대응해야 한다. (자기가 쓴건데 그렇고, 자기 자식들이 쓴건데 나한테 확인하는 거다). 그러므로 나는 큰 금액에 대해서 자녀들에게 묻곤 하는데, 이번에는 11,000,000 원을 넘어가는 큰 건이 하나 있더라. 그래서 이건 뭐니, 라고 물었다. 그러자 둘째 자녀의 시계를 산 거라 했다. 세상이 엉망진창인건 뉴스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내 주변도 엉망진창이다. 누군가는 취업이 안되 마음 졸이고 누군가는 천만원 이상의 시계를 아빠 카드로 산다. 나는 우리 삼남매가 몇년간 돈을 모아 간신히 괌을 다녀왔는데, 우리 식구가 괌에가서 쓴 돈의 세배가 넘는 금액에 이르는 시계를 누군가는 그냥 산다. 이런거, 좀 이상한 거 아닌가.



- 삼주전이었나 이주전이었나, 출판사 대표님과 실장님을 만났다. 두번째 책을 여름 전에 내자는 얘기를 했고, 나는 이미 원고를 다 넘긴 상황이지만 새로 작성해 주겠다 말했다. 그중에 마음에 안드는 원고가 있고, 어차피 시간 있으니 좀 더 양질의 책이 되도록 해보겠다고 말한 것. 이미 내가 넘긴 원고를 대표님이 다 확인한 상황. 알겠다는 답을 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여름전 으로 막연하게나마 쇼부를 친 상태다. 


이 출판사는 좋은 책을 내자고 생각하고 있으며, 헐값으로 책을 팔겠다는 생각도 결코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책에 이벤트를 걸지도 않을 것이며, 십프로 이상되는 할인률을 정하지도 않겠다고. 한꺼번에 많이 팔리는 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눈 밝은 독자들은 계속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여태 잘해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 모든 것에 동의하긴 하지만, 그래서 이 출판사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 책에 대한 마인드에 동의하지만,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던 것. 대표님은 내게 몇 번이나 미안하다 하셨다. 락방님 책도 더 큰 출판사에서 더 크게 마케팅 했다면 더 잘 팔렸을 텐데요, 라면서. 더 잘팔리는 책이 되었다면 물론 좋았을 것이고, 그러므로 몇 번은 마케팅에 더 힘을 좀 쓰지, 하는 원망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렇게 뚝심있게 나가기 때문에 더 신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의 만남에서 나는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건 그냥 생각해본건데요, 하면서. 내가 생각한 책이 어떤 것인지 곰곰 듣고 있던 대표님과 실장님은,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했다. 처음에는 반응이 별로인 것 같아, 이게 이 출판사와 맞지 않으면 저는 원고만 보여드리고 다른 데를 찔러 볼게요, 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난 뒤에는 여기서 하자, 고 한것. 물론 머릿속 구상이라 실제 내가 그 원고를 쓰게 될지 안쓰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여튼 지금 생각으로는 머릿속에 새로운 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출판사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 오늘, 엄마의 조직검사 결과를 듣게 될 것이고, 결과가 무엇이냐에 따라 수술 스케쥴 같은 것도 잡게 될 것이다. 간단한 암수술이라니, 뭐 이래저리 생각이 많은데, 역시 '암이 아닌 쪽'이 좋겠다. 암이라고 해도 수술은 잘 될것이고. 그 후에는 이제 차츰차츰 주말마다 원고를 쓰는 일에 조금씩 시간을 바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근무시간에 페이퍼 쓰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기분을 주는 터라, 확실히 '일'이라는 느낌을 준단 말이지. 



- 그게 뭐든, 갈 길이 아주 멀다는 생각이 든다. 갈 길이 멀다.

멀지만, 별 수 없다.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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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