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동생과 제주의 밤, 와인과 맥주를 나누어 마시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종국에는 각자의 잘난척으로 마무리 하느라 바빴지만. 우리는 가족이다 보니 당연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는데, 우린 한 아버지를 두고 각자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고 다른 형태의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여동생에겐 이게 꽤 낯선 경험이었던 것 같고, 나에게도 역시 마찬가지.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여동생에게 아빠는 '위기의 순간에 언제나 옆에 있어준', '언제나 본인의 편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준' 존재였다. 반면 나에게 아빠는 '무능력한'으로 정의되고 있었다. 여동생은 내가 아빠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는 것에 꽤 놀란 눈치다.
물론 우리 아빠는 식구들을 굉장히 아끼고 사랑하신다. 아마 수치로 환산한다면 다른 아빠들 보다도 월등히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게다가 다정다감하며 우리랑 대화를 많이 하신다. 나에게도 물론 수없이 많이 사랑을 표현하시고,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나는 물론, '알고있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걸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나 역시 응당 상대를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빠를 사랑하느냐? 이건 글쎄, 잘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인데, 실제로 울엄마의 경우 '아빠가 너한테 엄청 잘해주잖아' 라고 하고, 나 역시 '응 그렇지' 라고 대답하면서도 '무능력해'가 먼저 튀어나와 버리는거다. 여동생과 얘기 하다가 과거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나는 내가 어릴적에 받은 치유되지 않은 바로 그 상처가, 아빠의 무능력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추측을 하게 됐다. 요즘의 나는 나의 어릴적 트라우마를 어떻게든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고 이것은 신경정신과에서 해결가능한 일인가 심리상담사로부터 해결 가능한 일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됐든, 내가 내린 결론과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빠의 무능력을 내가 끔직하게 여기는 건,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든게 그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건데, 이렇게 연결 되는거다.
나는 어릴 적 폭력에 노출됐다-아빠 엄마가 없었다-아빠도 돈 벌러 갔지만 엄마도 돈 벌러 갔다-엄마가 돈을 벌러 가는 건 잘못한 게 아니다-그렇지만 아빠가 돈이 많았다면 엄마가 돈을 벌지 않아도 됐을것이고-그렇다면 나는 폭력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나에게 내린 잠정적 결론인데, 그러므로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내야 하는가가 남아있다. 차라리 기억이라도 하지 못한다면 좋을것을. 그래서 나는 마음이 따뜻하고 대화가 가능한 남자가 좋아 사귀면서도 그에게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거침없이 돌아서게 되는걸지도 모른다고, 거기까지 생각을 발전시켰다. 이게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겠지만.
내 정신 어딘가는 지금 병들어 있는걸까?
- 제주에 다녀오니 엄마는 아빠에게 서운한 게 있어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이었고, 나는 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굳이 엄마랑 마주 앉아 면세점에서 사온, 내가 여태 산 것 중에 가장 비싼 와인을 꺼내 따랐다. 사실 나는 이 와인을 내 나름의 '61년산 슈발블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므로 대출을 완전히 상환하게 되는 날 혼자 꺼내 파티 하리라, 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트레스 받은 엄마를 보니 이 위로의 자리에 이 와인을 따는 것은 결코 잘못하는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사실 더 깊은 마음으로는 '더 비싼걸 사서 61년산 슈발블랑 삼지 뭐' 하는 생각도 있었고. 킁. 남동생과 엄마와 나, 셋이 식탁에 앉아 제부가 주고 간 스테이크를 구웠다. 마침 호텔로부터 뽀려온(응?) 휴대용 버터도 있던 터라 스테이크에 넉넉하게 발랐다. 맛있었어..
저기 보이는 저 팔뚝은 남동생의 것. ㅎㅎ
그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나는 그러니까 왜 결혼을 하고 왜 자식을 낳아서 인생 피곤하게 사느냐고 엄마에게 말했고, 남동생은 나에게 누나는 왜 자꾸 부정적인 면만 보는거냐고 지청구를 늘어놓고, 엄마는 그래도 너희들이 또 나 스트레스 받았다고 이렇게 위로도 해주잖니, 라고 하는거다. 엄마, 우리가 위로를 해주는 이 과정이 그러니까 아빠랑 결혼해서 잖아. 결혼 안하면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으니 스트레스도 위로도 없겠지, 라고 말했다가 엄마랑 남동생한테 대체 왜 그러느냐고 또 지청구를 먹고...하하하하하.
득달같이 달려들어 아빠 험담을 우라지게 하다가 또 아빠를 이해하게 되서 아빠편이 되어 얘기도 하다가, 결국 남동생과 함께 외할머니 계신 곳으로 가 삼겹살을 구워 먹고 술을 마시자고 급결론을 내리니(왜 이야기가 이런 방향으로..) 엄마는 그제야 소리내어 깔깔 웃으며 이모에게 전화해서는 '너도 와, 얘네들이 너도 같이 술먹자네, 반차내고 오래~' 라면서 기뻐하는 거다. 여튼 그것은 엄마를 위로하기 위한 최고의 해결책이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와 함께 노는 것. 그자리에서 스맛폰의 달력을 열어 할머니네 가는날을 정해 추가해두었다.
-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ㅎ호텔은 국내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 아닐까 싶은데, 국내외를 통해서 내가 갔던 숙박시설중 가장 최고였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지난번에 갔을 때는 없던 네스프레소 머신이 보였다. 나 사실..캡슐커피 한 번도 안마셔봤어...그래서 어떻게 하는건지도 몰라....우리 집에도 없는데 호텔의 무려 객실에!! 이게 있다니. 여동생과 나는 설명서를 읽어가며 커피를 내렸다. 여기 있는 거 다 내려먹고 가자, 라고 깔깔대며. 캡슐커피를 뽀려가고 싶어도 어차피 집에 머신이 없어 -0-
- 여행으로 지친 몸을 바로 쉬지 못하고 피곤에 쩔은 상태에서 또 술을 마시고 바로 자서 아침에 좀 유쾌하지 못한 상태로 잠에서 깼는데, 핸드폰에 문자가 와있었다. JS의 사진이었다. 지금 있는 곳의 사진 좀 찍어 보내줘, 셀카도 포함해서. 라고 말했더니 그렇게 한 것. 활짝 웃는 얼굴이 너무 좋아서 사진을 보자마자 웃어버렸다. 나빴던 기분도 좋아지고. 우울할때마다 보면서 웃어야지.
- 결혼은 구역질 나지만, 동거라면 괜찮겠다, 고 생각한다. 가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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