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26. 17:01

어제는 퇴근하고 집에 가자마자 세면도구를 챙겨 목욕탕엘 갔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푹 담그니 아 좋다, 하는 말이 나오더라. 기운 없던 몸을 목욕탕에서 쉬다니, 늙는다는 것은 이런것이로구나, 했다. 그리고 세신을 받았다. 굵은 때가 박박 밀렸다. 윽, 이게 다 나의 육체에서 나온 것이란 말이냐.


막내가 핸드폰을 바꿀 때가 되어 아이폰과 갤럭시를 놓고 꽤 갈등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블로그에서 아이폰과 갤럭시 셀카 비교한 것을 보고 갤럭시를 사야겠다고 살짝 마음이 돌아선 와중에, k대리가 갤럭시 신제품으로 핸드폰을 바꾼 거다. 그 폰으로 셀카를 찍어보더니 숑- 반해서는 이번주말에 핸드폰을 새로 바꿀 것이며, 갤럭시로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아, 이렇게나 선택의 기준이 다르구나 싶어서 재미있었다. 셀카가 어떻게 나오느냐로 인해 핸드폰을 선택하다니. 그러니까 셀카가 핸드폰을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이 되다니. 나로 말하자면 여태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한 번도 셀카가 선택의 요건이었던 적이 없는데!!!!!!!! 정말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참외도 마찬가지. 목욕탕에서 돌아온 어젯밤, 배가 고파 과일을 먹으려는데 집에 있는 과일이 참외밖에 없는 거다. 나는 과일중에서 참외를 좀 싫어라 하는 편인데, 일단 깎아야 되는게 싫고, 참외 씨가 싫다. 그래서 잘 안먹는 과일인데, 그것 밖에 없고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깎아 먹었다. 씨가 너무 싫어서 좀 발라내고 먹는 편인데, 이거 다른 사람들이 보면 혐오스럽다 하겠지 싶어 의식적으로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도 혼자 먹을 때는 좀 밀어내... 여튼 어제는 그렇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씨까지 다 흡입하고서, 이 얘기를 B 와 나누었다. 그랬더니 B 도 '사람들이 참외씨는 대체적으로 다 싫어하지 않나?' 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 타미는 어릴때 참외를 씨만 먹더라'는 얘기를 했었었는데, 오늘, 


막내랑 참외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나는 씨가 너무 싫어서 참외 먹기가 싫다고 했더니 막내가 '아 그래요? 전 씨가 좋은데!' 하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참외 씨만 먹는 사람, 너였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회사에 출근하면 최근에는 미숙이랑 가장 대화를 많이 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는 매우 다양한데, 지난번에도 한 번 언급했다시피 페미니즘, 연애, 친구, 책, 알라딘 등등 여기에서 저기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채로 이 얘기 저얘기 나눈다. 세상사람들과 우리가 좀 다르게 보는 게 있다 싶으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하며 조심스레 의견을 묻고 또 상대의 의견을 듣기도 한다. 그러다 의견이 같은 걸 알면 좀 안도하게 된달까. 암튼 오늘도 무슨 얘기로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어찌됐든간에 마지막 대화는 친구였다. 내가 최근에 친구로부터 상처 받았던 것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내가 내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라는 지적을 받은 것에 대한 얘기였는데, 와- 미숙이가 그 말을 듣고 완전 나에 대해서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이야기해주며 내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닌가.


너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지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내가 너에게 무언가 물어보거나 조언을 구할 때 너는 항상 모든 상황을 생각해보고 답했으며, 아무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 때는 니 감정대로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대의 감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 신중했다, 너랑 몇 년간 베프로 지냈으면서도 그런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니!! 하면서 다다다다다다다닥해줬는데, 모니터로 그걸 물끄러미 보는데 뭔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ㅠㅠ 아, 나는 뭔가 사춘기 소녀가 된 것 같다. 역시 인간의 삶에서 궁극적인 목표는 내 편 만들기 인가.... 미숙이랑 대화하면서, 아, 나 조낸 잘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는, 내 삶에서 한 순간도 최우선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혹은 연애랑 같은 강도로 중요한 것들. 안나 카레니나가 브론스키에게 모든 걸 걸다 파괴되는 것, 그것은 그녀에게 브론스키가, 브론스키를 향한 사랑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안나는 모든걸 다 브론스키에게 걸었다. 그 연애, 그 사랑에, 그 사람에.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돈 버는 수단으로써의 내 일이 중요하고, 내 몸 하나 살아가는 게 중요하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중요하고, 이런 것들과 비슷하게 연애가 중요하다. 연애 하나만 앞으로 쑥 나오고 다른 걸 뒤로 밀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건데,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인정 받았을 때, 이를테면 출판사 대표님이 날 찾을 때, 책이나 글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날 찾을 때, 그때의 기쁨은 연애에서 오는 만족감과 비슷한 강도로 크다. 내가 여기에 서있네, 하는 자각이 들때면 때론 뿌듯해지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서. 그리고 그럴때에는 꼭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스스로도 자랑스러울 만큼 자랐어, 하고 말하고 인정받고 싶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나에 대해서라면 확실히 그렇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고, 이야기를 나눌 주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만족한다. 나의 에너지를 나누어주고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받기도 한다. 나는 사소한 것에서 영감을 받고 또 사소한 데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이 아주 큰 사람이라, 그래서 그게 무엇이든 하나만 툭, 불거져나와 최우선이 되지는 않을 수 있는 것 같고, 나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무척 흡족하다. 그러니까, 다이어트만 성공하면 되는데.....그러면 완벽한데..... 요즘엔 내가 왜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하는가를 곰곰 생각해봤다. 너무나 명확한 답이 나왔다. 나는 나의 큰 육체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 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뭐 다이어트가 벌써 끝난것도 아니고, 나는 이제 지금까지보다 뭔가 더 하기로 결심하였으니, 어디 할 때까지 해보기로 하겠다.


근데 회사를 다니면..너무 빡치는 일이 많아....퇴근할 무렵만 되면 술 생각이 나...제기랄...

근데...회사 다니기 전, 학교 다닐 때도 그랬어. 학교를 맨날 빼먹어도 뭔가 맨날 술 마실 꺼리가 있긴 했지.



오늘은 엄마가 돌아오는 날이다. 얼른 집에 가서 엄마랑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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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