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젠신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그 오래된 사진들을 들춰보니 쑨젠신과 함께 있을 때면 징치우는 항상 들떠 판단력이나 자제력이 모두 흐려져 있었다. 징치우에게 쑨젠신은 거센 바람과 같았다. 거세게 불어오는 그에게 휩쓸려 사고와 청각은 둔해지고 웃음의 감각만 예민해져 있었다. 물론 아주 바보 같은 웃음이었다. (p.117-118)
예전에 '조민기'랑 '오연수'가 주연한 드라마 [거침없는 사랑]에서 오연수가 조민기에게 그런 말을 했더랬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고 생각했는데 그 바위가 움직일 줄은 몰랐다'고. 스물다섯에 나도 그랬다. 꼼짝도 안할거라 생각해서 마음껏 까불었는데 그가 완전히 너무 꼼짝을 해가지고.. 어쨌든 우리는 만났고 만나는 동안에는 너무 좋아서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으며 모든 뜨거운 연애가 그렇듯이 결국 나는 나의 바닥을 만났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나중에 알고서 아, 내가 이렇게까지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구나, 라는 걸 깨닫고 얼마나 내가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부끄럽던지..
그 사랑은 결정적으로 나중에 돌아봤을 때 '나쁜 사랑' 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 연애가 그 후의 연애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렇다해도 아마 '그 시절로 돌려놓으면' 나는 또다시 그 사람을 좋아할 거란 생각을 했다. (나중에 만났다면 좋아하지 않았을 거 같다. 사랑은 타이밍인지도.)
어쨌든 그 후에 나는 안정적이고 평안한 연애를 했다. 아, 그래 모름지기 연애란 이런 것이어야 해, 라고 생각했다. 나는 연애가 내 일상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언제나 주변에 있기를 원했다. 나를 구성하는 많은 것들 중의 하나여야지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주체는 나여야만 했고, 모든건 다 내 의지에 의해 결정되어져야 했다. 내가 주는 거리만큼만 상대가 다가와야했고 조금이라도 더 올라치면 '아니' 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두들 그 뜻에 따라주었고, 그랬으므로 지속이 됐었다. 나는 연애로 인해 나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고, 그것이 내가 연애에 있어서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그 상황에 맞게 그 상대들을 충실하게 좋아했다. 어떤 장점들에 이끌리고 어떤 편안함에 이끌렸다. 때로 어떤 단점들에 눈을 감으면서 관계를 지속했고 그 상황에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가 주는 안정감과 평안함을 나는 선택했고, 만족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연애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추구하는 바였으니까.
그렇지만,
사람일은 십 초 뒤도 내다 볼 수 없고, 미래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이라고 했던가.
이 영상을 보냈더니,
그는 이 영상으로 답했다.
일상은 흐트러지고 뒤로 밀려났다. 평안함은 온데간데 없고 온갖 감정이 하루에도 스무번씩 들어왔다 나갔다가 한다. 머리를 쥐어뜯고 벽에다 쿵쿵 찧기도 한다. 혼자 큭큭대고 웃었다가 한숨을 쉰다. 다시는 내 바닥을 들여다보는 지경까지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바닥을 만날까봐 두렵다. 매일이 매시간이 두려움과 흥분으로 설레임과 긴장감으로 초조함과 예민함으로 즐거움과 당황으로 왔다갔다한다. 하루에도 서른번씩 이런걸 그만두어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말하다가, 그보다 더 많은 횟수로 그만두기에는 이게 너무 크다고 혼자 말한다. 나를 잃지 않으려면 꼿꼿하게 여기서 빠져 나와야 한다고 했다가, 나라는 게 대체 무엇이길래 그래야한단 말인가 갈등을 반복한다. 도망치고 싶다고 혼자 끙끙대다가 도망치면 이 사람을 잃을 거란 두려움에 이내 포기한다. 왜 애를 써야 하는거냐고 친구들에게 되물었던 게 언제였던가, 나는 애를 써야 한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판단도 못하는 초병신이 되어서 매시간을 산다. 똑똑하고 차갑고 냉정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저 내가 만든 이미지에 불과했구나. 나는 그냥, 초병신이야. '항상 들떠 판단력이나 자제력이 모두 흐려져 있'고, '사고와 청각은 둔해지고 웃음의 감각만 예민해져 있'다.
억누르지 말고 요동치는 대로 두라는 그의 말에, 그래 될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이 되었다가 이내 떠올랐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바로 그때도 내가 '될대로 되라지' 했던 것을.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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