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윗에서 누군가가 나영석 피디를 까는 글을 써둔 걸 보고 리트윗했다. 정확한 워딩은 찾아보지 않아 제대로 옮길 수 없지만, 젊은이들이 엉덩이 붙일 틈 없이 움직이며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을 그리고 시청자들은 이걸 흐뭇하게 바라본다는 뉘앙스의 글이었다. 나 피디의 프로그램을 곧잘 보곤하는 B는 '나 보라고 한거냐' 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 라고 했지만, 그것이 나쁜 뜻은 아니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내게 화를 냈는데, 저건 나피디를 빈정댐과 동시에 시청자도 빈정대는 거고, 차라리 그 빈정댐을 인정하지 왜 '나쁜 뜻이 아니다' 라고 얘기하냐는 거였다. 자긴 이미 저 저격 리트윗에서 기분이 나빴지만, 그걸 나쁜뜻이 아니라고 한 나에게 더 놀랐다는 거였다.
금요일에 정희진 쌤의 강연을 들었다. 지난번 정희진 쌤 강연에서도 느낀거지만, 쌤의 발언은 되게 쎄다. 강의 중에 들으면 웃을 수 있고 또 공감하고 동의하지만, 이것이 바깥으로 전해질 경우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강의가 끝나고 여자1과 여자2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순대국에 소주를 마시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 만약 오늘 강의중에 일부라도 트윗에 작성하게 된다면 오해받기 딱 좋겠다고. 우리 모두 그 생각에 공감했는데, 그래서 지난번 강연에서 정희진 쌤도 그걸 알고는, 자신의 강의를 제발 트윗에 옮기지 말라고 하셨더랬다. 나는 그 말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겠더라.
우리 여자 셋은 역시 정희진 쌤 강연이 재미있다, 또다시 사고가 확장되는 느낌이다, 같은 얘기를 했다. 이 분은 정말 너무 똑똑하셔서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주신다. 5월달에 또 편저자로 책이 나온다는데, 거기에 '식민지 남성성'에 대해 글을 쓰셨다 해서, 우리 여자 셋은 밥을 먹으며 그 글 꼭 읽어보고 싶다, 식민지 남성성이라니, 강의에서 들은 걸로도 뭔가 충격이었는데, 거기에 대한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모두 동의했다.
어제 B 와 이야기를 나누며 정희진 쌤 강의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그 안에 있지 않으면서 비난한다는 것은 얼마나 쉬운지. 나는 누군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것에 있어서 보지도 않은 상태로 너무 쉽게 비난의버튼을 누른 것 같다는 생각을 어제 했다. 물론, 나피디를 비난한 저 문구 자체에는 여전히 동의한다. 나는 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절대선인듯 보여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반대의 효과를 너무 크게 가져오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어디 어린 것이 어른한테 대들어!' 같은 게 너무 금방 나와버리니까.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착한 것 좋은것 이라는 메세지를 주면 줄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몹쓸 존재'가 되어버리는데, 나는 내가 어른한테 잘하는 사람이긴 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좋아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무조건 그 사람을 공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그걸 봐야만 비난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너무 쉽게 비난의 버튼을 눌렀고, 그래놓고 천연덕스럽게 '나쁜 뜻이 아니잖아?' 해버린 건 분명 B 의 감정을 상하게 했을거라 인정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번이 아니어도 너무 쉽게 비난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반성하기도 했다. 지난주에 만난 친구가 SNS에서는 그게 너무 쉽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런 사람중에 하나가 됐었다. 누군가 그걸 좋아한다면, 그걸 비난할 때는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에게 사과했다. 만약 내가 그에게 직접적으로 그건 이러이러하니 나쁘다고 생각해, 라고 말했다면 그는 기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보란듯이 저격 리트윗을 한 것은 내가 잘못한 게 맞다.
그러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얘기했다. 아이들과 동물들에게 잘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 좋아지는 것, 약자에 대해 배려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들. 그런 대화들중에 나는 '노인'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또다시 놀랐는데, 어떻게 노인이 사회적 약자가 아닐 수 있냐는 거였다. 일하고 싶어도 더이상 일자리를 찾을 수 없고 먹고 살기가 힘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좀 더 배려를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노인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하는 나에게 그는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나는 그가 내게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고, 그가 나의 좋은 점만 보기를 바라지만, 그렇지만 노인이 사회적 약자라는 것에는 내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일자리를 가질 수 없고 몸을 쓰기도 불편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노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라가 그들을 위해 복지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나 역시 당연히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라는 물음에는 '일부만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여전히 노인은 기득권층이고, 여자들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노인은 바로 할아버지들로 대체된다. 내게 그들은 너무나 끔찍한 존재들이다. B 와 대화중에도 언급했지만, 지하철안에서 자리 양보나 옷차림으로 젊은 여자들에게 윽박지르는 것은 할아버지들이고, 거기에 항의하면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하며 대뜸 공경받는 게 당연하다 여기는 모습을 직접 보고 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젊은 남자들 앞에서 사회적 약자가 되지만, 젊은 여자들에게 사회적 약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뿐인가. 성희롱과 성추행은 노인들이라고 멈추지를 않는다. 실제로 나를 어릴 적에 성추행한 사람도 할아버지였고, 아주 많은 여자들이 '아저씨'나 '할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성추행과 희롱을 당했었다. 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스템이 아주 잘 정비되어야 하다고 생각하지만, 노인이 사회적 약자라는 것에는 여전히 동의할 수가 없다. '노인들이 전부 다 그런 건 아니야'라고 일반화 하지 말라는 말에도 딱히 동의할 수가 없다. 차라리 '여자 노인들이 안그래'라면 몰라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도 또 식당에 손님으로 갈 때도 온갖 지저분한 짓은 남자노인들이 다 한다. 그들중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을 서슴없이 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약자는,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는 어떤 종류의 폭력을 일삼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노인은 할아버지들이고, 할아버지들은 매우 많이 가해자이며 기득권층이다. 돈이 많건 적건 다 그렇다.
나는 아빠가 경비일을 2교대로 하는 것이 매우 부조리하다고 생각한다. 이 일밖에 할 수 없는 것도 역시 부조리하다고 생각한다. 일자리가 더 많아야 하고 또 더 나은 일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 폐지를 줍지 않아도 살 수 있게끔 나라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거노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한편에서도 사회적 약자라고 바로 수긍할 수가 없다. 내가 피해의식을 가진걸까?
강의에서 정희진쌤은 우리는 피해의식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피해의식을 갖게 되면 상대에게 여전히 가해자라는 인상을 주게 되고 그건 상대에게 여전히 힘을 실어주는 거라고. 우리가 가져야할 건 피해의식이 아니라 저항의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해쉬태그로 나는 페미니스트다 라고 했던 운동같은 거 너무 좋다고. 실제로 자신이 페미니스트 여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하나의 저항운동으로 선언하는 것이 좋다는 거였다. 지난주에 만난 친구와 같은 맥락으로 내가 한 남자 알라디너에게 '내가 메갈이다' 라고 했던 것도 얘기하며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내가 스스로를 메갈이라고 칭했던 것의 뉘앙스를 친구는 이해해줬다. 실제로 메갈 게시판에 들어가 활동하는 게 아니엇어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던 상황 같은 것을. 다시 돌아가서, 내가 가진 게 피해의식인걸까. 노인을 기득권으로 놓고 보는 게, 내가 여전히 피해의식을 갖고있어서 일까. 나는 피해자였고 앞으로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를 기득권이라 바라보는 것, 이것은 피해의식인걸까. 내가 가져야 할것은 저항의식인데, 나는 여전히 피해의식에 머무르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점이 참 아프다. 이것이 피해의식이라면, 나 역시 피해의식이 옳지 않다고 보여지는 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증오와 분노가 피해의식에서 나온걸까. 몇 번을 되물어도 그런 것 같다. 나에게 필요한 건 '그들이 기득권이고 나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 대신 '그들은 약자다' 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내가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하염없이 원망스럽다. 아직까지도 나를 이런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지난날의 아픔과 그 사건들이 너무 야속하고 또 원망스럽다. 나는 자꾸 배우고 공부하고 성장하고 싶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가는 길에 이렇게 툭툭 부딪치는 게 너무 속상하다. 어떤 상처는 좀처럼 쉽게 벗어날 수 없는데, 내게 그런 게 있다는 사실도 끔찍하게 싫다. 내가 더 공부하고 더 배우면 더 시야가 넓어지고 더 사고가 확장되면, 그러면 좀 털어낼 수 있을까? 가능할 것이다. 지금도 예전만큼 죽을정도로 괴롭지는 않으니까. 완전히 털어지진 않았지만 분명 나아지긴 했으니까. 아, 진짜 끔찍했었는데.. 배움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정희진 쌤의 강의는 이번에 B와의 다툼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강의 내용을 그리고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그에게 사과할 수 있었고 앞으로 주의를 기울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 한편 피해의식에 대해 들은 건 내게 정말 중요했다.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싸울 수 있는데, 그간 나는 정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피해의식에 대해 강연에서 들음으로써 나는 내게 있는 것의 정체를 알게 된 기분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싸우긴 싸울거지만...그래도.....진짜 할아버지들은 꼴도 보기가 싫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고, 그래서 두루두루 온갖 나이대의 인간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지만, 할아버지 집단이 싫은 건 현재의 나로서 어쩔 수가 없다.
그나저나 아까 낮잠 30분 자가지고 잠이 안오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