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10. 11:58

B 와는 아주 먼 거리에 내가 있다. 물리적 거리는 너무도 멀어서, 비행기를 타도 열시간 이상을 가야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닿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멀리 있기 때문에, 우울했던 적도 있다. 대체적으로 기쁘게 그와 대화하고 지내긴 하지만, 어쩌다가 한 번쯤은, 일상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거다. 정말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 이를테면 개봉한 영화를 함께 보러 간다든가, 산책을 한다든가, 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든가, 갑작스럽게 어느 밤에 만날 약속을 잡는다든가 하는 그런 사소한 것들. 이런 것들을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없으므로, 나는 그에게 가장 좋은 상대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 우울해지는 거다. 그러면 마음속으로 가만히 준비를 한다. 그를 보낼 준비. 그러니까, 손잡고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실체가 언제나 옆에 있는, 그런 존재에게로 그를 보낼 준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속으로 그러고 있는 거다. 난 괜찮아, 미련없이 사랑했고, 충분히 사랑했어. 사랑할 수 있는 그대로 다 했어,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출근시간이 나의 출근시간과 비슷해, 우리는 출근길에 함께할 수 있다. 아주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사이사이 침묵이 끼어들기도 한다. 퇴근 시간은 비슷하지 않아서, 그가 퇴근 길에 연락하고 내가 퇴근 길에 연락한다. 어느 한쪽이 밤 늦게 들어가게 되면 귀가하면서 연락을 하고. 이것이 늘상 있던 일이라 익숙했다. 그런데 이번 주말에는 거기에 산책이 더해졌다. 내가 일자산을 가는 시간에 그도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 거다. 그도 걷고 나도 걸으면서 그 길을 계속 함께 했다. 아,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일상을 공유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무척 즐거웠고, 내가 이 시간이 좋다고 그에게 말하자, 그는 내가 좋아하는 걸 또 좋아했다. 함께 하진 않았지만 우리 같이 산책을 한 느낌이 무척 좋았는데, 그는 역시 일요일에도 산책을 갈 예정이라며, 일자산 언제 갈거냐고 내게 물어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실 나는 지난 주 일정이 너무 빡세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금욜 밤에 편도도 붓는 것 같고 그래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말 일자산이 계획에 없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토요일에 굳이 나가고, 일요일엔 쉬어야지 했지만 그의 물음에 어서 빨리 산책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에 또 일자산엘 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덕분에 이틀 연속 일자산을 갔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옆에 있는 실체라고 해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와 나는 그걸 겪었다. 그와 하지 못했던 것, 갑작스런 만남이라든가 마트에 함께 간다든가 하는 것들, 을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해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상대와 관계로부터 큰 만족을 느끼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란 건 아주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 같다. 



주말에, 그는 내게 말했다. 내가 너무 좋아서 잃고 싶지 않다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되도 잃고 싶지 않다고. 나 역시 그렇다. 그를 잃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언젠가 그를 잃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매순간 충실하고 매순간 열심히 사랑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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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