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15. 09:17

- 토요일에는 남동생의 여자친구가 집에 잠깐 들렀더랬다. 우리 아빠엄마와 밖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는, 선물을 집에 두기 위해 잠깐 들른거였는데, 나는 몸이 아파 꼴이 엉망이었고, 그렇지만 그렇게 엉망인채로 같이 앉아서 여자친구 가 사온 화과자를 먹었다. 엄마는 두번째 보니 지난번보다 더 좋다고 하셨고, 아빠는 이번에 처음 보는데 좋다고 하셨다. 내가 남동생 여자친구들을(응?)그동안 보면서 느낀 건, 만나기 전보다 만나고난 후가 더 좋다는 거다. 아마도 '내 동생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인지 내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러면 이뻐...

어쨌든 남동생은 다시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러 나갔다 들어왔고, 토요일 밤이었나 일요일 아침이었나, 나는 남동생에게 '나 뭐해줄거야?' 물었다. 결혼할 사람을 소개해줬으니, 뭔가 해줘야잖아?


- 나 뭐해줄거냐.

- 생각좀 해볼게.

- 그래라.

- j 형 소개시켜줄까.

- 그래. 근데 그 형, 돈은 벌고 있냐?

- 응. 벌지.

- (잠시 생각해본 뒤에) 야, 소개팅 같은 걸로 소개시키는 거 말고, 그냥 동네 술친구로 만나자. 

- 알았다.

- 나 술마실 수 있을 때 날 잡아.


이런 대화를 했는데, 아니 그러니까, 내가, 지금 내 스스로 돈도 잘 벌고 인생을 즐기며 잘 살고 있는데, 굳이 돈 못 버는 남자를 만나서 연애를 할 이유가 1도 없는 거다. 내 삶이 더 피곤해지거나 궁핍해진다면 그게 뭐가 됐든, 뭐하러 한담? 혼자서 지금처럼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마시고, 그러면서 살면 되지. 굳이 뭘로 돈을 버는지, 벌긴 버는지, 뭔가 확 자리잡히지 않은 남자를 소개 받을 이유 같은 게,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거다. 그렇지만 동네 술친구라면... 뭐, 괜찮지. 가끔가다가 동네에서 만나 간단하게 술이나 한 잔 하고 들어가면 되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동네 술친구로 소개시켜줘, 라고 해놓긴 했는데, 이것도 또 생각해보니 굳이 필요가 없네? 나는 혼자 집에서 걸어서 세계속으로 보면서 지구본 놓고 홀짝홀짝 와인 마시는 게 세상 즐거운데, 굳이 나가서 늙은 남자랑 마주 앉아 소주잔 기울일 일이 뭐가 있으랴.... 가만 보니, 지금의 나, 뭔가 돈 잘 벌고(꼬박꼬박 월급 들어온다는 뜻이다), 생활에 이미 부족한 게 없는 내가, 지금 여기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 뭘 해도 딱히 지금보다 '더' 즐거울 확률이 없네??????????????? 덜하면 덜했지, 더하진 않을 것 같은 이 느낌적 느낌???????????? 내 나이 또래의 싱글 남자가 나보다 더 잘 자리잡고 건강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지가 않고, 그렇다면 굳이 만날 필요가 뭐가 있나 싶고...... 역시 혼자 걸어서 세계속으로 보면서 와인이나 홀짝이는 게 만만세야..




- 알라딘에 내가 쓴 리뷰가 이달의 당선작이 되면서, 그 리뷰에 댓글이 달렸는데, 댓글이 참 인상적이다. 요즘 느끼는건데, 확실히 자기객관화가 잘 되는 쪽은 여성 쪽에 더 많은 것 같다. 남자들은 마치 이성이 자기들의 것이고 열등한 감성이(당연히 감성은 열등하지 않다) 여자들의 것인양 하지만, 내 보기엔 더 냉정하고 똑똑한 쪽도 여자들쪽인 것 같고.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나을 게 없는데 더 낫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건, 그냥 허세가 대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쓰다보니까 깨달았는데, 남자를 좋아하지만 싫어해.... 어쨌든, 댓글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리뷰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내 선택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간의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장 내일, 혹은 3년 뒤에,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고 싶다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하고 싶다고 해도 이미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도 아주 멀어져버리고 말았지만. 그 때 되서 후회해봤자 갑자기 뿅하고 임신이 되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될 리가 없다. 출산과 육아는 나이들수록 멀어져버리는 게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그런 순간이 혹여 온다고 해서, 주저앉아 후회하고 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범위 내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하겠지.

아, 한 번뿐인 인생인데 벌써 40년이나 지나버렸다.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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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