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끼리의 여행이 무조건 즐거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무조건 즐겁지는 않았다. 일단 첫날부터 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공항 내의 레스토랑부터 호텔로 들어가는 택시까지, 호텔안의 레스토랑에 이르러서는 '뭐야, 내 생각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하고 부르르 떨었더랬다. 택시비에 전전긍긍하며 내 판단 착오를 자책했고, 가족들앞에서 내가 이것에 자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둘째날. 렌트한 차량을 거침없이 운전해주는 남동생과, 우리가 선택한 리티디안 곶이 예상보다 아름다워서 가족 모두가 흥분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들었다. 해변도 마음에 들고 그곳에서 모두 '이런 곳은 처음이야' 라고 흥분한 그 순간들도 좋았다. 그 뒤로 우리가 선택한 장소들도 나쁘지 않았고, 우리는 '리티디안 곶' 만으로도 괌에 온 이유는 충분했다고 모두 만족해했다.
- 그러나 여행에서의 묘미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돈 아끼지 말고 맘껏 먹자는 데 있는데, 그걸 할 수가 없어서 일순간 스트레스를 받았더랬다. 아버지가 당뇨이시니 당연히 음식을 신경써야 하고 약도 챙겨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고작 2박3일인데 뭐 어떠랴 싶어 나는 레스토랑 혹은 메뉴까지 다 계획해두었던 것. 그러나 아버지는 음식에 신경쓰셨고, 메뉴들에 좀 예민해지셨던 터라, '아, 먹방찍는 걸 포기하고 아버지 위주로 맞춰야겠구나' 라고 결국은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정이 내게는 못내 아쉬웠고, 아버지가 잠깐 원망스러웠다가, 그렇지만 몸이 아파서 신경쓰겠다는 게 대체 그걸 어떻게 하지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B 에게 얘기하니, 당뇨는 식단 조절을 하지 않으면 바로 그자리에서 쓰러질 수 있는데 아버지라고 왜 먹고 싶지 않았겠느냐, 그곳에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신경쓰신 건데, 그거야말로 니네 생각하고 당연했던 게 아니었느냐, 라는 말을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나의 모든 공감능력과 이해심은 세상 모두에게 잘 발휘되는데, 유독 아버지에게 인색하게 발휘되는 건 아닌가, 하고.
- 음식의 메뉴들을 시키고, 물을 사마시고, 입장료를 내고 할 때마다 '이건 얼마냐'를 묻고 '아이구 비싸다' 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 때문에 결국 나는 '묻지 말고 먹어!' 라고 말해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운전에 일일이 훈수를 두는 아버지 때문에 결국 참지 못하고 남동생도 '그러지좀 말라'고 말해버리게 되고. 남동생과 나는 순간순간 '우리가 매일 오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이잖아' 하며 다독이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확-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아버지는 본인이 통제하길 원하시고 식구들 모두가 당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하시는데, 낯선 나라와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언어들 속에서 그걸 뜻대로 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걸로 보였다. 일단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위화감을 느끼셨던 듯. 공항에 도착하고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그러니까 외국을 처음 나가보는 상황에다가 '택시기사와 대화하는' 중에 본인이 알아들을 수도, 끼어들을 수도 없다는 상황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셨던 것 같다.
- 가난했던 어린 시절 탓인가, 아버지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남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번번이 싸우게 된다. 나도 음식을 남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지만, 배부른데도 '하나씩 먹고 치우자'라고 하는 마인드에는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는 것. 나는 계속 '배부르면 그만 먹고 남겨' 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아까우니까 하나씩만 더 먹고 치우자' 라고 한다. 그럼 또 나는 울컥 해서는 '음식은 아깝고 아빠 몸뚱아리는 안아까워?' 라고 톡 쏘고는 한다. 게다가 끼니때마다 모든 식구들이 모두 제 몫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두가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주 강하신데, 내 나름으로는 그걸 아버지가 어릴 적에 식구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가난했고 형제가 많았던 집안의 다섯째였던 아버지는 배우지도 못했고 가진 것도 없었다. 그런참에 당신만의 '가족'이 생긴 것이고 그 가족이 '모두 다 함께' 해야 하는 건 굉장히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아버지는 어릴 적에도 친척들이 명절이라든가 행사가 있어 다같이 모이게 될때, 내가 다른 친척들, 이를테면 고모나 할머니등과 같이 가려고 하면 그걸 그렇게나 싫어하셨다. 꼭 당신이 데리고 다녀야만 하셨다.
괌공항에서 출출했던 우리는 간단히 밥을 먹기로 했는데 소화가 잘 되지 않았던 엄마는 먹지 않겠다 하셨고, 아빠는 이에 또 버럭 하시며, 왜 네 몫을 시켜 먹지 않느냐, 라고 하셨다. 엄마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셨고 아빠는 '다같이 먹어서 다같이 배고픈데 당신은 왜 안고프냐' 라고 하셨는데, 하아- 여기에서 나는 또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뭔가 한마디 하려다가 꾹 참고 일단 메뉴들을 시켜서 음식을 가지고 왔다. 우동 국물이 싱거웠고, 엄마는 당뇨인 아버지에게 싱거운 음식이 좋다며, 굳이 이것좀 드셔보시라며 그릇을 아빠 자리로 옮기는데, 공항내의 스티로폼 일회용 그릇이라 무척 약해서 휘청였다. 그때는 나도 도무지 더 참을 수가 없어 말했다.
아,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데, 우리, 서로를 너무 생각하지 말자. 너무 생각하니까 오히려 화가 나잖아. 아빠는 엄마가 먹고 싶을 때 먹게 그냥 내버려두고, 엄마는 그냥 그릇 앞에 두고 아빠 먹고 싶으면 먹게 둬.
- 애초에 목적은 처음으로 부모님 해외여행을 시켜드리는 것, 기내식을 드시게 하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드시게 하고, 좋은 숙박시설에서 모두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 다녀와서 부모님이 뿌듯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 이 목적은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괌에서 지내다 일정 시간이 지나니 당신이 영어를 하나도 하지 못한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꼈던 마음을 버리고, 우리가 자식새끼들 대학까지 가르쳐놨더니 외국에 와서 영어로 대화를 하네, 라며 결국은 감탄에 이르셨던 것. 니네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하냐, 언제 그렇게 영어를 배웠냐, 하셨던 거다. 우리가 했던 영어라고 해야 사실 별 거 없다. 이거 얼마냐, 네 명이다, 이 메뉴 줘라 등등. 기본적인 것들이었는데, 이게 아버지에게는 꽤 유창하게 보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낯선 환경을 싫어하시고, 이 여행도 달가워하지 않으셨더랬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성향을 아주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다녀와서는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진을 많이 찍으셨고 벌써부터 한국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만나 자랑할 생각에 신나하셨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갔다는 것, 자식들이 돈을 다 대주었다는 것, 아름다운 해변에 갔다는 것들을 자랑할 것이고 가장 크게는 '우리 자식 새끼들이 영어를 그렇게나 잘한다'는 걸 자랑하겠다 하셨다. 그 점이 몹시 흡족하다 하셨다. 나는 그 점에 크게 흡족했다. 이정도면 내가 원하는 바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 우리가 머물었던 숙소는 로비와 마트, 레스토랑 에서 와이파이가 되었으나 객실 내에서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았다. 이 점은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와이파이가 되었다면 아마 남동생과 나 또 엄마까지 일정 시간을 혹은 많은 시간을 스맛폰을 들여다보며 지냈으리라. 그래, 이게 더 나았어, 함께 온 여행에서는. 이라고 모두 다같이 생각했다. 그러나 남동생과 내가 둘이서 마트를 간다거나 할때는, 서로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깐 와이파이 쓰고 갈까?
라고 하며 의자에 앉곤 했다. 그리고 잠깐동안의 시간이 흐르면
이제 들어갈까?
하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가는 곳이 거의 해변이다 보니 실제로 인터넷을 쓸 시간은 별로 없었다. 인터넷이 되는 틈틈이, 나는 B 에게 연락을 했고, 나에게는 그게 중요했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와 B 가 '여행을 오롯이 즐기는 게 좋지 여행중에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는 건 싫다'는 말을 듣고 되게 서운했다.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고, 또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내게는 '이 낯선 곳에 있으면서도 여기에 내가 있고 거기에 네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게 꽤 중요한데. 여행을 오롯이 즐긴다는 게, 단순히 여행지에서 먹고 자고 보고 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원래 장소의 사람들을 잊고 타지에 열중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를 둘러싼 원래의 장소와 시간과 사람을 잊지 않고 타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는건데. 나는 나를 그렇게 확인하곤 했는데. 나 여기있어! 하면서. 나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안부가 아주 중요하고, 그렇게 내 안부도 전하고 싶은데. 그렇지만 싫다고 하니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제 막내랑 술먹던 중 얘기하니 막내가 그러더라.
"그런데요 과장님. 제 친구의 남자친구가 스페인에 가있는데요, 이십사시간 내내 연락한대요. 그래서 이새끼가 어디에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귀찮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보다 낫지 않아요?"
아..웃었어......
- 가족을 포함하여 친구나 애인이라고 해도 '여행 궁합'이 맞기는 힘든 것 같다. 어떤 관계라도 여행을 함께하다 보면 틀어지기가 너무 쉬운 듯. 그러므로 '여행메이트'는 따로 만들어 두는게 되게 중요한 것 같다. 익숙한 곳에서 함께 하는 것과 낯선 곳에서 함께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내 가장 좋은 여행친구는 D 이고, 그러므로 포르투갈도 D 와 함께 당연히 가기로 했는데, 이번 괌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남동생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어로 길을 물어야 할때마다 옆에 남동생이 있어서 되게 든든했다. 내가 이만큼 알아듣고 니가 이만큼 알아들어주면, 이걸로 충분하겠지, 하는 심정이 되어서 안도했달까. 많은 부분을 남동생에게 감사한다. 기꺼이 렌트해서 운전하겠다고 말해준 것도, 같이 들어줘 라고 말하면 옆에서 낯선 외국인의 말을 같이 들어준 것도. 심지어, 와이파이 잠깐 하고갈까? 라고 말했던 것까지. 얘는 진짜 최고다.
- 괌에 도착해서 낮은 건물들, 영어로 쓰여진 간판들, 양쪽으로 펼쳐진 나무길들, 어딜 가나 보이는 해변들 때문에 순간 확- 기분이 좋아지고 흥분이 됐었다. 홍콩 여행중에 잠깐 혼자만의 시간,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역시 아무도 모르는 낯선 거리를 잠깐 걷는데 그때 갑자기 확- 흥분이 되는 거다. 그래, 이거야! 하면서. 그 기분을 괌에서도 또 느꼈다. 낯선 상황, 낯선 사람은 늘 두렵지만, 그러나 그 와중에 흥분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난 지금 전혀 다른 새로운 곳에 와있어!
특히 나는 영어권 나라에 갈때 그런걸 느끼는 것 같다. 맨하탄에 도착했을 때, 길바닥에서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던가! 나는 아직도 대낮, 맨하탄에 도착해 여동생에게 전화하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 여행 내내 즐거웠던 건 아니지만, 목적한 바는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기를 잘했다는 것도. 두려워하시던 아버지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다음에 올때는' 이라고 자꾸 말씀하셨다. 하하하하하. 이제 아버지는 '다음'을 얘기한다.
역시, 처음만 어려운 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