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3. 14:14

엄마는 암 보험을 들어놨다고 했고, 보험금 받을 금액이 실제 수술 비용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그래서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아빠가 실직한지 반년이 지난 마당에 그렇게라도 돈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듣고 나 역시 오, 그거 좋은데? 했다. 이거 어쩐지 속물같지만, 사람 아픈걸로 돈 벌려고 하는거 그게 결코 옳은 게 아니지만, 어떤 마음인지 알겠는데? 하면서.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얘기한 거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말자, 이러면서 엄마랑 나는 깔깔대고 웃었었다. 그러니 암이 아니면 좋지만, 암이어도 괜찮다는. 수술도 간단하고 사흘정도면 퇴근한다하니, 뭐 암이어도 크게 걱정할 건 아니고 보험비 받아 생활하자, 이런 마인드로 우리는 어떤 결과에든 낙담하지 않기로 했던 거다. 크- 그래도 암인데 우리가 이러는 건 너무하지, 했다가 보험금액을 현실화 시켜보면 수술해도 괜찮지 뭐, 했던 거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담담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전 10:57

나는 외근중이었고 택시 안이었다.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 이 전화는 분명 검사 결과 전화겠구나. 여보세요, 받았다. 아빠 목소리가 딱히 좋은 것 같질 않아 불안불안한 마당에


암이래


라고 해서 나는 "암이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아니, 암이 아니래.


라고 한거다. '아니래'를 '암이래'로 들었던 것.


암이 아니라고? 암 아니래? 그럼 뭐래?


라고 되물으니 암이 아니고 혹이며, 그게 커지는지 안커지는지만 확인하면 되는거라 6개월뒤 다시 검사하러 오라고 했다는 거다. 약 먹을 필요도 없고 걱정할 게 없는 거라고. 순간 택시 안에서 울음이 터져버렸다. 내가 울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나는 암이면 수술하고 보험료 받지, 라고 생각했었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걸까. 암이 아니라는 말을 듣는 순간 흑흑 거린거다. 택시 안에서.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 남동생에게 전화해 이 소식을 알렸고, 마침 엄마에게 전화온다며 남동생은 내 전화를 끊었다. 이내 다시 전화해서는 그런데 왜 울먹였냐, 고 묻는거다. 그래서 몰라 암이 아니라는 말을 듣는데 막 눈물이 나잖아, 했다. 아..쓰면서도 또 눈물나네 ㅠㅠ 회산데 ㅠㅠ


남동생과 통화를 끊고 다시 아빠한테 전화했다.


아빠 옆에서 같이 들었어? 확실해? 다른 병원가서 다시 검사해봐야 하고 이런거 아냐? 


아빠는 아니라고, 안심해도 된다고, 아빠도 옆에서 같이 들었다고 했다. 자꾸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은행에 들어가 업무를 보던중, B로부터 문자메세지가 왔다. 결과 좋기를 기도한다는 메세지였다. 얼른 소식을 전하고 싶었는데, 문자메세지로 알리고 싶진 않았다. 은행 업무가 끝나기만을 기다려 전화를 할 생각인데, 오늘따라 은행 직원이 자꾸 말을 걸고 농담을 한다. 하아- 내가 웃는게 웃는 게 아니야. 나 빨리 은행에서 나가고 싶어, 업무 처리나 빨리 해줘!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 농담에 또다른 농담으로 대꾸해주었다. 


업무가 끝나고 나오자마자 B 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점심시간 전에 같이 먹는 직원에게 


언니가 커피 사줄게 텀블러 들고 가자


했다. 평소에는 언니라는 말 하지도 않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식당으로 가면서 언니 오늘 좋은일 있어,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양도 언니란 말에 웃으며 뭔데요? 물었고, 우리 엄마 암 아니래, 했다. 그러자 e 양이 등을 두드려 주었다. 고생했다고.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데 뭔가 내가 많이 먹는 느낌이 들어 얼른 생리어플을 틀어보았다. 생리가 9일 후였다. 오, 앞으로 신경 좀 쓰자고 생각했다. 갈 길이 머니까. 막 먹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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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