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4. 12:23

B는 고맙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대부분 밤에 통화하지만 어쩌다 내가 외근 나갈 때 전화하면, 아침부터 목소리 들려줘서 고맙다, 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가 고맙다는 말을 잘하기 때문에 나 역시 고맙다는 말을 인색하지 않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원래부터 고맙다는 말은 잘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스벅에 들러 커피를 사고 있는데, 그로부터 전화가 오다 끊기더라. 왜 하다말고 끊었냐, 라고 물으니 커피 산다길래 전화받을 손 없을것 같아 그랬다는 거다. 아직 내가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기 전이었던 나는 냉큼 전화기에 이어폰을 꽂고는 손 만들었으니 전화하라고 말했고, 그렇게 출근길에 짧게 통화했다. 그는 통화중에 '아침부터 목소리 들려주려고 전화했다'고 했고, 나는 잘했다고 했다. 2분도 안되는 그 짧은 통화를 마치고 회사 빌딩으로 들어가면서, 아 뭔가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의 내 연애에 있어서 나는 '어차피 헤어질 거니까'를 늘 전제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헤어지겠지, 라고. 이건 '줄리언 반스'가 그의 책에서 말한 '모든 사랑은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다'까지 나아가는 건 아니더라도, 그저 연애는 즐거운 것이니, 그 즐거움이 사라질 때쯤이면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물론 줄리언 반스의 말처럼, 어떤 사랑도 반드시 끝이 난다는 걸 전제하기도 했다. 좋았던 시절은 한순간, 이랄까. B 와 처음에 연애를 하면서도 그 생각을 종종 했었다. 언젠가는 헤어질텐데, 언젠가는 헤어지겠지, 하는. 나의 이런 생각은 그와의 대화중에도 수시로 드러났고, B 는 아직 오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왜그리 앞서서 걱정하느냐고 말했다. 그래도 초반에는 좀처럼 이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아까 통화를 마치면서는, 언젠가부터 내가 그와의 끝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이제 우리도 언젠가는 헤어지겠지, 라기 보다는 매일의 일상이, 그 일상속에 녹아든 그와의 관계가 오래, 그래서 단단하게 지속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거다. 우리가 이렇게 연애를 한 지도 일 년이 지났는데, 점점 더 즐거움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생각이 아니라,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 그래서 아, 여기까지 참 잘도 왔구나, 싶고 또 앞으로도 잘 가고싶다, 는 생각을 하게 되는거다. 끝을 생각하는 연애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뒤따라 올 수가 없다. 그저 그당시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행동할 뿐. 


그러나 끝을 생각하지 않는 관계란 조금 더 노력하게 되고 조금 더 배려하게 되고 조금 더 신경쓰게 되는, 결과적으로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결과를 불러온다. 



나는 여전히 매일 그에게 좋아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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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