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3. 09:36

어제 트위터를 통해 한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내 글을 봤다며 아버지를 인터뷰 하고 싶다는 거였다. 원한다면 모자이크 처리나 음성변조를 할 거라며, 감정 노동에 대한 인터뷰를 해줄 수 있겠느냐 묻더라. 나는 당연히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그래도 혹시 몰라 아버지께 여쭤보고 알려드리겠다 했다. 내가 그동안 봐 온 아버지는 그런 걸 할 리 없는 분이니까. 그 방송은 아마도 고발 방송 쯤이 될텐데, 거기에 나서서 인터뷰를 할 분이 아니시다. 그래서 어제 집에 돌아가 여쭤보았더니, 당연하게도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아빠는, 조만간 다시 경비 일을 시작하실 건데, 아무리 모자이크 처리한다고 해도 그것이 앞으로의 구직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셨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도, 아빠는, 앞에 나서는 걸 무엇보다 꺼려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나는 오늘 그 방송국에 연락을 했다. 유감스럽게도 아버지는 하지않겠다 하셨다, 고.



씁쓸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자리는 여기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인터뷰 요청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러움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텐데, 나에게 혹은 나의 아버지에게는 사회의 부당함,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라고 하다니.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내가 자리한 위치가 와닿았다고 해야할까. 물론 나는 오피니언 리더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이름을 떨치고 싶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약자이고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 쪽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 씁쓸했다. 어차피 이 사회에서 내 자리는 여기구나, 하는. 나는 감정 노동이 힘들고 부당하며 부조리하다, 고 대변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그런 사람의 딸이구나. 


아, 뭐 그렇다고 우울하다거나 한 건 아니고, 그저 순간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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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