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24. 14:56

k 부장은 가끔 여직원들에게 성희롱을 한다. 다른 임원들은 안그런데 부장이 한다. 본인은 애정의 표시이며 장난이고 친근감의 표시라고 말하지만 당하는 여직원들은 싫어한다. 그는 손을 잡자고 말하고 자기 품에 안기라고 말한다. 간혹 뽀뽀하는 시늉도 하는데, 지난번에 한번은 실제로 뽀뽀를 하기도 했다. 당한 여직원에게 전무님께 말하든가 고소를 하든가 하라고 했지만, 실상 근무하고 있는 중에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자기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걸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전무님께 가 말씀드렸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다, 직원들이 말도 못한다. 그러니 다시는 그러지말라 말좀 해주시라, 고. 그때 전무님은 부장을 불러 따끔하게 한말씀 하셨다고 했다. 그는 알았다고 답했고, 그 뒤로 약간 잠잠해지는 듯 싶었다가, 어김없이 예의 까불까불-애 둘의 아빠이다- 희롱을 했다. 본인은 여전히 그것이 희롱이라고 인정하지 못하면서. 못하는지 안하는지, 그는 오늘 꽤 심한 장난을 쳤고, 당한 여직원은 소리 지르며 울었다. 이에 당황한 부장은 미안하다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걸 이대로 두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뭘 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생각해낸 방법은 그가 있고 다른 여직원들이 있고 보쓰의 딸이 있는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거였다. '너 한번만 더 그러면 내가 회장님께 직접 너를 얘기하겠다' 라고. 모두가 듣는데서 개망신을 주고 협박할 참이었다. 나는 보쓰의 비서이고, 나는 이런 일에 있어서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예전에 공장에서 이런 일이 있고 내 귀에 들어왔을 때, 그때 가해자는 '임원'이었고, 당장 회장실에 들어가겠다는 나를 전무님이 말리셨더랬다. 잠깐만 참아달라고, 해결해 보시겠다고. 그리고 결국 시간이 지나 그 임원은 짤렸다.


나는 내가 보쓰의 비서란 걸 이럴 때 힘껏 이용해줄 생각이었다. 게다가 나는 다른 부서에 근무하다 보쓰가 '데려간' 직원이다. 나는 평소에 보쓰를 싫어하지만, 보쓰가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할 지는 알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도 나는 같이 근무하는 임원의 자리를 바꾼 적이 있다. 그때는 비서가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보쓰에게 말했다. 저 분이 앉는 자리가 내 옆이 아니길 원한다고. 그때 보쓰는 그 임원의 자리를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나는 내 힘을 알고, 이 회사의 임원들이 내 힘을 안다는 사실을 안다. 고작, 일개 '비서'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회사에서 십년 이상을 근무해왔다. 나는 같이 근무하는 임원이 공금횡령으로 쫓겨날 때 바로 밑의 직원였음에도, 다음해 비서실로 불려갈 정도로 신뢰가 쌓여있다.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이 가장 힘이 셀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전무님은 공장의 잘린 임원에게 '그때 비서과장이 말한다고 해서 내가 말렸다'는 얘기도 했더랬다. 나는, 평소에 그다지 힘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여기에 있어서만큼은 내 지위를 한껏 이용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보쓰의 딸이 있는 자리, 모든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과연 현명할까, 라고 했을 때 좀 갸웃해졌다. 어쩌면 그 부서의 팀장인 전무님이 난처해질런지도 모른다. 일단은 전무님이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을 것이다. 바로 보쓰의 딸을 통해 보스의 귀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전무님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을 것이다. 물론, 보쓰의 딸이 말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생각해냈다, 약간 더 부드러운 방법을. 그리고 전무님실로 내려갔다.



여자 과장 두 명을 불러 전무님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전무님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 k부장을 불러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라고 했다. 전무님은 무슨일이냐 놀라서 물으시고는 내가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부장을 불렀다. 부장님이 들어왔다. 그래서 말했다.



제가 보쓰의 딸이 있는 사무실 바깥에서 말을 하려다가 전무님 입장 난처하실 것 같아서 여기서 말씀 드리려고요.


전무님은 놀라서 말해보라 하셨다.


제가 지금 k 부장 듣는데서 얘기하는 겁니다. 만약 k 부장이 여직원 희롱했다는 소리 한 번만 더 들리면, 저 그자리에서 회장님께 보고 들어갑니다. 제가 직접 말씀드릴거에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무님과, k 부장과, 과장 두 명이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실은 피해자도 불러놓고 얘기할까 싶었는데, 일로도 많이 부딪히니 이건 나중에 따로 말해주자 싶었다. 전무님은 내 말을 듣고 대체 이게 뭔 소리냐 물었고, 나는 오늘 k 부장이 장난 쳐서 여직원 한명이 울었다, 나는 이걸 한번만 더 하면 회장님께 직접 보고드리려고 한다는 뜻이다, 라고 했다.


전무님은 k 부장에게 호통을 치셨다. k 부장은 우리가 있는 앞에서 잘못했다, 앞으로는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 고 말했다. 분위기는 삭막했고 오늘의 분위기로 보건데, 내가 얼마만큼 진심인지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k 부장의 표정과 말투가 그랬다. 평소 k 부장과 나는 아주 친한 사이다. 매우 친한 사이었지만, 이런 일에 얄짤 없는 법. 


말하는 동안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누가 대신 말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대신 말해주지 않았다. 말하고 나서도 손발이 부들부들 떨려 진정이 되질 않았다. k 부장에게 재차 다짐을 받고 전무님 실을 나왔다. 그리고 내 자리로 돌아와 피해 여직원에게 핸드폰으로 통화하자고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말했다. k 부장 불러서 직접 얘기했노라고. 회장님께 직접 보고 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는 얘기까지 했다. 여직원은 내게 고맙습니다, 과장님. 이라고 했다. 



아..아직까지 진정이 안돼.

그렇지만, 또 떨리더라도, 한번만 더그러면 나는, 정말로 회장님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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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