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전에 오랜만에 여자1과 왓츠앱으로 대화를 나눴다. 나는 전후사정을 아직 설명하지 않은채로 일단 키워드만을 던졌는데, 상대는 내 키워드만을 듣고도,
"빡치네?"
하고 순간 내가 되어주었다. 아, 그때의 안도감이란... 듣자마자 바로 내가 되어주려고 하고 공감해주려는 게 너무나 고마워서 마음이 너무나 좋았다. 그 뒤로 이어지는 수다가 솔직하며 함께 빡치고 함께 웃었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아, 여자친구의 존재 진짜 너무나 소중하다. 새삼, 나중에 여자친구들하고 공동체를 이뤄 함께 살면 매일이 즐겁겠다, 라는 환상을 품게 됐다. 아, 그렇지만 이 친구는 나랑 사는 것 보다는 남자랑 함께 살고 싶어할 확률이 100프로... ㅎㅎ
어제 만난 여행친구 D 도 그랬다. 내가 지금 술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에서 너무나 술안주로 좋은 육개장과 수육을 앞에 두고, 소주 마시고 싶으면 나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마셔라, 했더니 조금만 마시겠다며 친구는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이 친구로 말하자면 술을 나처럼 막 좋아하지도 않고 자주 마시지도 않아서, 친구도 나도 이 한 병에서 두 세잔정도 마시고 나머지는 남길것이라고 당연히 짐작했는데, 이어지는 폭풍수다에 친구는 홀짝홀짝 자기가 따라서 잘도 마셨고, 중간에 내가 빡쳤던 일들에 대해 부르르 떨며 얘기하자, '내가 대신 마셔줄게요' 하더니 또 홀짝홀짝...그래서 결국 한 잔쯤을 남기고 친구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것이다. 뭔가 친구는 기분도 좋아져 있었어. 내가 함께 마시는 게 아니어도 친구가 혼자서 맛있게 먹고 마시는 걸 보노라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 아아, 신난다. 역시 여자친구의 존재 너무나 소중해...
- 여름에 호주에 갈 계획이 있고, 아직 확정이 아닌지라 그냥 날짜 넣고 비행기표를 검색해보았다. 나는 진짜 미친건지, 맨날 어디를 이렇게 막 가고 싶고 그래..어디 가면 또 집에 가고 싶어하고 쉬고 싶어하면서, 어디 가는 거 왜이렇게 좋아할까...어쨌든 저가 비행기 타는 거 아니면 이정도의 돈을 들여야 되는구나, 흐음, 저가 안탈래, 국적기 탈래 하면서, 오늘쯤 예약할까, 이따 밤에 B 랑 통화할 때 '나 예약할까?' 물어봐야지, 생각했더랬다. 마침 저녁에 만난 친구 D 도 가라고 자꾸 뽐뿌질도 해주었고, 아아, 그래그래, 그러는거야, 했는데, 하하하하하, 밤에 통화하다가 비행기 표 예약할까, 라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간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그 포지션인줄도 새까맣게 몰랐던 다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느라....
사람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보니, 언제나 내 예측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모든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수시로 툭툭 튀어나와 나를 기분 좋게도 만들고 나를 기분 나쁘게도 만드는데, 어제는 정말이지 순식간에 기분이 완전 바닥이 되었고, 기분이 바닥이 된 나 스스로가 너무 짜증나고, 나는 뭔가... 내 존재에 대해, 내가 나를 이렇게 두어도 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렇게 화가 났는데도 나는 상대를 이해해보려고 졸라게 애를 쓰는 거다. 계속해서 그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는거겠지, 자꾸 생각하는 거다. 이 미친 사랑하는 능력...하아- 왜 내 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
'민해연'의 [커튼콜]이었나, 그 책에 보면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은 하지만 '영원히'라는 전제를 붙이지 않는 이유가 나온다. 사람이 1분 후에 1초 후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는데 영원을 약속하는 건 부질없다는 거였다. 어제는 새삼 실감했다. 앞 일, 정말 모르는구나. 나에게 어떤 일이 닥쳐올지, 내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1분 후에 내 기분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는 거야. 하하. 인생....
남자 졸라 싫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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