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안다니겠다, 다짐해놓고 어제 오늘 계속 남동생의 차를 타고 출근한 나년...그렇지만 어제와 오늘은 되게 좋았는데, 그건 가족만이 줄 수 있는, 남동생만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녀석의 차안에서 공일오비의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왔는데,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얘가 '나의' '동생'이 아니었다면, 첫째로 태어났거나 혹은 외동아들 이었다면, 얘가 듣는 노래들은 지금과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같은 것. 분명 얘가 나의 동생이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듣게 된 노래들이 있을 것인데, 신해철과 공일오비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뭐, 이걸 말해봤자 남동생이 웃기시네, 내가 들었거등,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중고등학교때 집에서 노래 틀어놓고 듣고 있으면,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자연스레 그 노래를 듣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녀석은 어릴 때부터의 나를 알고 나에게 익숙하고, 또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녀석이 모르는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도 마찬가지. 우리가 아무리 다른 남매들보다 많은 대화를 한다고 해도 분명 녀석에게는 내가 모르는 면들이 많이 존재할 것이다.
어제와 그제, B와 대화를 하면서, '아, 이사람이 나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가족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가족들에게 부러 말하지 않는 것들, 굳이 말하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더 알고 있을테고 또 보고 느끼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 물론 이사람 역시 나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가족에게만 보여지는, 그래서 가족만이 알 수 있는 모습들이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영화 [준벅]이 떠올랐다.
아내는 남편의 가족을 며칠 방문해 머무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있는지 몰랐던 모습들을 보게 된다. 또한 남편의 가족들의 배타적인 모습들까지. 교회에서 열심히 노래부르는 남편을 본 아내의 모습 같은 것들이 인상깊었는데, 그때 아내는 남편을 낯설게 느꼈다는 게 내게도 보였기 때문이다. 호감을 느껴 관계를 시작하게 됐고 관계를 지속하게 되서 결혼까지 이르렀으니 둘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비롯해서 많은 것들을 알겠지만, 여전히 낯설고 새로운 면은 있는 것 같다. 가족에게는 익숙하지만 애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 혹은 애인에게는 익숙하지만 가족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
콘돔을 가지고다니고, 섹스할 기회가 있으면 후회하지 않게 해야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나를, 가족들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