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31. 10:56

팀 쿡의 '내가 게이라는 걸 밝히는 이유' ▶ 여기.



이 글을 읽다가 구남친 K 가 떠올랐다. 우리는 스맛폰의 채팅창을 통해 대화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귀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실상 그다지 재미 없는 대화를 하곤 했었는데, 그러다가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그는 동성애를 혐오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혐오하지 않는 이유가 '그들은 아픈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아픈 사람을 혐오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그가 말하는 순간 아주 찜찜해졌었다. 아프다고? 아픈거라고? 뭐, 부질없는 말이지만, 나는 그때 아마 그 연애를 그만뒀어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에게 실망하기가 싫어서, 그를 싫어하기가 싫어서, 그의 단점이 거슬리는 게 싫어서, 얼른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한마디만 더 들으면 핸드폰을 던져버리게 될 것 같았다.


그는 꽤 착한 사람이었고 순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도 늘상 말해왔지만, 직장내에서 여자동료들이 아주 좋아할만한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남녀공학에 다녔던 학창시절, 여학생들로부터 편지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가 잘생겼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고 그는 말했는데, 나는 그가 잘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나 어떤 여자들에겐 잘생기게 느껴질 외모라고는 생각했다. 아니, 간혹 잘생겨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매력적이진 않았다고 해야할까. 


그와 나는 많은 대화를 했고, 그는 대부분 내 말에 동조하고 동의하며 잘 따랐으나 지나치게 순종적이었다. 갑자기 팀 쿡의 저 멋진 글을 읽는 순간, K 의 동성애에 대한 찜찜한 발언이 생각나 좀 짜증이 났다. 그는 나와 만나는 동안 여러차례 이메일을 보내고 또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며 달콤한 말들을 숱하게 내뱉었지만, 실상 그 달콤한 말들이 뭐였는지는 딱히 기억나지 않고-메일도 다 삭제해버렸다-, 저 말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저 기억은 불쑥불쑥 떠오르는데, 그때마다 짜증이난다. 그와 내가 둘이 대화했을 때 저런 말을 꺼냈기에 다행이지, 만약 내 친구들 앞에서 혹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 말을 했고, 그때 그의 포지션이 나의 애인이었다면, 나는 그를 몹시 창피하게 여겼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쓰다보니 나는 참 가혹한 여자란 생각이 든다.



어제는 오랜만에 전남친을 만났다. 나는 우리가 친구가 되었다고 믿었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 애써 모른척 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어제 했다. 아, 좀 더 시간을 두고 만날걸.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도, 그 말을 듣고 슬퍼하다가도 당신과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걸까? 앞에 앉아 여전한 그의 마음을 듣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한동안,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 그를 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드러내는 애정앞에 번번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집에 돌아오고 나니, 피곤한데도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이미 저지르고 난 뒤에 역시나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아, 만나지말걸, 했다. 침대에 앉아, 잠깐동안, 나란 년은 참 못된년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말했듯이, 나는 앞으로도 못되게 살 것 같다. 심란한 마음을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도로 내려 놓았다. 대신, 뒤척였다. 내가 매몰차게 거절한게 맞는지, 혹시라도 여지를 준 건 아닌지 어제의 대화를 곱씹어보고 싶지만, 피곤하다.



그간 내게 연애가 전혀 어렵지 않았던 건, 나 좋다는 사람이면 그냥 그래, 이러면서 진행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게 더 행복한 사람이란걸 알면서도, 그냥 막 갔어.. 연애는 매번 어떤 도피처가 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거절당한 아픔에 대한 도피처라든가, 성인 남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선택하게 된 도피처라든가, 뭐 그런것들. 암튼 그래서 처절하게 마음먹었다. 이제 연애 안하기로. 다 필요없어..


오늘은 돌이켜본 연애가 왜이렇게 하나같이 다 짜증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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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