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22. 11:53

오늘 정치하는 사람들 두 명에 관한 배우자 인터뷰를 읽었다. 둘다 대학시절에 인연이 닿았고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다 연인이 되어 부부가 되었는데, 그래서 자신들의 배우자가 걷고자 하는 정치인의 길을 응원하는 게 되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 과정에서 여자 배우자는 더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양육과 가사노동에 전념해야했고, 자신의 커리어까지 포기해야 했던 것은 남자 배우자와 같지만, 남자 정치인의 경우 남편이나 아빠로서 딱히 다정하고 충실한 느낌은 아니더라. 그냥 전형적인 한국남자... 인터뷰 만으로 보면 두 정치인 모두 다 좋은 배우자를 만난 것 같았다. 지향하는 바가 같고 또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는 짝을 만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은 아닐테니 말이다. 사실, 남자 정치인보다 남자 정치인의 배우자쪽이 훨씬 더 멋진 것 같아.....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고 그걸 인식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함께 보고 그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진짜 근사한 일일 것 같다. 함께산다는 건 이런게 담보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잘한다는 것을 상대가 믿고 상대가 잘할것이라는 것을 내가 믿는 것. 자꾸만 상대로부터 실망감만 갖게 되고, 상대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까봐 불안하다면, 그런 관계로 계속 함께해간다는 건 그만둬야 되는 게 아닐까. 나라는 인간은 여기까지 내 의지대로 또 내 생각대로 왔고 또 상대는 상대의 의지와 생각대로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일테니, 그런 둘이 만나 앞으로 가는 과정에서 '이사람은 잘해온 사람이야'라는 신뢰가 필요한 거 같다. 저 두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나라면 정치를 하고자 하는 나의 배우자를 지원할 든든한 짝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택도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면 만약 내가 정치를 한다고 했을 때 나의 배우자가 나의 든든한 짝이 되어줄 수 있을까?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든든히 잘 맞는 사람을 고르는 것은 진짜 어렵고 어렵고 또 어려울 것 같다. 혼자 가는 게 나을듯...


그런 한편, 똑똑한 여자가 똑똑한 남자를 만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물론 저건 반대로도 당연히 성립하는 거고, 동성으로 봐도 마찬가지인데, 똑똑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을 선택해 함께하게 되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 것. 물론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만나 좋은 관계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만나야 좋은 관계가 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나와 바라보는 방향이 같은 사람. 저 두 정치인이 힘껏 지원해주는 배우자와 함께 계속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건, 바라보는 방향이 같고 그 방향으로 갈 거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가 될 순 없겠지만(뭐 누군가에겐 그럴 수도 있을거고),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행운임에 틀림없다. 



엊그제 여동생이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아빠는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셨는데, 여동생과 아빠는 한참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었고, 나도 간혹 껴들었다. '이거 스피커폰이야, 너에게 프라이버시는 없어! '라면서. 깔깔 웃으며 통화하다가, 여동생은 아빠한테 참 다정하네, 하는 생각이들었다. 여동생은 가끔 아빠 보고싶다고 전화를 자주 드리는데, 내 경우엔 아빠에게 전화하는 일이 별로 없어... 외국으로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전화는 엄마에게만 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그 사람이 설사 가족일지라도) 다정하기 위해서라면 애를 써야 한다. 본성이 다정해서 저절로 다정다정 말투가 나오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다정하고 싶은, 다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정모드 버튼을 누르는거다. 그 버튼은 내 상태가 괜찮을 때 잘 눌리는데, 내 컨디션이 엉망이면 그 버튼을 누르기가 쉽지 않아서 본래의 성격이나 말투가 나와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구나 '저절로', '아주 자연스럽게' 다정모드 버튼이 눌리는 상대가 있기 마련인데, 내 경우엔 나의 조카들이 그렇다. 조카들에 대해서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다정모드로 전환된다. 여동생의 경우엔 우리 아빠에게 그런 것 같다. 같은 아빠인데 여동생과 내가 인식하는 아빠는 왜이렇게 다른가..


나의 아빠는,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면 세상 좋은 아빠다. 이런 아빠가 없다고 할 정도로 다정하고 사랑이 넘친다. 감정 표현도 엄청 잘하고, 한 친구는 내게 '네가 아빠 닮아서 감정 표현을 잘하는 것 같다'고 한 적도 있다. 또 한 친구는 내게 '대체적으로 아빠들이 한남이라 여자들이 페미니스트가 되는것 같은데, 너는 다정한 아빠 밑에서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됐네' 라고 하기도 했다. 왜 나에게 아빠는 다정모드 버튼이 저절로 눌려지는 사람이 아닌걸까? 신기하다...... 우리 아빠 다정하고 감정 표현 잘하고 자식과 아내를 끔찍하게 사랑하지만 한남이여..... 전형적 한남이여.........다정모드가 안눌려........... 



일전에 구남친중에 한 명이 '우리 엄마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아빠랑 이혼했으면 좋겠어' 라는 나의 말에 '너는 너네 엄마를 엄마로 보기보다는 한 사람의 여자로 생각하네'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아빠에 대해서도 한 사람의 남자, 인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아빠'보다 먼저 이 '인간', '남자'로 떨어뜨려놓기 때문에 막 사랑하게 되질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것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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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