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때 수학선생님은 남자였는데, 당시에 남자 문학선생님과 노총각선생으로 둘이 유명했다. 둘 다 대머리였고, 전교조였으며, 교장교감에게 반항하고, 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으며, 이 둘은 서로 학교에서 제일 친했다는 사실을 언제나 드러내곤 했다. 이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도 인기 많았었는데, 나는 둘 다 딱히 좋아하질 않았더랬다. 수학쌤은 노총각으로 오래 지내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신혼여행후 첫 수업에 우리는 선생님께 첫날밤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댔고, 선생님은 안 해줄것 처럼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첫날밤에 울더라.."
우리는 어우~ 이러면서 야유를 했는데, 선생님은 거기다대고 '왜우는지 모르겠어 이래저래 복잡했나' 라고 독백인듯 방백인듯 얘기를 했는데, 그때 한 학생이,
"아프니까."
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교실엔 정적이 찾아왔다. 선생님도 학생들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학급 분위기가 썰렁해졌고 그 썰렁해짐이 쉽게 사라지질 않았다. 그렇게 말한 아이는 아마도 더 재미있는 극적 효과를 누려서 얘기했을 것이다. 평소에 재미있는 아이라고 인정받는 아이었고, 그렇게 다른 아이들을 많이 웃겼으니까. 그러니 그때도 선생님의 첫날밤과 우리들의 야유에 어떤 깔깔댐을 보태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어떤 '선을 넘은' 발언 같은 것이었고, 아무도 웃지 못했으며, 분위기만 어색해졌다.
나는 평소에 웃기는 아이었던 이 아이가, 이번에도 웃기고싶다는 욕심으로 그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욕심이 과한 나머지 선을 넘은 발언을 해버렸다. 그 말은 하고나서야 잘못된 말임을 모두가 알게 되었는데, 이미 던져진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가 없었다. 그 말을 들어놓고 모두들 안들은 것처럼 할 수 없었다.
오늘 내가 B 에게 그때 그 학생같은 발언을 했다. 사이좋게 다정하게 깔깔대고 웃으며 얘기하다가 과욕을 부려 말실수를 했고, 이에 그는 상처입었다. 나는 내가 그에게 상처입힌 말을 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하였고 당신 머릿속에서 그 말을 지워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뱉어낸 말을 어떻게 지워낼 것인가. 들어놓고 어떻게 안들은 듯 할것인가. 나 역시 상처 받았던 말들이 있고, 그 말에 대해서라면 상대가 사과했다 해서 바로 지워내거나 하지도 못했는데...
그를 상처입혀서, 그를 상처입힌 게 나여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에게 상처를 줘도, 나만은 그에게 그러지 않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 남동생의 결혼은 착착 잘 진행되어 오다가, 교회 때문에 잠깐 멈칫하고 있다. 상대쪽에서 교회 다니지 않는 남동생에 대해서 교회다니기를 요구한 것. 남동생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앞으로 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 고 진즉에 말해두었는데, 상대쪽에서는 '지금 당장'을 요구한 거다. 이게 상견례 때만 해도 그러지 않았었는데, 상대쪽 친척들이 정말이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크리스천 이었던 거다. 목사가 세 분이신가 한다니.... 그러다보니 그 쪽 집에서 고모님이 자꾸 '지금 당장 믿어야지!'를 강요하신 모양이다. 이에 상대방 어머님이 흔들흔들 하신 것. 아, 나는 이 일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생각같아선 다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상견례에서 친척들 중에 목사가 여럿 이라는 말을 듣고는 내가 속으로 '아, 잘못했구나, 이럴 줄은 몰랐네' 라고 생각했다. 나랑 비슷한 성격을 가진 남동생이 이 환경에서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까. 아.. 너무 갑갑한 환경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은 거다. 나 역시 상견례에서 '나는 교회를 안다니고 앞으로도 다닐 생각 없다'고 말하면서 '내 남동생이 다니고 안다니고는 지들도 다 성인이니 누가 뭐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들이 알아서 결정하고 행동할 거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고, 상대의 부모들도 알겠다고 했는데, 아아, 이게 뭐야.
남동생도 계속 고민했고 엄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것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라고 하셨다. '엄마는 교회를 다니고 있고 네가 교회를 다녓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만 나도 여태 너한테 교회 다니라고 강요하지 않고 살았는데, 걔네 부모님이 너한테 강요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니 마음대로 해라' 라고 하셨고, 남동생도 애인을 만나서 자신의 얘길 전하고, 지금 현재는 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상태인가보다.
남동생은, 당연한 얘기지만, 여자친구를 좋아한다. 좋아해서 결혼을 생각한 것이고, 금요일에 나랑 술을 마시면서도, 결혼해서 지금의 여자친구랑 살면 참 좋을것 같다고 한다. 여자친구는 가족들 모두, 친척들 모두가 교회를 다니는 그 환경에서도 남동생에게 '오빠도 교회 나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모든 게 다 좋은데, 그쪽 집의 절실한 신앙이 이렇게 툭, 걸리다니... 이것도 너무 안타깝다.
그렇지만, 남동생이 이런 일로 고민한다고 하니, 여자친구 아버님께서 '우리 식구 모두 대빵이 편이니 절대 걱정하지 말고, 만약 고모가 대빵이한테 뭐라 하면 내가 혼내주겠다!' 고 하셨단다. 남동생 마음 편해짐 ㅋㅋㅋㅋㅋㅋㅋ
- 지난주였나, 내 나이 또래의 지인 분과 레스토랑에서 감바스와 찹스테이크를 안주 삼아 와인을 마셨다. 내가 회사 근처로 모시고 간 거였는데, 아마도 학부모를 만나거나 친구들을 만나면서 늦게 술을 마시러 갈 일이 없어 그런것이겠지만, 이런 레스토랑도 처음이고 감바스도 처음이라며 너무 흥분하고 좋아하셨다. 그 분이 이렇게나 레스토랑과 술과 안주를 좋아하시는 걸 보니 참 흡족하더라. 그 분은 첫째 아들이 대학생인데, 좀 있으면 둘째까지 성인이 될 것이고, 본격적으로 여유있게 이렇게 좋은 레스토랑에 밤에 다니실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문득, 내가 너무 해놓은 게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 여기까지 온 것은 내 선택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것이 나의 삶이지만, 내가 너무 해놓은 게 없는 건 아닌가, 내가 너무 멈춰있는 건 아닌가 싶은 거다. 함께할 반려자를 만나고, 그 사람과 만나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들은 앞으로 쭉쭉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혼자서, 그냥 정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러자 몹시 우울해졌다. 이 삶이 저 삶보다 멈춰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 사람은 자기 삶의 모습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못났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스스로에게 또 실망하게 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무엇인가,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하는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내가 강박을 가진 건 아닌가, 왜 자꾸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 여동생의 베프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여동생은 오늘 문병갔다가 나랑 통화를 했는데, 일단 종양 제거는 잘했고 다른 부위로 전이된 것도 없다고 했다는데,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는, 제거된 종양을 조직검사 해야 알 수 있다고 했고, 그 결과를 들어야 하는가보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정말이지 얼마나 막막했을까, 얼마나 우울했을까. 너무 안타깝다. 그 친구로 말하자면 내가 그 친구의 결혼식도 갔었고, 아이 돌잔치에도 갔었는데... 수술이 잘 되었다니 다행이고, 빨리 회복해서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 생일때 친구들로부터 백화점 상품권을 받아서 오늘 그걸로 떨어진 화장품을 사러 갔다. 요가할 때 입을 브라탑도 좀 사고, 독일제라는 와인잔도 두 개 샀다. 플라스틱이라니, 마음 놓고 써도 되겠다 싶었다. 일전에 친구로부터 아주 좋은 독일 와인잔을 받았는데 깨먹어서 너무 속이 상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좀 튼튼한 크리스탈로 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가보니, 오! 플라스틱이 있다. 나름 괜찮아! 이따 이거 써봐야겠다. 와인 한 잔 하고 자야지. 아 문제는 그게 아니고, 평소에 화장품을 샀던 에스티로더 매장에 가서 파우더 리필을 달라고 하니, 이 제품은 단종됐다는 거다. 씨부럴 ㅠㅠㅠ 아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금 갖고 있는 것도 몇 해전에 쓰던 게 단종됐다고 해서 이걸 산건데, 뭘 또 단종이 돼서 다른 걸 사야된대. 아니 단종될거면 케이스는 똑같은 사이즈로 만들어놓던가. 이번에는 네모난 케이스네, 지난번에는 동그란 케이스였는데, 천상 케이스까지 완제품으로 사야하니 진짜 좆같은 거다. 아, 진짜 안 살 수도 없고 해서 사긴 샀지만, 빡침 --^
- 토요일에 요가 갔다가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셨고, 월요일에도 요가를 갈 계획인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일자산을 갈까말까 엄청 고민했다. 사실 이번 일요일엔 안가겠다,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당연히 안가려고 했는데, 막상 일요일이 되니까 가야되는 거 아닐까 싶어진 거다. 그래서 가자, 갔다오는 게 속편하다, 하면서 스스로 '나 운동중독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를 남동생에게 하니, '누나 절대 운동중독 아니다' 라고 하면서 무슨 소리 하는거냐고 빵터지고, B 도 올해 들은 말중에 가장 웃기다며 나 운동중독 아니라고 했다. 음...나 운동중독 같은데? 여하튼 운동중독인 나는 일자산에 다녀왔다. 맙소사. 지난주에 월,화,수,토 요가를 다녀왔고 일요일 일자산이라니.... 나 운동중독 맞지 않아???
-나의 여행친구 D 가 다른 친구와 휴가를 다녀왔는데, 그 과정에서 제대로 먹지도 즐기지도 못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던 모양이다. 나를 만나 양념족발을 먹고, 감바스에 와인을 먹는데 평소보다 훨씬 더 흥분을 하고 즐거워하는 거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야 즐겁다며, 아주 즐겁게 먹고 마시는 걸 보니 또 내 마음이 좋았다 ㅠㅠ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즐거워한다니, 이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 일인가. 이래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도 만들고 또 사랑을 하고, 우정을 나누고 하면서 사는가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진짜 이정도면 되는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거. 그냥 이거면 다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책 좀 읽다가, 와인 한 잔 마시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