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정한 순서없이 김생민의 영수증을 듣고 있다. 내 보직이 보직이니만큼 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러한 터라 거기에 대해서도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얘기가 나왔었다. 급여는 상대적이니 그걸로 비교하며 박탈감 느끼지 말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라는 말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고 기본적인 해결방법이긴 하지만, 사람은 '사람' 이라서, 감정이 있는 동물이라서 언제나 생각처럼 잘 되는 건 아니다. 보쓰의 카드청구서나 아파트 관리비 같은 걸 보노라면, 내가 이렇게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근무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생각하게 된다. 내 연봉보다 더 큰 금액으로 시계를 사는 걸 보면서 내가 느끼는 무력함이란, 물론 금세 지나가긴 하지만 정말 유쾌하지 않다. 며칠전에 출판사 대표님과 실장님, S교수님을 만났는데, 보쓰에 대해 몇 가지만 말했는데도 거기서 어떻게 버티느냐 하면서, 교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너에겐 거기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 맞는 게 있는거라고, 아니면 거길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느냐는 거였다. 나는 내가 보쓰와 뭔가 맞는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최근에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멘탈이 참 강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여기에서 이렇게 버티면서 일할 수 있는 거라고. 내가 1년에 버는 돈보다 더 큰 금액을 팍팍 쓰는 걸 보면서 내가 내 삶에 아무런 영향도 안받고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은 내 멘탈이 되게 강하다는 의미 같은 거다. 사람은 무너지기 쉽고, 나는 그런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편의점에서 알바할 때도 오랜 기간 알바하면서 어마어마하게 만은 알바생을 겪었는데, 아주 많은 알바생이 성실하게 일 잘 하다가 갑자기 금고의 돈을 들고 가버리는 거다. 나는 그들이 대부분 처음부터 그럴 의도로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 시간에 2천원도 안되는 돈을 받으면서 금고에 있는 몇 십만원의 돈을 본 순간 돌아버린 게 아닐까 싶은 거다. 순간 멘탈이 흔들린 게 아닐까. 견물생심.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라도, 아아 나는 너무 못났다, 내가 버는 돈은 껌값밖에 안되는구나, 이렇게 열심히 살아봤자 내 삶이 나아지겠는가....하고 무너져버려서 지금 이 자리를 버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던 거다. 울 보쓰의 한 달 아파트 관리비는 영수증에 사연을 보낸 어떤 사람의 월급보다 많다.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나, 이거 뭔가 부르르 떨면서 세상 다 뒤집어버리고 싶어지지 않나 이 말이다. 그러나 월급은 상대적이고, 김생민의 말대로 우리는 자기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
영수증에 사연을 보낸 사람들은 '절실함'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뭔가를 원하는 사람들. 그러니 그에 맞춰 재무상담을 해주는 거고, 그런 절실함이 없는 나의 입장에서는 김생민이 말하는대로 살 순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의 즐거움에 투자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즐겁게 살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나보다 더 적은 월급을 받는 사람이 나보다 오십만원이나 더 적금을 붓고 있는 걸 듣고 뭔가 좀 .. 충격이었다. 나보다 적게 버는데 나보다 많이 모으고 살다니...물론 그 사람이 모으는 돈으로 나는 술을 마시고 책을 사고 여행을 갔겠지만, 그래도 뭔가 좀 충격이어서, 아아, 내가 이대로 살아도 되는가, 이렇게 살아도 좋은것인가... 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나도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나 싶었다. 돈을 지금보다는 좀 아껴가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당장 내가 줄일 수 있는 게 뭔가...하고 물었더니 커피값과 책값이었다. 커피는 회사에서 내려 마시면 되니까, 맛은 떨어져도 그래도 커피니까...그리고 책은 사두고 안 읽은 게 많으니까, 이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그리고 아이폰8 플러스를 사고 싶었는데, 지금 사용하는 걸로 사이즈에 큰 불만 없었던 바, 플러스 대신 그냥 아이폰8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11만원 정도의 차이가 난다.
할 수 있을까?
사실 내가 적금을 붓고 있기는 하지만 매달 붓지는 못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빵구나면 적금 안붓고 메꿔버리는 삶을 살고 있던 터라, 만약 적금을 내가 꼬박꼬박 잘넣었다면 지금보다 더 큰 돈을 모였겠지....그렇지만 이런 말 다 무슨 소용이야. 나는 그 돈 써버리면서 뉴욕엘 가고 런던엘 가고 하노이엘 갔지. 하ㅏ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돈을 안모으고 프란세진야를 먹으러 리스본에 다녀왔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돈을 안모으고 말레시이사에 남자 만나러 갔다왔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내 삶에 불만 없어. 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다. 그렇지만 줄일 수 있는 건 줄여보자고 생각한다. 뭐랄까, 약간의 자극 같은 걸 받았달까. 사람들, 돈 잘 모으고 사는구나.....
- 건강검진을 받았다. 좀 오랜만에 받았는데, 처음으로 유방암 검사와 갑상선 초음파 검사도 했다. 혈액검사는 10만원을 추가해서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 대체적으로는 양호했다. 그런데 갑상선 초음파에서 감상선에 결절이 있다는 걸 알게됐고, 현재로는 위험해 보이지 않으므로 6개월뒤에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하라고 닥터가 말했다. 사이즈가 더 커지지 않으면 괜찮은건데, 혹여라도 6개월 뒤에 사이즈 커지면 조직검사를 해야 할거라고. 선생님 암 일수도 있다는 건가요? 물으니,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이 상태로 그냥 유지가 되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결절 같은 거, 위에도 신장에도 장에도 누구나 다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반드시 위험한 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결절 때문에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검사도 한다는 걸 알긴 하지만, 그래도 내 갑상선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아는 건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검진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 좀 우울했달까. 이 결절이란 게 내가 뭘 잘못해서 생긴 건 아니라서 내가 또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거기에 그게 있다는 거, 좀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좀 우울한 마음을 안고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러 갔다. 자궁경부암 검사는 무료였지만, 나는 또 돈을 더 주고 자궁초음파 검사를 했다. 나중에 암검사 결과는 이상없다는 거였고, 즉시에서 초음파 검사는 같이 보면서 얘기해줬는데, 자궁도 질도 난소도 다 깨끗하다는 거였다. 갑상선 때문에 조금 우울했다가 다시 기분 좋아져서 돌아갔다.
그리고 어제 건강검진 결과가 등기로 날아왔다. 갑상선에 대한거야 알고 있었던 거고, 위에 염증이 있다고 했다. 뭐, 이건 현대인들이 다 있는 거니까 그렇게 넘어갔는데, 유방암 검사에 뭐라뭐라 써있는 거다. 뭔가 놀라서 읽어봤는데, 치밀유방이라 초음파 검사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이게 시방 무슨 소린가..치밀유방이 뭐여...하고 인터넷 검색해보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눠봤는데, 그러니까 치밀유방이란 것 자체가 어떤 병이라거나 한 게 아니라, 쉽게 말해서 '니 유방이 치밀해서 엑스레이 검사 결과가 잘 안보여, 초음파로 다시 검사해봐'란 뜻이었다. 나는 여태 살면서 내가 치밀유방이라는데도 치밀유방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봐. 이게 아시아 여자들이 대부분 치밀유방이란다. 이 치밀유방은 출산하고나면 젖몸살을 심하게 앓는 유방이라고...오.........
갑상선 호르몬과 당뇨검사가 나는 사실 제일 궁금했다. 갑상선 초음파때 결절이 있다고 해서 혹여나 호르몬에도 이상이 있다면 계속 약먹으며 생활해야 할 테니까. 당뇨는 가족력이 있어서 좀 두근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모두 다 정상이었다.
- 토요일에 오랜만에 요가를 갔다. 연휴 때문에 못간 게 길었고, 그 뒤로도 이래저래 약속이 있어서 바빠 못갔는데, 아아 그동안 몸이 굳었겠구나...하는 마음으로 센터에 갔다가 쌤을 똭 보는데 갑자기 막 기분이 좋아져. 아, 요가 너무나 이상한 것. 그냥 쌤 얼굴만 봤는데도 힐링이 되는거다. 요가쌤들 다 너무 좋고, 이번주 토요일의 쌤 너무 좋아... 쌤 너무 좋아......나는 그냥 막 갔다는 사실 만으로 힐링이 돼....좋아... 그래서 한 시간 하고나니 땀도 나고 기분도 너무 좋았다. 지금은 덕분에 온 몸이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넘나 좋은 것...
요가를 하면서 시간이 지나니 점점 달라지는 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보다 가벼웠다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가벼운 사람이 무거운 사람보다 더 유연한 건 아니지만, 무겁기 때문에 잘 안되는 동작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어떤 동작들에서는 '아 내가 지금보다 날씬하다면 이거 될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하니까. 그래서 좀 가벼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해서 다이어트를 막 빡시게 하거나 하는 건 아니라도, 이제 연휴도 끝났겠다, 일상의 패턴 속에 다이어트를 좀 녹여볼까 하는 거다. 일단 요가를 가는 날에는 밥을 한 그릇 다 먹으면 오히려 요가하는 데 불편해지니, 요가를 가는 날 저녁은 가볍게 먹는 거다. 그리고 술 약속은 가급적 잡지 않고, 밀가루도 가급적 멀리하는 걸로. 이게 내 성격상 어떻게든 압박적으로 느껴지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생활속에서 할 수있는 범위 내에서만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운동을 놓지 않으면 지금보다 조금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은 거다.
- 알라딘에서 대학원 진학해 여성학 공부를 하시는 분을 보고 또 자극을 받아서 대학원 갈까... 여행지에서 좀 고민했더랬다. 학비라든가 생활에 많은 영향을 받을테니 안하는 쪽으로 다시 결론이 나기는 하지만,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다. 이번에도 페미니즘 강의를 매주 수요일에 두 달간 듣기로 하면서, 이것보다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게다가 11월에는 문학비평 강좌도 있는데, 그것까지 들으면 나 죽겠지? 피곤해서 또 입술 부르트고 난리나겠지? 그래도 듣고싶다 ㅠㅠ 이걸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 11월에도 강의를 신청한다면, 나는 일주일에 요가 세 번(혹은 네 번), 강의 두 번을 들어야 하는데...회사를 다니면서 이것들을 소화할 수 있을까? 그러면 구몬은? 지금도 밀렸는데? 아니,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피곤속으로 나를 몰아넣는가.... 이건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 며칠전 출판사, s 교수님과의 만남에서, 교수님의 다음 책 컨셉이 내 다음책 컨셉과 같다는 걸 알게됐다. 으윽, 인지도 면에서 나는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저런 분하고 같은 책을 내면...으윽.... 대표님은 내게 서두르라고 말했고, 언제 되겠느냐 물으셨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어떡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교수님은 본인보다 먼저 내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나 어떡하지. 무슨 삶이 이렇게 바빠? 책을 통 읽지 못하는 채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어. 힘들다 진짜. 하아- 일기 다 쓰면 구몬을 할까 책을 읽을까.....
- B가 나랑 참 친하구나, 이 사람은 나를 깊게 이해하는구나,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절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건 내가 연기하는 걸 알아챌 때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내가 대화하다가 슬프거나 화나는 연기를 하는데, 이 생활속에 녹여낸 진정한 연기를 금세 연기인 줄 아는 거다. '야 너 어디서 또 발연기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마다 내가 '대단하다, 이 진실된 연기를 금세 눈치채다니!!' 하는 거다. 이거 눈치채다니, 너 진짜 나 깊이 이해한다, 나 좋아하는구나, 하면 그때마다 한 숨 쉬면서 '너 너무 발연기라 누가 봐도 연기 티나..' 한다. 후훗. 웃기지마..이건 아무도 연기인 줄 알 수 없어....내가 만들어낸 사람과 내 스스로가 일치하는 놀라운 연기란 말이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 그런데 알아채다니, 네가 대단한 거다!!!
- 아 근육통 너무 심하다.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