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26. 17:06

- 올여름은 가히 거봉의 계절이었다. 그간 사십년 가까이 살아오며 먹었던 거봉보다 올 여름에 먹은 거봉의 양이 몇 배는 더 많았을 터. 깎아먹는 게 귀찮아서 과일 먹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포도도 당연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걸 입안에 넣고 껍질 뱉고 씨 뱉고 하는 게 영 귀찮아서.. 그렇다고 죄다 씹기도 거시기하고 다 삼키는 것도 의미가 없어서 안좋아하는 수많은 과일중에 포도가 있었는데, 올해 거봉은 귀찮아도 자꾸 먹었다. 


막내이모가 결혼한 후 매해 여름에 거봉을 보내줬다. 과수원집에 시집간 이모는 과수원일을 같이 하다가 지금은 회사를 다니게 됐는데, 해마다 추석이면 과수원에서 딴 포도를 잔뜩 가져다줬다. 아니, 포도가 아니라 거봉이다. 처음엔 당연히 귀찮아서 심드렁 했는데, 이게 먹어보니 그냥 포도랑은 차원이 달라. 입장 포도가 유명하다더니 왜 유명한지 알겠더라. 진짜 달아 터지는 거다. 그렇다해도 그동안에는 이 단맛 보다 귀찮음이 더 커 심드렁했는데, 올해는 귀찮음보다 단 맛이 더 크더라. 진짜 먹고 먹고 또 먹고, 집에 이모가 가져온 거봉은 내가 다 먹었다. 여동생 집에도 한 박스를 가져다 주었는데, 타미가 그걸 알고는 '할머니가 가져온 포도'를 달라고 했다. 자기네 집에 있던 포도 말고. 그러더니 엄청 잘 먹더라. 우리가 가져온 큰 포도가 더 달고 맛있다는 걸 쪼꼬만 게 벌써 아는 것 같다. ㅎㅎ 


그래서 정말 부족함없이 달디단 거봉을 흡입하는 여름을 보냈는데, 이게 자꾸 생각난다. 매일 밤마다 아, 거봉 먹고 싶다,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모가 결혼한 후 입장 거봉의 맛을 아는 몸이 되어, 그 뒤로 과일중에 포도는 사먹는 일이 없고, 선물이 들어오면 다들 시큰둥해, 갈아먹던가 해야 가까스로 먹을 수 있다. 아, 거봉의 맛을 알면 헤어나올 수가 없어.. 그래서 자꾸만 거봉이 생각난다.


이게 너무 맛있어서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이모네는 거봉을 택배로 보내지 않는다더라. 보내는 과정에서 다 망가진다고... 아, 뭔지 너무나 알겠지만, 이 맛을 나 혼자만 아는 게 너무나 아깝다. B 에게도 보내주고 싶지만, 거봉을 며칠걸려 그 곳으로 보내는 것은 말도 안되는 거지...




- 일요일 오후엔 타미네가 왔다. 타미는 날 보자마자 모닝글로리에 가자고 했고, 그렇게 나는 타미의 손을 잡고 모닝글로리엘 갔다.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꼭 그렇게 사고싶어해서, 그럴때마다 아, 이게 옳은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거 낭비인건가.. 


타미야, 꼭 필요한 것만 사.

왜?

낭비하면 안되니까.

낭비가 뭐야?

........................



멘붕. 낭비를 뭐라고 답해야 하나... 말문이 막혔던 나는 음, 쓸데없이 물건을 사서 쓰지 않는 걸 말해, 필요하지 않은데 그냥 사는 거....라고 하자 타미는 난 다 필요해, 라더라...


음............................


내가 또 할 말이 없네.


여튼 타미 손을 잡고 모닝글로리에 가서 이매대 저매대 타미가 가는대로 졸졸 따라다니는데 처음엔 가방을 사겠단다. 아, 안돼, 너무 커. 다른 거 사, 라고 하자 또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타미야 하나만 사, 라고 하자 두 개 살거야, 두개 필요해, 다 필요해, 란다. 자신이 뭘 살지 결정도 못해놓고서...하아- 알았다고 한 뒤에 타미가 고른 것은 키티 인형(7천원), 공주스티커(3천원) 이다.


일전에 타미 꺼를 화니가 다 뺏으려고 해서 둘이 싸운다는 말을 들은터라, 여동생에게 전화했다. 똑같은 거 하나씩 더 사야되지? 여동생은 그렇다 했다. 같은 인형을 사줘도 꼭 타미것을 뺏으려해 색깔까지 똑같은 걸 사줘야한다는 얘길 들었던 게 기억나서, 인형도 타미가 고른 것과 똑같은 거, 스티커도 공주스티커로 골랐다. 그리고 계산하면서 봉투에 따로 담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봉투 하나에 인형과 스티커가 들고 또다른 봉투 하나에 인형과 스티커가 들어있다. 타미는 제 것을 들고 나는 다른 하나의 봉투를 들고가서는 화니에게 주었다. 그걸 받아들고 봉투를 보더니, 이 작은 둘째는 인형을 꺼내서는 이모가 사줬다며, 들고 이모이모 하면서는 할아버지에게도 또 엄마에게도 보여준다. 다시 봉투에 넣었다가 꺼내서 이모, 선물, 하면서 특유의 아가 발음으로 말을 하고, 키가 작아 바닥에 끌리는 봉투를 굳이 계속 들고 다닌다. 아, 그걸 보니, 너무 좋아 ㅠㅠ 뭐든 다 사주고 싶어진다. 이렇게 뭘 사주니 좋아하는데, 어떻게 안사줘 ㅠㅠㅠ 그렇지만 여동생에게 셋째를 낳는 건 좀 많이 생각해보라고 했다. 얘가 요즘 셋째에 대해 자꾸 생각해...


 키티인형 세 개, 스티커 세 개...면 ......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뻐할만한 것을 사주기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




- 얼마전에 B 로부터 갖고 싶었던 좋은 지갑을 선물 받고는, 이걸 넣을 가방을 사야겠다고 계속 생각했었다. 이 좋은 지갑을 에코백에 넣고 다니다니, 안될말! 하면서. 그러나 막상 가방을 사려고 하면 다 너무 비싸서 차마 지를 수가 없어. 내가 가방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에코백이 얼마나 가벼운 지도 아는데...그래서 여름에 샀던 노랑색 비서가방을 다시 며칠 들고 다녔는데 어깨가 결리더라. 아, 이건 씨발가방이었지. 해서, 백화점 가판에서 파는 가방을 계속 둘러보고 있었다. 인터넷으로도 알아보고. 딱 이거다, 싶은 게 보여야 하는데, 그리고 그게 가격이 저렴해야 하는데!! 가벼울 것, 보들보들한 재질일 것. 이정도의 조건으로 찾아보다가 지난주 금요일,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가방을 발견! 무겁지도 않고(자기네 가죽은 가벼운 게 특징이란다), 디자인도 좋다, 보들보들해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촉감도 좋아, 아 마음에 든다! 했는데 색상이 검정 밖에 없다더라.


하아- 나로 말하자면 검정색으로 된 건 일단 무조건 안산다. 검정색 구두, 외투, 가방... 원피스야 검정색으로 된 걸 두 벌인가 가지고있긴 하지만, 검정색은 정말 싫다. 검정색이 싫은 게 아니라 검정색 구두, 외투, 가방..등등 어두운 느낌이 싫어. 내가 내 돈주고 검정색 구두나 가방 외투를 산 일이 없다. 검정색은 속옷과 스타킹만 마음에 든다고!! 그런데 이 마음에 드는 가방이 검정색밖에 없다니! 아아 딜레마에 빠졌다. 그래서 그 매대를 잠시 떠나 돌아다녔다. 이것을 살것인가 말것인가... 이 가방은 가격도 저려미에다가 가볍고 보들보들한 내가 찾는 조건을 다 만족시킨다, 여기에 밝은 색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하나로 포기하기엔 기회가 아깝다. 나는 다시 매대 앞에 가서 가방을 들고 갈등한다. 검정색이라 망설여진다는 내 말에 직원은 '그래도 가장 기본적인 색깔이라 계속 가지고 다니기에 좋아요' 라고 한다. 흐음. 그래서 샀다. 그리고 잘샀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말 너무 검정색이다.....


오늘 K 랑 점심 먹으며 이 얘길 하다가, 검정색 투성이라 그게 하나 마음에 걸린다, 나는 이렇게 우중충한 게 딱 질색이다, 라고 하면서 '그래서 내가 컬러풀하게 수를 놓아볼까 하는데?' 라고 했다. 그러자 K 가 말했다.


안 그러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그래? 망할것 같아? 네, 멀쩡한 가방 망하게 할 것 같아요. 음, 그러면 물감으로 색을 컬러풀하게 칠해보는 건? 하지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뭔가 화려하게 만들고 싶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스티커를 붙이는 건 너무 조잡하고...



- 오늘 아침엔 남동생 차를 타고 출근했는데, 그 김에 안쓰는 가방을 다 들고 왔다. 어차피 쓰는 가방은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죄다 안쓰는 것들. 안쓰고 처박아 두면 쓰레기지만, 누가 쓴다면 가방이 되겠지. 오늘 꺼내보는데, 대체 이 가방들을 왜샀을까 싶더라. 그런데 그 가방들을 샀던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그 가방이 제일 예뻤고 제일 갖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사지도 않을 가방들...사고나서는 한동안 열심히 들고 다녔는데, 가방이란 게 사실 그다지 망가질 일이 없다. 버리자니 망가지지도 않았는데 아깝고 해서 오늘 아름다운 가게에 접수했다. 중고샵에 등록 안되는 책과, 중고샵에 등록했었지만 역시 판매되지 않을 이번호 보그까지, 영화 DVD 도 포함해서 크게 한 박스를 만들어 두었다. 




- 주말에 남동생과 술을 마시면서 티븨를 보다가 무슨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보물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내가 '누가 보물을 훔쳐갔을까?' 라고 하자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 아냐? 나라는 보물을 훔쳐갔잖아.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쌍욕튀어나왔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술먹고 뻘소리를 하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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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