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5. 09:25

- 꿈을 꿨다. 꿈에 나는 양복을 입고 퇴근한 삼십대가량의 남자였다. 나의 집은 고층빌딩중에 어느 한 곳이었는데, 퇴근후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기 전, 마찬가지로 양복을 입은 남자사람 친구와 우리 집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바깥에서 승용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 멈추는 소리를 들었고, 왜그랬는지, 어떻게 알게된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차가 나를 잡으러 온 사람이 타고 있는 차라는 것을 알았다. 빌딩 바깥에서 빌딩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고, 내가 사는 곳은 높은 층에 있으니, 그가 나를 잡으러 오기 전 도망가자, 라고 생각하고, 나는 부리나케 집에서 나왔다. 집 문을 잠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사는 게 먼저였다. 잡히지 않는 게 먼저였다. 집에서 나오면서 내가 구두를 신고 있다는 걸 알았고, 이걸 신고 계단을 뛰다보면 소리 때문에 들킬텐데, 하는 생각에 어째야 할지 망설였지만 다시 뒤돌아 집에 돌아갈 순 없었다. 옥상, 옥상으로 가자, 라고 생각하고 비상구 계단을 통해 오르려는데, 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린다. 아, 나를 잡으러 온 놈이 위에서도 내려오고 아래에서도 올라온다, 라고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를 통해 바깥으로 나가지? 하고 답을 찾을 수 없어 막막해하다가, 나갈 수 없다면 안에서 숨자, 하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층계를 다다다닥 내려가다 어딘가의 문을 열었는데, 맛사지 룸 같은 곳이 나오더라. 어두웠고, 불을 켜니 연두색보다 진한 초록빛, 그러나 어두운 초록빛 침대가 여러개 있었고, 침대마다 사람들이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 같아 보였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그들이 자고 있는 침대 밑에 숨고 싶었는데, 어쩐 일인지 침대 밑에도 사람이 있더라. 어쨌든 나는 그곳에서 임시 잠을 청하던 가족들을 깨웠고,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뒤, 나를 좀 숨겨달라 말했다. 쫓기고 있어요, 라고. 나는 그들이 나를 나쁜놈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러마고 했고, 나는 그렇게 큰 딸의 침대로 들어가 옆에 누웠다. 마치 이 집의 사위인 것처럼. 그리고 불을 다시 껐고, 그렇게 쥐죽은 듯 있었는데, 나를 잡으러 온 놈이 불을 켰다. 가족들 중 아버지가 방금 잠에서 깼다는 듯, 무슨 일이냐 물었고, 나를 잡으러 온 놈은 도망자를 보지 못했느냐 물었다. 식구들은 모두들 하나씩 잠에서 깨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비볐고, 나는 잠에서 깨지 않는 것처럼 색색대며 자는 척을 했다. 내 옆의 여자도 그랬다. 나를 잡으러 온 놈은 그냥 돌아가려다 침대 밑을 보았고, 침대 밑에서 자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해서는, 이놈인것 같다! 하고는 그 놈을 끌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의식이 없었고 축 쳐져 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나는 그가 이미 죽어있는지 어떤지를 알 수 없었는데, 제발 그래, 그대로 그를 끌고 가라, 나를 돌아보지 마라, 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그러나 실례 많았다며 나가려던 나를 잡으러 온 놈이 나를 보았다.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고, 그는 내게로 뚜벅뚜벅 다가왔다. 이 사람은 누굽니까, 라고 식구들에게 그가 물었고, 식구들이 놀라 대답을 못하는 사이, 그는 '이 사람을 깨워야겠군요' 하고는 내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누워서 어쩌지, 어쩌지, 지금은 도망칠 수도 없어, 라고 하는데, 식구들의 아버지가 '자는 사람 깨우지 말고 가쇼' 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인데, 라고 뭐라 막 말해서 깨우는 걸 늦추고 있었고, 나는 속으로 깨우지마, 깨우지마, 라고 초조하게 바라다가, 알람이 울려서 깼다.


휴.. 깨고나서도 겁나게 우울했어. 


그래서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 꿈은 무엇인가,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나를 잡으러 온 놈은 월요일이었어..월요일의 회사출근. 직장생활 이었던 거야..... 그것 말고는 다른 게 없어. 내가 아무리 피하고 숨어도 기필코 나를 찾아내는 이놈의 직장생활, 월요일... 휴.. 너무나 무섭고 우울했다. 




- 금요일에 맥북을 주문했다. 화요일쯤 받겠구나, 생각하고 있던 어제. 아,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싶더라. 할부 나갈 생각에 답답해지는 거다.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걸 질렀나... 하아- 취소할까. 아직도 갚아나가고 있는 할부가 있고 앞으로도 갚아나갈 할부가 있는데, 거기에 맥북을 더하는 건 쓸데없는 욕심 아닌가, 취소할까. 취소하자. 그래, 취소하는 거야. 백만원 넘는 돈인데 그걸 언제, 어떻게 갚아. 내 벌이에는 한계가 있는데. 취소가 현명한 거야. 내가 사실 그거 딱히 쓸 필요도 없잖아. 그래도 취소가 너무 충동적일지도 몰라, 조금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하다가 놋북을 켰다. 다 읽은 책을 중고샵에 등록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부팅이 오만 년 걸리더라.... 아... 스트레스가 작렬했어......... 제부가 ssd 를 갈아준다고 해서 내가 사기로 했는데, 일단 그렇게 하기 전에 내가 뭐라도 속도 빨라지게 해봐야겠다 싶어 제어판에서 프로그램 삭제를 하기로 했다. 내가 내 놋북으로 하는 것도 별로 없는데 뭐 알지도 못하는 게 엄청나게 깔려있어. 그런데 하나 지우는데도 오만년이 걸리더라. 아 속터져...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아, 맥북 사길 잘했어. 취소 하지말자. 취소하는 거 아니야. 이건 잘한 짓이야!!




- 오늘 아침에 B 와 통화하는데, 좋아한다고 말하는 나에게 B 가 그랬다. 너는 나를 좋아하지만, 나를 좋아하는 네 자신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고. 그 말에 '아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면서, 내가 그런가? 생각해봤다. 아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겠더라. 그래서 나는 B 에게 물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보다 당신을 좋아하는 내 자신을 더 좋아해서 서운하냐고. B 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끊고나서 생각했다. 이게 나쁜건가? 그는 서운하지 않다고 했지만, 혹시 이게 서운할 수 있는 일일까? 하고. 무엇보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그를 좋아하는 내 자신을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걸. 그의 말처럼 나는 그를 좋아하는 것보다, 그를 좋아하는 나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건 나고, 내가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나인 것인가. 결국 결론은 그렇게 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점이, 내가 사랑하는 상대에게 혹여라도 서운한 마음이 들게 할까? 라고 생각했는데 음,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B 가 아니라고 했고, 그렇다면 그는 그것이 서운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그간의 연애나 관계를 돌이켜봤을 때,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강도가 이만큼 센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서 나 자신을 이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나를 스스로 좋아하게 되는 게, 상대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 같다는 생각이 든거다.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형편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나를 사랑할 리가 없었다. '어휴, 나는 왜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된걸까'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을 좋아할 수 있을까. 내가 내 자신을 좋아하게 된건,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게된 건, 그만큼 내가 지금의 이 관계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거다. 내가 나를 더 좋아해서 서운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고, 그래서 그에게 물었을 때 그가 '아니'라고 답한 건, 그도 이런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던 걸까? 만족 없이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도 커지지 않음을 그가 알고 있었던 걸까? 음.. 알았을 것 같진 않고, 그는 그냥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인 걸 인정해서 '아니'라고 했던 것 같다. 




- 내가 스스로 신경쓰지 않으면 언제든 거친 말이나 거친 행동이 나올 수 있다. 세상을 망치는 게 인간이지만 세상을 구원하는 것도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늘 신경을 써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신경쓰지 않은 채로 날 내버려두면, 나는 그저 쌀쌀맞고 거친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고 또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언제나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 기분이 나빠 있을 때, 내가 스트레스 받고 있을 때, 내가 지쳐있을 때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사람이 되고자 하는 에너지를 끌어낼 수가 없으니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신경을 쓰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에너지를 그런 곳에 쏟으려고 그 사람이 노력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간혹 다른 사람에게 잘하는 데 쓸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나 역시 나쁜 사람이 된다. 못되게 말하고 못되게 행동하고 잔인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실감한다. 아, 내가 예쁘게 말하고 좋은 행동을 하기 위해서 그간 에너지를 쏟고 있었구나, 하는. 상식선의 예절을 지키고, 매너 있는 행동을 하는 것 모두가 에너지를 쏟아야 가능한 일이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고, 또 거기에 쏟을 에너지가 없어져버릴 것 같아서, 나쁜 기운때문에 에너지가 다 빨려들어가는 것 같아서 계속 걱정하고 또 신경 바짝 쓰고 있는데, 토요일에 친구들 만나서 얘기를 하고나니 또 괜찮아진다. 선약이 있어 참석 못한다는 친구가 저녁 무렵에 약속 파하고 와서 신이 났다. 그때 기분이 최고조가 된 것 같은데, 그 친구는 또 글쎄, 그냥 오지 않고 찬모듬쏘세지를 사온 거다! 와- 진짜 내 친구지만 센스 쩐다. 이런 일들이 나로 하여금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도록, 내가 계속 나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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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