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5. 10:39

하루에도 몇 번씩 화를 내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온종일 인상 쓰고 있는 사람 옆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단 생각이 최근에 부쩍든다. 나는 강한 사람이고 고집이 세고, 그래서 여태 버텨올 순 있었지만 점차 힘이 든다. 부정적 기운을 내뿜는 사람을 너무 오래 보다보니, 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나만의 고유한 긍정적 성질이 무너질 것만 같다. 나는 나의 긍정적 성질,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는 성향들이 그 누가 가진 장점보다 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이걸 지키고 싶기 때문에, 부정적 성향의 사람 옆에서 기를 쓰고 내 걸 지키고자 하는데, 그러다보니 더 힘이 드는 것 같다. 나를 잃지말자, 라고 생각하고 나를 지켜가자, 라고 자꾸 되뇌이는데도 또 소리지르고 화내고 인상쓰고 그러는 걸 보면 여지없이 다 필요없고, 라는 생각이 들며 무너질 것 같은 거다. 아침엔 친구에게 이런 얘길 털어놓는데 눈물이 핑돌았다. 아, 나 너무 힘들다,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 될까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데, 내가 왜 버텨야되나 싶고, 어제는 엄마가 안아주면서 너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병날 것 같다, 라며 관두라고 했다. 관두고 일단 쉬어, 쉬면서 다른 거 찾아봐, 뭐 할 거 없겠냐, 하셨다. 다른 일 할거면 그냥 이 일 하는게 낫지 않나 싶어서 여전히 출근하는데, 모르겠다.

까지는 지난 금요일에 써둔 거다.


그런 참에 업무도 많아 숨이 막히는데, 그래 될대로 되라지, 하면서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결혼을 앞둔 친구와 친구의 남편될 사람, 그리고 친구 i 와 a. a는 2년만에 보는 거라 엄청 반가운 거다. 와- 오랜만에 보니 이렇게 좋네, 하면서 막 신나졌다.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새로운 사람인 친구의 예비남편은 또 어찌나 성실하게 술친구가 되어주는지, 오전 내내 받았던 스트레스가 점차로 풀리더라. 아 이거야, 이게 필요했어, 오길 잘했어! 일이 많아서 못간다고 할까 고민하다가, 아, 가고싶어, 하고 부러 온 보람이 있었다. 나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해 ㅠㅠ



소리지르는 남자가 진짜 너무 싫다고 생각하다가 자연스레 지금 나의 연인과 그전 연인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심지어 내가 혼자 연정을 품었던 대상이라든가 남자사람친구들도 모두, 소리지르는 남자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소리지르지 않는 남자에 대해서만 호감을 가지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B 도 설사 나에게 서운한 감정이 생기거나 나랑 싸우게된다(?)고 해도,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소리지르는 남자라면 내가 만났을 것 같지 않다. 그동안에는 몰랐는데 나는 소리지르지 않는 남자들만 만나오고 있었어.. 물론, 그들에게 내가 친구이거나 연인이어서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늘상 인상쓰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보쓰이지만, 다른 사람들, 외부의 다른 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일지 알게 뭐람. 음식점에 가면 일단 반말부터 하고 거기서도 역시 소리지르는 걸 보아온 터라, 다른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긴 하지만.. 다른 포지션의 사람에게는 소리 지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내 주변에 두었던 사람들은 본래 자신의 성향이 소리지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친구의 예비남편은 우리에게 잘하고 싶다는 게 눈에 보였다. 친구에게 잘하고 또 그래서 자신을 잘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다 보이더라. 그래서 좋구나, 잘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소주를 마시는 나에게 맞춰 주려고 소주도 계속 잘 마셨다. 그러다 갑자기 B 생각이 났다. 아, B 는 이럴 것 같지가 않다, 하는 생각이 든 것. B 는 내 친구들 앞에서 친구들에게 잘하기 위해 애쓰는, 그러니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애쓰는, 서글서글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아닐 것 같아.. 하하하하하. 그는 까칠할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어쩌다 이렇게 까칠한 남자에게 푹 빠져버린거지? 뭐, 내 추측이다. 별로 틀릴 것 같진 않은 추측. ㅎㅎㅎ그래서 다음날 친구의 예비남편이 이렇게 잘하니까 좋더라, 하면서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안할 것 같아, 그냥 까칠할 것 같아, 라고 하자 B 도 그럴 것 같다 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엊그제는 꿈을 꿨다. 꿈에 B 를 만났는데, B가 샤워를 한다고 욕실에 들어간 거다. 그리고 씻고 나오면서 나한테 씻으라고 하는데 내가 싫다고 했다. 아 씻기 싫어 씻기 싫어, 막 이런 것. 그러자 B 가 너 진짜 왜이렇게 씻기 싫어하냐면서 얼른 들어오라고 씻겨주겠다고 해서, 냉큼 옷을 벗고 들어가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 가 샤워타올에 바디클렌져를 듬뿍 짜가지고 거품을 잔뜩 내서는 내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씻겨주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팔 들어보라고 해서 팔을 들고 겨드랑이를 거품난 타월로 닦아주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겨털이 무성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하튼 샤워실에서 둘이 발가벗고 B 가 다정하게 삭삭 닦아줘서 뭔가 므흣하고 흐뭇했는데, 계속 꿨으면 또 19금 꿨을텐데 샤워하다가 깼다.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깨고나서도 침대에 누워가지고 키득키득 거렸다. 야 이 꿈 좋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막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은 가끔 야한 꿈을 꾸면서 살아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삶에 윤기가 흘러.....



기운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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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