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6. 14:07




'혼자' 잠을 자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싱글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집에 나만 혼자 있고, 그런 상태로 자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 독립해 살아본 적도 없거니와 늘 식구들이 다함께 있다보니, 최소한 내가 아닌 다른 누구 한 명이라도 집에 꼭 있었다. 대체적으로는 식구들이 다 같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 내가 거주하는 집에서 내가 혼자 잠을 자 본 적은 다섯 번도 안될텐데, 어제가 바로 그 날이었다. 아버지도 안들어오시고 남동생도 안들어오는, 그런 날.


맥북을 산 기념으로 축배를 들자, 라고 술상을 봐두고 와인을 마셨지만, 적당히 먹고 남겨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혼자 잘건데, 혹여라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어떤 상황에서든 대처하기 위해서는 술에 취해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였다. 술을 더 마시고 싶었는데 애써 참았다. 오늘은 내가 이 큰 집에 혼자 있고, 혼자 잠들 것이니, 어떤 상황에서도 혼자 대처해야 한다, 술 취하면 안된다. 


술상을 치우고 가스렌지 밸브를 잠갔나 점검하고 문이란 문은 죄다 잠갔다. 현관문도 잠겼나 다시 확인하고, 방의 창문이나 베란다 문까지 죄다 잠겼는지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점검하느라 피곤할 때까지, 강박에 시달리며 점검, 또 점검했다. 하아- 나는 이래서 혼자 자는 게 정말 싫어. 내가 이걸 자꾸 점검하고 또 하기 때문에. 그리고 침대에 돌아가서 누웠는데 너무 무서운 거다. 자자, 잠들자, 잠들고나면 내일 아침이다, 라고 생각하다가 무서워서, 그냥 자지 말고 밤샐까.. 하는 생각도 몇 번이나 했다. 그러다가 B 와 통화를 했고, 그렇게 깔깔 웃고 신나게 떠들고나니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잘자라고 인사를 하고 다시 자려는데, 아, 난 괜찮지 않아, 무서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놀랐고 무서운 생각들만 머릿속에 오만번 왔다갔다 하더라. 늘상 침대 옆에 있는 테이블에 핸드폰을 두었었는데, 어젯밤에는 바로 내 머리 옆에 두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전화기를 들고 전화를 해야해, 터치로 풀어지니까 이불 속에 넣은 채로 전화를 걸 수도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잠이 올 리가 있나. 시간을 보니 새벽 한 시가 넘어있었고 나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냥 밤을 샐까..를 계속 고민하다가, 안되겠다, 자자, 자자, 무서운 생각 못하게 좋은 생각을 애써 해보자, 무슨 생각을 할까, 하다가,



지난 여름에 내가 보았던 B 의 벗은 등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자려다가 그가 내게 무얼 물었고 내가 대답을 했는데 이 남자가 돌아눕는 거다. 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 그래서 어? 하고는 그에게 지금 설마 삐져서 등 돌린 거냐고 물었더니 그가 그렇다고 하더라. 언제 알아채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넌 진짜 애가 둔하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웃겨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그 등을 나는 그가 돌아가고난 뒤에도 여러번 떠올렸더랬다. 등돌린 모습은 대체적으로 차갑게 기억되기 마련일텐데, 내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의 등이 아주 크고 넓었다는 것, 그게 무척 좋았던 게 자꾸 생각나는 거다. 위에 사진속 재이슨 스태덤처럼 멋진 등은 아니었지만(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등을 보는 게 참 좋았다. 그래서 어제도 무서운데 무서움을 잊게 해줄 것을 생각하자,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 등이 떠올랐던 거다. 내 옆에 누워있던 그 크고 넓은 등이. 아, 그 등만 옆에 있었어도 내가 무섭지 않았을텐데, 하면서 그 등을 떠올리노라니, 아, 그래 이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안심이 되는 느낌. 그래봤자 조금이따가 또 무서워졌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결국 아침까지 제대로 잠도 못잤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그 등이 자꾸자꾸 생각난다. 무서울 때면 그 넓고 큰, 진짜 엄청 큰 등이 생각날 것 같다. 



오늘은 아빠도 남동생도 다 함께 잘 수 있다. 나는 잠을 제대로 못자 졸리다. 그리고 점심을 진짜 배터지게 먹었어. 그러니 지금 계획은 저녁을 굶고(!! 응?) 아주 푹, 잘 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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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