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3. 18:13

엊그제였나, 남동생과 둘이 텔레비젼을 보면서 간단하게 술을 마시는데, 시청중인 프로그램에서 술이 아주 많이 취한 남자가 나왔다. 그는 회사 직원들과 회식중이었는데 엄청 술이 취해서 상사랑 싸웠고, 비틀거리며 차길을 건넜고, 다음날도 회사를 가는데 지장이 있었다. 차길을 비틀거리며 걷는 장면에서, 차가 오는데도 차한테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 나는 너무 무섭고 짜증이 났다. 저건 안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술이 좋고 술에 취한 기분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에 취해 이야기 나누고 함께 열받거나 함께 기뻐하는 것들, 모든 것이 다 좋다. 그렇지만 저렇게 흔들흔들 걸으면서 차길에서 자신의 위험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싫다. 저건 너무나 위태롭고, 그래서 저렇게까지 마시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남동생에게


너도 조심해서 마셔, 저렇게까지 마시지마.


라고 했다. 남동생은, 저래도 다 집에는 가, 라고 했는데, 나는 집을 찾아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저렇게 비틀거리면서 차에 치이기라도 하면 어쩌냐, 저기서 저 길을 걷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아예 모르고 있는데, 저건 너무 위태롭다, 저러지 말고 조심해라, 저렇게까지는 마시지 말아라, 건강하고 즐겁게 마시자, 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것은 통제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술을 빨리 마시지 않을 경우, 내가 취한 걸 아는 편이다. 어, 이제 취했으니 그만 마셔야지, 라고 생각하고 더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 편이다. 빨리 마시게 되면 내가 취했다는 자각을 하기 전에 더 마셔버려서 엄청 취해버리는데, 취한중에도 엄청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해서, 이걸 어떻게 깨지, 하고 취한 중에도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술이 깨는 게 아니라서, 그럴 때의 나 역시 비틀거리며 걷고, 연락이 잘 안되고(심한 날엔 문자 찍을 힘도 없어진다), 다음날 필름이 끊기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나는 이게 너무 싫고 무서워서, 가급적 그러지 않으려고 정신 바싹 차리고 술을 마시려고 한다. 나는 나를 위험한 상황에 놓기가 싫고, 그래서 바깥에서 술을 마시면 가급적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 가고 싶고, 부어라 마셔라 하려면 잠자리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될 때, 우리 집이라든가 친구와 함께 있는 호텔이라든가. 이럴 경우에 그렇게까지 통제하려고 하진 않지만, 외부에서 술약속이 있을 때는 천천히 마시면서 자각증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베트남에 혼자 갔을 때는, 혼자라서 술을 많이 마시는 걸 포기했더랬다. 좋은 호텔에 묵고 있었으니 호텔 룸안에서 질펀하게 마셔도 좋았을텐데, 내가 집에서 혼자라면 그랬겠지만, 호텔방, 그것도 외국에서라면 얘기가 달랐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닥칠지 모르고, 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취하면 안됐다. 외국 호텔방에 나 혼자 있는데, 문게 해결을 할 사람도 나밖에 없잖은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취한단 말인가.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누가 그렇게 미친듯이 취한 걸 보는 게 몹시 불안하고 싫다. 집에 가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술에 떡이 되는 건 싫다. 나와 함께 같이 잠을 자는 경우라면 상관이 없는데, 우리가 함께 움직이고 함께 있을거니까 괜찮은데, 각자의 집으로 가야 할 상황인데 그렇게 떡이 된다면, 나는 그걸 보는 게 너무 불편하다. 위태롭고 불안하다. 술에 취해서 손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눈은 풀려버리고, 발음도 새는 걸 보는 건 좀 별로다.  그 뒤의 과정을 내가 책임져야 할텐데, 그걸 하기 싫다. 그걸 하지 않으면 내내 신경쓰일테니, 그것도 싫다. 그러니까 나는 술을 마시더라도, 앞으로 계속 즐겁게 술을 마시기 위해서, 어느 정도 선에서 좀 그만뒀으면 좋겠다. 



예전에 사귀던 남자중 한 명은 술을 아주 좋아했다. 엄청 좋아하고 엄청 잘마셔서, 아무리 마셔도 잘 취하질 않았더랬다. 그가 나랑 맛있는 걸 먹으러가고 술을 마시러 가는 건 너무 좋았지만, 그가 너무 마시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끔 했더랬다. 술을 마시지 못해서 나랑 건배를 하지 못하는 것도 재미없지만, 이 사람은 너무 마시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도 별로였다. 역시 난 안돼... 어쨌든,


그런데 며칠전에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 남자가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었다. 술을 많이 마시면서, 언제 취하는지, 어느 정도가 주량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술을 아주 잘 마시는 사람이라서, 내가 취한 걸 자각하고 나는 이제 그만 마실게, 라고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술이 모자라 나중에 어떻게든 더 마시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내 앞에서 별로 취한 적도 없었고, 취한 걸 보였을 때도 나에게 어떤 피해를 입힌 적도 없다. 다만, 어 취했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몇 번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좀 심하게 취했고, 내가 '너 취했다' 고 말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술 취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너 취했어' 라고 말했을 때,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걸 안다. 눈이 풀리고 그래서 표정이 엉망이었고, 손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걸 보면서 나는 그에게 그만 마시라고 말했다. 그게 싫었다. 그렇게 취한 게. 그래서 그에게도 남동생에게 말한 것처럼 똑같이 말했다. 술 많이 취하는 거 보면 불안하다, 위태롭게 느껴진다, 이제 그만 마셔라, 우리 기분 좋자고 술마시는데 이렇게 위험하게 마시면 어떡하냐, 통제하면서 마셔라, 고. 그때 그는 '네가 통제해줄거잖아' 라고 했다. 사실 그 순간에도 나는 술병을 치우고 이제 그만 마시라고 하고 있었으니, 내가 통제를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 그는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듣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말을, 무서워 하는 말을 했다.



그에게 모질게 말해놓고 신경이 쓰인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마음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고. 그렇지만 너 괜찮은거냐, 잘 지내고 있냐, 안부라도 물을라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까봐, 내키질 않는다.  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진 않는지, 너무 취하는 건 아닌지, 그런 거 신경쓰기 싫으니, 역시 멀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 아, 이제 그만 마셔야겠구나, 라는 자각을 좀 하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이건 내가 사는 방식이니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가 없겠지. 그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에도 나는, 너의 생활 습관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나는 썼더랬다. 그러고보면 나는 진짜 졸 이기적인 것 같다. 피곤할 것 같은 문제에는 아예 껴들려고 하지를 않는... 아무것도 감당하고 싶어하지 않는.....



아주 잠깐, 만약, 연애하던 시절의 B 가 그랬다면 나는 어떡했을까? 라고 생각해봤다. 아, 피곤하게 한다 그만 만나자, 라고 했을까, 아니면 그렇게까지 마시지 말자고 계속 옆에서 통제하며 관계를 유지하려 했을까? 생각해보다가, 아,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멍하게 있고 싶다, 요즘 머리 너무 많이 썼다, 싶어서 생각하기를 멈췄다.


나는 즐겁고 건강하게, 폐 끼치지 않으면서 술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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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