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4. 10:33



- 어젯밤에 집에 돌아가서 여동생과 와썹으로 대화를 나눴다. 나도 막 같이 그 어린 타미가 짠해서는... 여섯살 밖에 안된 꼬마아이가 제 나름대로 보고 들은 걸 판단해서 속상해하고 답답해하고 하는 게 너무 안타까운거다. 아마 이 일을 경험하고나서 여동생은 방문을 잠그고 샤워하는 일을 이제는 하지 않게 되겠지. 

제 동생이 자기 물건을 가지고 노는 걸 싫어하고, 제 동생이 할머니나 다른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걸 보면 질투하지만, 그 어린 것이 어떨 때 엄마가 속상한지 알고 있다는 것도 기특하다. 엄마가 속상할까봐 마음 쓰는 것도. 내가 아이의 엄마는 아니지만, 이모일 뿐이지만, 이모라서 보는 시간도 얼마 안되고 함께 있는 시간도 얼마 안되지만,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아이가 커감에 따라서 어른 역시 함께 자란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닫힌 문에 대고 엄마엄마를 외쳤을 타미를 생각하니 너무 안쓰럽다. 결국 엄마가 안아주자 대성통곡하는 그 안심한 마음이라니. 이쁘다. 난 역시 타미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 ㅜㅜ



- B 랑 연애를 시작하면서 이 연애가 그동안 내가 해왔던 연애랑 참 많이 다르구나 하는 걸 숱하게 느꼈다. B 는 내가 퇴근을 했는지, 집에는 도착했는지, 누구랑 어디서 뭘 하는지를 자주 묻곤 했는데, 이게 내게는 다소 충격이었던 거다. 그간의 내 연애에서 나는 이런 걸 물으면 싫어했었다. 내가 뭘하든 내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할거야, 라는 심리? 조금이라도 구속이라고 느껴질라 치면 '난 이런 거 싫어해, 이런 거 싫어하는 내가 싫으면 나 만나지 말던가' 하는, 연애의 갑질 포스를 아주 제대로 풍긴거다. 그러니 어디서 뭘 하는지 묻는 B 에게 꼬박꼬박 대꾸를 하면서 난 뭐지? 하는 생각을 한거다. 왜 이런거 싫다고 B 에게는 말을 못하지?

그런데 B 는 내게 물으면서 뭘 하지 말라고 한 게 아니라, 그저 어디에서 뭘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한 거다. 그래서 자신이 어디에서 뭘하고 있는지도 내게 자주 말해줬다. 덕분에 나는 그가 운전중인지, 낚시중인지, 엄마랑 함께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치는데 집에 있는지, 날씨가 좋은데 외출중인지, 이런걸 혼자 궁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묻기 전에 알아서 다 말해주니 사소한 걱정 같은 것들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 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자주 들려주는 그의 소식이 아주 고마웠다. 


며칠전에 치니님의 블로그에서, 아들이 있는 곳에서 아들의 사진을 종종 보내주어 고맙다라는 일기를 읽었는데, 그 일기를 읽자마자 B 생각이 났다. 자신이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이 잘 지내는 것이고, 잘 지내고 있음을 걱정하기 전에 미리 들려주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제 B 와 내가 서로에게 어디서 뭘 하고 누구랑 있는지를 얘기하고, 오늘 하루 어땠는지를 얘기하는 것들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러고보면 여동생과 제부도 자신들의 소식을 묻기도 전에 늘상 잘 알려주었다. 제부는 툭하면 우리 부모님께 영상으로 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애들 보고싶어, 라고 우리가 말하기 전에 보여줬다. 여동생은 이렇게 우리 남매 단톡방으로 아이와 함께 지내는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상세하게 들려준다. 묻지 않아도 들려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가족에 대해서는 늘상 그 점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고마워했으면서, 내가 그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애정이 가족만큼 크게 자라나지 않은 탓도 있겠고, 내가 가족 외의 사람들에겐 배타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나는 가족 말고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늘 자신있게 말해왔던 사람이니까. 가족 외의 사람에게는 언제나 일시적이고 한정적이며 크기가 작은 사랑만이 존재한다고 자신해왔었으니까. 이렇게나 나는 배타적이었는데.



- 연애를 해오면서, 이성과 대화하고 술마시는 걸 즐기면서, 내 안에는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늘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지, 라는. 정 줄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늘상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연애 감정, 사랑 혹은 사랑이라고 착각한 감정, 그건 모두 훅 왔다가 훅 가버리곤 하는 거지, 하고. 그런데 어제는 B 에게 이런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당신은 내가 남자에 대해 가진 모든 부정적 생각을 바꿔주는 것 같아요.>


조금씩 내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러다 내가 득도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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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