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8. 11:44


요즘엔 지갑을 물끄러미 볼 때가 많다. 낡은 게 눈에 확 띄기 때문에. 모서리마다 낡은 게 확연히 드러난다. 앞면 뒷면은 많이 때가 탔고. 여튼 전체적으로 낡았다. 이걸 언제부터 썼더라, 생각해보니 잘 생각나지 않는다. 몇해전 생일선물에 남동생으로부터 선물 받은 지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새로 장지갑을 산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백화점에 갔다가 우연히 본 장지갑이 너무 예뻐서 큰 맘 먹고 지갑을 샀는데, 며칠 들고다니지도 않아 무겁고 커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거다. 마침 생일이 다가왔고, 선물 뭐해줄까 묻는 남동생에게 같이 가서 지갑 사줘, 라고 한 거다. 그래서 백화점에 같이 가 내가 고른 지갑. 가벼울 것, 작을 것이 내가 고르고자 한 기준이었는데, 이 지갑은 그 기준에 딱 맞았더랬다. 그래서 그 때부터 한 번도 다른 걸로 안바꾸고 이 지갑만 계속 썼다. 그 해에 내가 사둔 장지갑은 새 것인 상태로 책장 서랍에 들어가 있었고.


이 지갑을 보는데, 아, 나 참 물건 하나 오래 진득하게 쓰는구나 싶다. 아마도 내가 쓰고자 했던 조건에 맞춤한 물건이라 그랬겠지만, 참 낡을 때까지 질리지도 않고 잘 써.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그러고보면 나는 그간 핸드폰도 고장나야 바꿨고, 직장도 오래 한 곳에 다니고 있고, 음식점도 갔던 데를 주로 가는 편이었다. 가방도 한 번 들고 다니면 그것만 계속 들고나니고, 신발도 그렇게 신곤 하는데, 모든 것에서 질릴때까지, 고장날때까지, 망가질때까지 함께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간 왜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그렇게 짧게 짧게 툭툭 끊어냈던걸까? 하고 갸웃하게 됐다. 왜 연애는 길게 못하지? 내가 못해서 그런지 길게 연애하는 사람 보면 엄청 신기하다. 그래서 제이슨 스태덤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로지도 그렇고. 멋져. 아..근데 내가 또 왜 이야기가 이리로 흘러가나..


여튼, 그래서 지갑이 너무 낡아 새것으로 바꿔야겠다 싶은데, 책장 서랍에 이미 새것인 장지갑이 있으니 그건 문제가 안된다. 다만, 이 낡은 지갑을 어째야하나 싶다. 낡아서 안 쓸거고 새것으로 바꿀 것이니 버려야하나 싶다가, 아, 이렇게 내가 써서 나한테 길들여져서 낡아버린 지갑을, 도무지 어떻게 버리나 싶은 거다. 널 .. 내가 어떻게 버리니? 이렇게 정들었는데? 아아아- 그렇다고 쓰지도 못할 물건, 뒀다 뭐한담? 이걸 결정을 못해서 집에 새지갑이 있는데도 바꾸지를 못하고있다. 


내가 널 어떻게 해야해?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지마요.  (4) 2015.07.10
매니큐어와 사례금  (2) 2015.07.09
도시락  (0) 2015.07.03
건강한 연애  (2) 2015.06.29
사회적 동물  (2) 2015.06.26
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