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랜드]에서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당연하게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된다. 서로의 꿈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 그래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는지를 보면서 '너가 원하는 거 그거 아니잖아' 하고 알려주기도 한다. 그걸 상대에게 들키는 게 싫었던 입장에서 '나한테 뭘 어쩌라고' 하며 서로 싸우게 되기도 하는데, 익숙해진다는 것은 가장 편한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불편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B를 좋아했고, 너무 좋아해서 그랑 연애하는 건 어떻게든 안하고 싶었었다. 연애를 하면 헤어지게 될테니까. 그러나 연애를 하게 됐고, 연애를 하면서도, 나는 이사람을 어떻게든 잃고 싶지 않으니까, 혹여 헤어짐이 오게 된다면 그건 그가 말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 생각대로 헤어짐은 그가 말해서 찾아왔고, 그렇게 나는 이별의 시간을 힘들게 겪어냈다. 울고 술을 마시고 그 시간들을 견뎌내면서,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이제 그만하고 돌아오자, 하고는 회복도 되었다. 여전히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서 다른 남자랑 데이트를 하기도 했고, 어느 날엔 그가 돌아온다면 좋겠다라고 바라기도 했으며 또 어느 날에는 그가 돌아온다 해도 나는 그를 받아들일 순 없겠다, 라고도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그와 다시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다시 연락하고 처음엔 너무 좋았는데, 순간순간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가 나랑 다르다는 게, 연애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확연히 드러나는 걸로 느껴졌달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비참함이 느껴지기도 해서, 연락하는 걸 그만두자고 내가 말했다. 기본적으로 그를 잃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에게 '그만 연락하자'고 말하는 것이 몹시도 힘들었다. 많이 고민했고, 많이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으며, 이 결정을 내 스스로 내려놓고서도 너무 아팠다. 그렇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 그를 잃고 싶지 않은데, 라는 마음이 여전히 있으면서 그만 연락자하고 말하는 것은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했다. 그리고 그날, 그에게 그만 연락하자고 말한 그 날, 집에 돌아와 엉엉 소리내서 울었다. 언젠가는 그와 다시 연락하겠지만 그 날을 알 수 없는 채로 그와 멀어져버렸다는 것이 아파서 엉엉 울었다.
내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그는 말했지만, 일주일 후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일주일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고, 밀린 이야기를 죄다 터뜨렸다. 자주 연락하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랑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좋지만, 가장 좋은 건, 내가 이 관계를 끝낼 수도 있다는 걸 알게됐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었어도, 내가 비참하게 느껴지거나 아프게 느껴지면 나는 그걸 끝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알게됐다. 이 사실이 내게는 몹시 위안이 된다. 그간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면서, 힘들게 하면 그 관계는 끝내는 게 맞아, 라고 하면서 누군가에게는 이별을 말하고 또 상대에게도 나에게 이별을 말하라 얘기햇었지만, 나는 내가 B한테만큼은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니만큼 최상의 행복을 그와 함께할 때 느꼈었지만, 같은 이유로 가장 큰 아픔도 그로부터 받았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를 행복하게 해줬던 사람이지만, 나를 아프게도 했던 사람이다. 그에 대한 많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나를 아프게 했던 기억도 갖고 있다. 우리는 지금은 그저 친구 사이로 지내면서 별 거 아닌 것들에 대해 이야기나누고 좋아하지만, 서로에게 서로와의 대화가 필요하지만,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해 얘기나누는 건 우리만 할 수 있는 거지만, 이제는 거기에 '나를 아프게 하면 그만둘 것이다' 라는 생각도 있다.
토요일에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데, 친구1이 친구2에게 '만날 때마다 더 자리를 잡아간다'고 얘기 했더랬다. 친구 2는 2016년이 좋은 해였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나에겐 아픈 해로 기억되는데...'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런 한 편, 내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된 해이기도 하다. 나는 내 스스로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고, 또한 나를 아픔으로 몰아넣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선택1과 선택2가 있을 때, 그것이 행복과 불행을 가리키고 있다면 선택은 쉽다. 당연히 행복을 선택할 테니까. 그러나 그 두 개가 고통과 고통이라면, 그 중에 '덜한' 고통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덜한 고통을 택할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걸 알게된 건 확실히 아팠던 이 해의 수확이다. 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말은 내게는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가 내게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별 말없이 내가 받아들였던 것, 그리고 그가 다시 연락을 해왔을 때에도 역시 별 말 없이 받아들였던 것은, 내가 그를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굉장히 똑똑하며 자신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릴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나랑 헤어지자고 결정 했을 때는, 그것이 그때의 그에게 최선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헤어져 있는 동안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잘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을 거라고. 마찬가지로 그가 지금 나와 다시 연락하기로 했던 것도 그가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다시 연락하고 있는 지금의 나의 포지션은 가만히 그를 들어주는 것인데, 라라랜드의 주인공들이었다면, 중간에 끼어들어 뭐라 말했겠지만, 나는 그들이 아니고 우리 관계 역시 그 관계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그를 들어준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들은 물론 주고받고로 이어져있지만, 크게 놓고 보면 나는 그를 지켜보고 있다. 들으면서 지켜보는 것이 지금의 내가 스스로 맡은 역할인데, 거기에는 그가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을, 자신을 위한 것을 잘 선택할 것이라고, 원하는 방향으로 갈 거라고 확신하는 그에 대한 신뢰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과정과 선택을 내내 지켜보고 싶다는 게 내 바람인데, 그 과정에서 혹여라도 내가 다칠 것 같으면 그만두자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나는 언제나 그게 되는 사람이었고,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됐다.
2016년이 이제 고작 스무날 쯤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