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9. 15:27

멀리 있는 친구는 내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자신의 생각만큼 강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친구에게 보내는 답장에  나 역시 그렇다고 적었다. 나 역시 내 생각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나는 내가 되게 단단한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오늘 아침에 B랑 통화하다가 '5월에 나는 전체적으로 다운되어 있었다' 라고 말을 했는데, 일전에 일기에도 썼던것처럼 5월은 내게 최악의 달이었다. 그 달에는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화가 났고 싫었고 우울했다. 바이오리듬이란 게 전체적으로 바닥을 달린 한 달이었다. 그는 내게  지금은 좀 괜찮아졌냐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 5월을 보내면서 내가 강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사소한 모든 것과 사소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다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는데, 이를테면 대선에서 ㅎ의 지지율이 20프로 넘는 걸 보고서도 하염없이 우울했던 거다. 어쩌면 이건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그 우울함이 꽤 오래 지속됐고, 그것 말고도 나를 둘러싼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내 모든 의욕을 가져가버렸다. B 랑 관계를 끝내서 우울한 것도 있었지만, 우울했기 때문에, 그런 컨디션이었기 때문에 관계를 끝내는 단계까지 가게 된거였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아, 5월은 정말 내게 힘든 한 달이었는데, 운동도 못해서, 도무지 할 의욕이 들질 않아서, 이대로는 안되겠다, 남의 도움을 빌리자, 하고는 요가를 시작하게 된거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도움 받는 걸,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걸 몹시 힘들어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고, 스스로 '혼자서 다 잘한다'는 걸 되게 증명해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누구에게 도와달라 말하는 게 마치 내 약함의 증명인것처럼 그걸 꺼렸고, 머릿속에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던 거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어쩌면 상대에게 내 생각만큼 폐를 끼치는 게 아닐 수도 있는데 그랬다. 나에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생각되었다면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더 단단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게 된거다. 민폐 끼치는 게 싫어서 혹여라도 그렇게 될까봐 전전긍긍했는데, 그러다가 오히려 우울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거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만큼 강한 사람이었다면, 내가 약하다는 것 역시도 감추려 하지 않았어야 했던 건 아닐까. 나는 내 약함을 들여다볼 순 있었지만 그걸 드러내는 건 심하게 싫어했던 것 같다. 


나는 스스로 자기객관화가 잘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문제가 일어나면 잘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했었는데,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는 서툴렀던 것 같다. 도움이란 것을 미루고 미루고 미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 5월에도 도와달라고 말하는 대신 혼자서 어떻게든 그 기분과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기를 쓰다보니(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이걸 하면 될까, 저걸하면 될까) 내 몸과 마음의 모든 에너지가 다 고갈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서야. 그 힘든 달을 보내고서야.  나는 되게 강한사람 컴플렉스 같은 게 있었던 거 아닐까. 그게 내 모든 에너지를, 그 5월에 다 빼앗아가버렸던 것 같다. 나는 나의 그 힘든 5월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생각한다. 누구나 동굴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때가 있고, 나 역시 가끔 동굴속에 들어가지만, 그 때는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한달을 내내 동굴속에 들어가버린 것 같았다. 이런 일이 그간 내게 있었던 것 같지가 않아서, 그 5월은 내게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침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달을 자주 생각한다. 내가 그랬지, 내가 그랬어, 하고. 그때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너무나 힘들기만 했고 화나기만 했어, 하고. 아마, 앞으로 살면서 내게 그런 달은 또 찾아들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내가 하다하다 도무지 안되겠어서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너무 애를 써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즉시, 누구한테 어떻게 어떤 식으로 도와달라고 해야할까를 생각해야 겠다. 




어제는 술을 정말 많이 마셨고 아침에 일어나니 지난 밤의 과음으로 기운이 없었다. 밥을 먹고 잠시 쉬다가 침대에 드러누워서는 '오늘 산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는데, 그런 고민을 하는 내게 엄마가 가지말라고 하셨다. 비가 와서 땅이 젖은 것도 있고 또 비가 올 것 같기도 해서지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너 일주일동안 그정도면 운동 많이 했다고, 그냥 쉬라고 하시는 거다. 나는 그 달콤한 말을 듣고는 마음놓고 쉬기로 했는데, 그래놓고서는 지금 거실에 에어컨 틀어두고 이렇게 일기 쓴다고 넷북 들고 오고, 구몬영어 꺼내오고, 책 꺼내오고, 시사인 가져왔다. 나란 인간... 뭐지........ 


아무튼 쉴것이다.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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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