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겸 가수) ㅇㅅㅇ 을 보면 L 생각이 난다. ㅇㅅㅇ의 영화라면 두 편 정도를 보았는데, 그는 아주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고 조곤조곤한 말씨를 지녔을거라 생각이된다. 그가 내게 주는 이미지가 그것인데, L 이 내게 아주 예의바른 남자로 남아있고, 나는 그가 그토록이나 예의바른 걸 몹시 좋아했었다. 요즘 트윗을 보면 예의바른 게 섹시하다는 말들이 보이던데, 격렬하게 동의하는 사람으로써, 아, L 은 그때의 나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였나, 를 떠올렸다. 나는 그의 차분하고 정중한 말투를 참 좋아했었는데. 몸에 밴 매너와 예의까지도.
- 케이블에서 잠깐 예고를 보여준건지 인터넷에서 인기있는 영상으로 본건지 모르겠지만, 아주 잠깐 [효리네 민박]에서의 이효리와 이상순을 보았다. 그들 부부가 거의 완벽하게 다정한 삶을 사는 걸로 보인다는 얘길 종종 듣게 되는데, 내가 잠깐 본 영상속의 이상순은 화장실 청소를 하며 변기를 뚫고 있었고, 그 일정이 끝난 한낮에 이효리는 그에게 '오빠 우리 와인 한 잔 할까?' 라고 물었으며, 이상순은 그에게 '좋지' 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아이유와 셋이 파스타에 와인을 마시더라. 그 장면이 진짜 너무 좋은 거다. 그 장면은 모든 걸 담고 있는 장면이라 보여지는데, 일단 상대에게 '(한낮에) 와인 마실까' 라고 제안하는 것과 거기에 '좋지'라고 대응하는 장면에서, 그 둘이 서로 그간 잘 맞아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거다. 합이 좋다고 해야하나. 이게 한 쪽만 술을 좋아하고 한 쪽이 좋아하지 않아도 잘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우리 둘이 한 낮에 와인 마시는 일' 쯤은 '언제든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서로 인지하는 것 같다 해야하나. 그러니까 마실까? 하니, 응, 할 수 있는 그 편안함과 익숙함이 무척이나 부러운 거다. 게다가 이 장면이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그들이 평일 낮에 술을 마셔도 가능한 삶을 산다는 데에 있다. 그 편을 내가 본 게 아니라서 사실 그 날이 주말이었는지 평일이었는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이효리와 이상순이라면, 그 날이 평일이었어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 게 아닌가. 나로 말하자면 평일엔 회사를 다녀야 하고, 지금의 이 보직을 맡고 있는 한 '술이나 한 잔 할까' 가 평일 낮에 가능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런데 이효리와 이상순이라면(본인도 잘 알고있다시피),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고, 그러므로 다음날 아침의 출근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내가 단순히 '이 낮에 술을 마시고 싶다'라는 기분을 그대로 실행으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고, 혹여라도 술이 술을 마셔서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해도, '아, 내일 일어나서 회사 어떻게 가지' 같은 고민을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이 장면은 그 자체로 너무나 완벽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거다. 아아, 그거슨 나의 로망인데 ㅠㅠ
그러니까 나는 한낮에, 대낮에, 다음날에 대한 걱정과 고민 없이 편하게 룰루랄라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많은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인데, 그래서 여행지에 가면 막 아침에도 술마시고 점심에도 술마시고 저녁에도 술마시고 이렇게 하는데, 평소의 평일낮에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짜릿함이 있는 것이다. 아, 돈이 있는 삶이란, 내가 하고 싶은 그걸 그냥 고민없이 할 수 있다는 데에 있어. 이효리와 이상순이 대낮에 와인을 마시고 싶어서 와인을 마시는 삶은 너무 이상적이야, 나의 로망이야, 그런데 내게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그런 장면이었어.. 힝 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어제는 여동생을 만나 단둘이서 광화문에서 영화를 보고 스테이크를 먹고 와인을 마셨다. 인사동을 걸으며 엽서도 샀고. 여동생은 '나랑 둘이 당일치기 여수갈래?' 라고 내게 물었지만, 아아, 나는 월요일에 회사 가야 하는데, 다가오는 주말에 창원도 가야하는데, 도무지 당일치기 여수를 할 자신이 없어서, 나는 너를 만나고는 싶지만 여수는 자신없다' 했더니 여동생은 '혼자 다녀올게' 했더랫다. 그랬는데 돌아오는 기차표가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다 매진이라 하는수없이 나와 광화문행을 택했다. 그래 언니, 영화보고 밥먹자, 하고. 여동생은 아이들 없이 혼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게 절실했고, 나랑 이야기나눈 지도 오래되어 나를 보고 싶어했다. 제부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여동생은 나를 만나러 나왔다. 여동생은 약속시간보다 훌쩍 일찍 나와 광화문 교보에 가서 책을 보았고, 그러다 나를 만나서 투썸에 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나눠 마셨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내가 검색해둔 레슽토랑까지 한 삼십분을 걸어 함께 갔고, 대기를 타야 하길래 이름을 적고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사이 조카1과 조카2가 전화를 걸어오더라. 최근에 배앓이를 했던 타미는 '엄마, 삶은 계란 먹어도 돼?' 라고 여동생에게 전화하고, 화니는 '엄마 보고싶어' 이러면서 울고 ㅋㅋㅋㅋ 그러다가 나중에 또 타미가 전화해서는, '엄마 설사 안하고 예쁜 똥쌌어'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동생은 거기다대고 '응, 잘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음식 조심하고 내일부터 먹고 싶은 거 조금씩 먹자' 하고 얘기했다. ㅋㅋㅋ 귀여워 ㅋㅋㅋ
그리고 여동생과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과 제부의 이야기, 본인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여행 이야기와 요즘 내가 하는 공부 이야기 등등. 둘다 요가를 하기 때문에 요가 이야기도 나누었고, 여동생은 내가 요가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에 자신이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얘기했다. 쉴 새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동생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나 스벅카드 부자야, 스벅 가자 커피 사줄게' 하고서는 여동생에게 카페모카를 사주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여동생이 내게 '언니는 B 때문에 너무 화가 나거나 답답하거나 신경질 난 적 없어?' 묻더라. 나는 여동생에게 '응 그 사람은 참 잘해서 사귈 때는 진짜 빡칠 일이 없어. 세상 다정한 남자고 다 되게 잘맞지. 그런데 사귀지 않는 사이일 때는 졸 빡칠 때가 많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맘대로 되지 않는데서 오는 딥빡침이 종종 오곤하지..... 그것은 그러나 그의 어떤 잘못된 행위라기 보다는 관계에서 주는 불안정함 때문일테다.
- 그런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즐겁고 지금 행복한대로 잘 지내고 있지만, 혹여라도 내가 이 관계에서 또 불안하거나, 욕구불만이거나, 이 상황에 나를 놓지 말자는 생각이 들면, 억지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과감히 손을 놓아야겠다고. 그에 대해서라면 '절대로 손을 놓지 말자, 어떻게든 붙들고 있자' 같은 게 내 안에 강하게 자리잡았었는데, 그 손을 잡고 있는 게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고 있지는 말아야겠다고. 좋아한다고 다 잘 맞는 게 아닌것처럼 좋아한다고 다 옆에 두어야만 답은 아니니까. 이렇게 좋고 이렇게 잘 지내는데 이렇게 행복한데, 이게 영원하진 않을 거다. 길지도 않을 거고. 혹여라도 이것이 어떻게든 또 나를 힘들게 한다면 버티지 말아야지.
앗. 2007년 오늘, 우리는 처음 만났었네!!!!!
- 어젯밤부터 또 훅- 우울이 찾아와서, 아, 조심하자, 생각하고 있다. 그 밤에 약을 먹을까 하다가 아니야, 먹지말자, 하고는 안먹었는데, 오늘 회사와서는 안되겠다 싶어 우먼스 타이레놀을 한 알 꺼내먹었다. 자꾸 우중충하고 슬프고 우울한 생각이 찾아오려고 하는데, 잘 버텨내야 한다. 온갖 사소한 걸 우울한 설정으로 자꾸 바꾸고 있어. 집에서 싸가지고 온 달콤한 멜론을 생각해야지. 금요일 밤에 만난 사람들과 얼마나 즐겁게 수다 떨었는가를 생각해야지. 여동생이 조카들과 함께 여행가자고 했던 거 생각해야지. 오늘부터 막내 휴가라 혼자 일할 거 생각하니 또 스트레스와 긴장이 찾아온다 ㅠㅠ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꾹 참고 있다 ㅠㅠㅠ 그런데 어젯밤에 잠을 못자서 잠이 쏟아질텐데, 1층 까페 커피 마시고 싶은데... 아, 혼란하다 혼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