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수 년간 정서적, 육체적 애정 관계로 만나온 파트너가 있었음에도 다른 사람을 약 2년 정도 만나 일 년 가까이 정식으로 연애를 했습니다'
로 시작되는 글을 어젯밤에 읽었다. 어젯밤에 이 글을 읽고, 이 글을 쓴 당사자와 내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간 그 사람이 호감형의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망을 했다. 그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책과 클래식음악 그리고 페미니즘 이었으므로, 그는 다른 남자들보다 더 젠틀하고 말이 통할거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그와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고 싶다거나, 말을 걸어보고싶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SNS 상에서 어느정도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서, 이런 사람이라면 내가 만난다 해도 싫지 않을 사람이겠구나, 정도로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아주 많은 여자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는데, 그는 이렇게, 쉽게 말해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거다.
양다리 걸치는 일이야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있는 일이고, 저 사람에게만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저 첫문장이 아주 오래 내게 남아서 계속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지난 수 년간 정서적 육체적 애정 관계로 만나'온 사이라는 건,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이게 소위 우리가 말하는 그 '애인'이라는 거 아닌가? 그런데 또 '정식으로 연애를 한' 상대는 따로 있단다. 그렇다면, 연애는 무엇을 나누는 사이인가. 연애야말로 정서적 육체적 애정관계로 만나는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왜 전자는 그저 '정서적 육체적 애정관계로 만나온' 사람이 되고, 후자는 '정식으로 연애를 한' 상대가 되는거지? 연애는 뭐지? 저 사람의 입장에서 한 사람을 '정서적 육체적 애정관계'로 부르고 다른 한 사람을 '정식으로 연애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 기준은 뭐였을까? 게다가 그 오랜 관계를 유지한 소위 '파트너'를 만나면서 '정식으로 연애'를 한 게, 지금의 여자친구가 처음도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 그 사람에게 파트너는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옆에서 정서적 육체적 애정관계를 맺고 있던 그 사람은, 그간 자신이 그의 애인이라고 생각해오지 않았을까. 설사 아니라면, 그 오랜 시간 그의 옆에 있으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글쓴이가 위의 글을 쓰기까지는 스스로의 반성에 의한 것이었다기 보다, 이 관계를 둘 모두에게 들켰기 때문인듯한데, 그 과정에서 그 중 한 명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그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 사람이 둘 모두에게 들켰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고 악행을 반성한다 한거지, 안들켰다면 계속 이랬을 것이다' 하는 거였다.
오래 관계를 맺었던 사람도, 여자친구라는 사람도 이 일에 얼마나 많이 상처입고 분노하고 속상했을까. 둘 중 어느 입장이라도 충분히 화가나고 속상하고 상처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누가 더하고 덜한 게 아니라, 둘 중 누구여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여..
정서적 육체적 애정관계, 라는 것에 대해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서 혼란스럽고 마음이 아팠다. 정서적 육체적 애정관계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왜 정서적 육체적 애정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과 정식으로 연애를 한단 말인가. 왜 정식으로 연애를 하면서 다른 누군가와 오랫동안 정서적 육체적 애정관계를 맺는다는 말인가. 정식으로 연애하는 사람과 정서적 육체적 애정관계 사이에는 다른 무엇이 있길래 그것을 전자와 후자로 나눈단 말인가. 이건 그냥 세상에 넘쳐나는 숱한 양다리 이야기중에 하나일 수 있지만, 나는'정서적 육체적 애정관계'라는 워딩 앞에 쉽게 이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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