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8. 22:44

- 연휴중에 하루는 제부랑 술을 마셨다. 뭐 자주 있는 일이니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번에 술을 마시며 대화하다가도 또 잠깐 욱했더랬다. 그런 한편 내가 되게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너무 감정적이고 감정만 앞서는구나 싶었던 거다. 내가 좀 더 공부를 많이 하고 더 많이 알았다면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빡치기보다는 뭔가 좀 더 조리있게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그게 아니다' 라는 말을 하는데 내게는  흥분만이 더 많은 것 같은 거다. 그러다보니 얘기하다 말게되고. 이번엔 너무 빡치는 소리를 해서 뭔가 제대로 반박하고 싶었는데, 내가 그걸 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내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좀 더 공부하고 좀 더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적으로만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틀린 것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그런 한편, 엄청 외로웠다. 제부가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거라고, 그거 틀린거라고, 그거 잘못된거라고 누군가 옆에서 말해줬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거다. 나는 그동안 나랑 생각이 잘 맞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고, 그사람들중 누구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흥분하는 게 먼저이기보다는 조리있게 더 잘 반박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거다. 얼마전에 만난 남자사람1이 그런 얘길 했었다. 자기는 처남하고 대화가 안통해서 아예 말 안하고 산다고. 그 분 생각이 나면서, 나도 제부랑 말안하고 살까, 이제 보지 말고 살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내가 감정이 너무나 앞서서 생각하게 된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사랑하는 여동생의 남편이고 조카들의 아버지인데. 그러고보면 얼마전 트윗에서 본 것처럼, 나랑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진짜 기적에 가까운 것 같다. 또한 결국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게 만드는 것은 1%의 어떤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부에게는 수없이 많은 장점이 있고 그 장점들중에 몇 개만 들어도 다른 사람들은 '되게 잘한다', '신랑 잘만났다'등의 얘길 하고 여동생 역시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든든해한다. 나도 그의 장점을 몇 개나 꼽을 수 있지만, 장점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여동생은 참을 수 있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주말내내,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일에 관심을 더 가지고 더 열심히 책을 읽자고 생각했다. 



- 내가 책을 읽는 게 처음부터 공부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 나는 공부라는 게 나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고 앞으로도 내가 공부를 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간 읽어온 책들이 저절로 나에게 공부가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책으로부터 온 것이더라. 만약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또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또한, 지금과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전혀 다른 관계를 가졌을테고. 그런 의미에서 책은 나에게 아주 좋은 공부수단이었다. 그러므로 이걸 놓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책 읽는 게 재미있어서 시작한거였지만, 어떻게든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 것 같다. 어릴 적에도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그 집에 있는 책들을 읽느라 친구들과 노는 걸 소홀히 하곤 했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댁에 아이들하고 놀러가서도 아이들은 선생님과 노는데 나는 선생님의 책들을 읽었더랬다. 재미있어서 그랬다. 책 읽는 게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게 쌓이고 쌓이다보니 어떻게든 공부가 된 것 같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도, 쉰이 되고 예순이 되고 백살이 되어도, 글씨를 읽을 수 있을 때는 계속계속 책을 읽어야겠다.



- 어제는 슬픈 소식을 전해들었다. 슬프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질 않는, 무거운 소식이었다. 그 슬픔의 무게가 너무 커서 주말 내내 너무나 우울했다. 이 무게를 감당하는 게 힘에 겨워서 누구에게든 전하고 싶었다. 전하는 순간 내게서 조금은 그 무검움이 덜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나 그 무게가 상당해서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주말내내 그 소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어깨 위에 묵직하게 내려앉아있다. 가슴에도 턱 박혀있는데 이걸 어째야 할지를 모르겠다. 이 얘길 하고 싶어서 전화를 할까, 전화기를 여러번 들여다보고, 메일을 보낼까 메일창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이렇게 밤이 깊어가고 있다.



- 그 슬픔의 무게 때문에 묵직한채로 연휴의 마지막날을 보내다가, 갑자기 일상이 지긋지긋해졌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게 싫었고, 출근해서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도 싫었다. 또다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당장은 퇴직금으로 살 수 있을테니, 일단은 그냥 그렇게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출근해서 보쓰를 챙겨야 한다는 사실이 한숨났다. 어딘가로 가고 싶어졌다. 오른쪽 날개뼈 있는 데가 너무 아픈데, 그냥 여기에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이 아픔 속에. 이 아픔 속에 일상의 지긋지긋함이, 그리고 어제 들은 슬픔의 무게가 다 들어있는 것 같다. 너무 아프다.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하루  (8) 2016.05.11
남의 연애  (2) 2016.05.10
지갑과 오리  (2) 2016.05.04
섹스와 욕  (2) 2016.05.02
레스토랑과 화장실  (0) 2016.05.02
Posted by ssa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