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친구와의 대화.
나: 전남친은 왜 찌질한 캐릭터가 되어버릴까요?
친구: 그러니까 전남친이죠.
오늘 친구와의 대화.
나: (현재의 연애에 불만을 가지고있는 친구에게) 현남친이 곧 찌질한 구남친으로 변질되겠네요.
친구: 구남친은 모두 구질구질하죠.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만나 연애를 하고 연인이 되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 연애의 감정이 식는 순간이 온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든 혹은 특별한 계기가 없든 그 연애는 결국 깨어지고 만다. 오랜시간 아내를 사랑해온 '줄리언 반스' 마저 '모든 사랑은 비탄의 이야기다'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연애가 끝났다고 해서 서로에 대한 그리움의 크기 혹은 미움의 크기 같은 것들이 같지는 않은 바, 어느 한쪽은 냉정하게 잘라내는 반면 어느 한쪽은 자꾸 미련스레 툭툭 건드려보기 마련인 것 같다. 연인은 두 개인으로 이루어지고, 한 쪽이 냉정하고 한 쪽이 미련에 떡칠된 형태로 어떻게든 역할 분담이 되는 것 같다. 내가 될 수도 있고 상대가 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다만 확실한 건,
자니?
같은 전형적인 전남친(혹은 전여친)의 문자는 상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연애동안의 즐거웠던 혹은 좋았던 기억마저 자꾸 퇴색시킨다. 사람은 대부분 상대의 마지막 모습을 가슴에 남기게 되는데, 자꾸 찌질함을 업그레이드 시키면 그전의 좋았던 시간들은 애써 떠올리려 해도 잘 되지 않게 되는 법.
주말에 전남친에게 시달리는 꿈을꿨다. 깨고나서 피곤했다. 답답했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졌다. 혹여라도 전남친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B 가 다른 경로로 혹은 다른 식으로 알게되면 기분 나쁠 터, 토요일 오전 통화에서 나는 그에게 내 꿈 얘기를 하고, 사실은 스트레스 받고 있었어, 라고 말했다. 전남친에 대한 걸 현재의 연애 상대가 알게되는 게 유쾌할리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말하고나니 약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난 한 주는 몹시 힘든 한 주였다. 사람들이 모두들 날을 세우고 나를 공격하려고 마음먹고 준비, 탕- 한 것 같은 느낌. 지친 한 주였고 피곤한 한 주였다.
- 금요일 밤에는 B 랑 통화중에 서로 마음이 상한 채 전화를 끊었다. 끊고나서도 속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는데 미안했다고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다. 미안하다고 말해준 것이 고마웠지만,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전화가 왔다. 그가 내게 사과했다. 나는 그 사과를 그저 '받아들였다'. 더한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채로 그저 '받았다'. 그러면서 여러차례 생각했다. 그가 미안하다고 사과해주는 사람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한참을 통화하다 외출 준비를 하기 위해 끊고 밥을 먹는데, 밥을 먹다가 '그렇다면 나는 왜그랬을까' 를 생각해보게 됐다. 그는 '우리 둘 다 평소랑 좀 달랐다'고 했는데, 나는 왜 달랐을까? 그저 그의 말에 서운해서 달랐던건가, 생각하다가, 아, 나는 그가 나를 조금이라도 안좋게 볼까봐 전전긍긍하는 구나 싶었다. 그래서 자꾸만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의 말에 반발을 하게 됐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사과할 차례인 것 같다. 나는 샤워를 하고 나가야 하는데 그 사이의 시간을 이용하여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신에게 못나게 보이는 것 같아서 나도 자꾸 아니라고 박박 우긴 것 같다, 미안하다, 고. 우리는 전날의 통화에서 서로에게 자신의 말이 닿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터다. 그는 그의 말을 하고, 나는 나의 말을 하고. 그는 내 사과를 듣고서는 '사과해줘 고맙다'고 했다.
외출을 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싸우지 않고 또 서로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며 지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렇게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한 다음에 돌이켜보며 사과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나는 사과가 인색한 사람이었고 사실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또 이런 식으로 내가 바뀌어가는 구나 싶으면서 싫지 않았다. 어제 왜그랬지? 내가 왜그랬지? 생각해보게 하고 또 미안하다는 말을 입 밖에 내게 한 건, 그와의 관계가 혹은 그가 내게 한 일이다.
- 일요일에는 여동생 가족들이 왔다. 여동생은 타미를 데리고 외출하고, 제부와 남동생과 나는 냉면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제부네 집에 가면 항상 제부가 맛있는 걸 다 사주면서 '우리 집에 왔으니까 내가 사는게 당연하죠' 라고 말하던 터라, '내가 쏠게요' 라고 제부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계산은 내가 하겠다, 라고 생각하고 갔다. 처음 가보는 함흥냉면집에 가서 물냉면 세그릇을 시켰는데 갑자기 제부가 '모듬수육한접시 주세요!' 하는게 아닌가.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낼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수육까지 시키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처형 뽀대가 있지, 계산을 하는데 빌지를 집어들면서 내가 낼게요, 라고 하자 제부가 아니라고 자기가 낸다고 하는 거다. 나는 '우리 동네잖아요, 내가 살게요' 하고 호기롭게 계산했다. 그리고 집에와서 혼자 궁시렁거렸다. 아씨, 수육은 왜 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