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만난 남자사람은 녹색당원이고 선거운동도 했던 분이다. 환경운동도 같이 하고 계신데, 만날 때마다 참 대화가 잘 된다고 느끼게 된다. 언제부턴가 남자들 만나서 대화하는 게 몹시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는데, 그래서 별로 만나고 싶어지지도 않았었는데, 이 분과는 그 피곤함이 없다. 짜증나는 시선이라든가 하는 것도 없고 말할 때 늘 조심하려고 하셔서 대화가 즐겁다. 어제도 공감능력 없는 사람에 대한 욕을 (내가) 실컷 했는데, 이런 것에 대해 남자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니 좋다고 생각했다.
B 와는 연애할 때 매일매일 통화를 하고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을 대화를 나눴었다. 이게 알게모르게 나에게 계속 영향을 미쳤던건지, 이별 후에 되게 영혼이 말라가는 것 같은 거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는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해도 좋으니 계속 영혼이 충족되어 있다고 느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툭, 끊어져버리니 점점 말라비틀어지는 느낌? 그래서 아, 나에게 대화는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구나, 그래서 내가 그간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자 했던 거구나 싶더라. 늘 이야기를 많이 나누던 사람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고, 그 영향으로 친구들도 한동안 안만나니 영혼이 진짜 바스라질 것 같았다.
그런참에 어제 만난 사람과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니 좋더라. 아 참 좋구나, 했다. 역시 나에게는 대화가 필요하구나, 하고. 아주 오랜만에 영혼이 촉촉해진 느낌...
영혼만 촉촉해지면 되었을것을, 대화가 잘 통한다고 술을 진탕 퍼마셨더니 어제 집에 갈 때 진짜 힘들더라. 게다가 상일동행은 오래 기다리래. 에잇. 그래서 강동역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진짜 너무 힘든거다. 같이 술을 마신 상대에게서 잘 들어갔냐, 안부 문자가 왔는데, 진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는 거다 ㅠㅠ 답 해야 하는데...하면서 답을 못하고 집에 가서 씻고 뻗어버렸는데, 답이 없자 걱정스럽다는 문자가 하나 또 와있더라. 내가 그 문자 두 개를 본 건 새벽 네시.. 난 누구? 여긴 어디? 이러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방에 불도 안끄고 자고 있더라. 새벽 네시에야 뻗어서 문자에 이제야 답한다고 답장을 보낸 뒤에 다시 잤는데, 후...잠을 더 자야 술이 깨는데.... 지금도 어지럽다.
오늘 아침에, 술을 진탕 퍼마시고 힘들게 집에 가던 내가 생각나면서, 그리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문자도 보내지 못하는 나를 생각하면서,
아, 역시 나는 연애에는 안맞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라면 상대를 화나게 하겠어. 술 취해서 연락 안되면 상대는 얼마나 걱정할까.
역시 싱글이 답이야..
을지로 노가리집 여자사장님께서 결혼했냐 물으시더니 안했다는 나의 대답에 중신서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됐다고, 결혼 안하고 살거라고 말씀드렸다. 와- 인간이 얼마나 잘 살아왔으면 자주 가던 호프집 사장님이 중신을 서겠다고 해. 무려 술을 마시러 가서 술 마시는 단골인데 중신 서고 싶다니, 괜찮은 인간은 술을 아무리 퍼마셔도 괜찮은 사람임이 다 드러나는가 보다. 이거 너무 웃기다. 호프집 사장님이 중신 서겠다고 단골 손님에게 말하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