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9. 15:10

- 여동생과 제주의 밤, 와인과 맥주를 나누어 마시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종국에는 각자의 잘난척으로 마무리 하느라 바빴지만. 우리는 가족이다 보니 당연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는데, 우린 한 아버지를 두고 각자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고 다른 형태의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여동생에겐 이게 꽤 낯선 경험이었던 것 같고, 나에게도 역시 마찬가지.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여동생에게 아빠는 '위기의 순간에 언제나 옆에 있어준', '언제나 본인의 편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준' 존재였다. 반면 나에게 아빠는 '무능력한'으로 정의되고 있었다. 여동생은 내가 아빠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는 것에 꽤 놀란 눈치다.


물론 우리 아빠는 식구들을 굉장히 아끼고 사랑하신다. 아마 수치로 환산한다면 다른 아빠들 보다도 월등히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게다가 다정다감하며 우리랑 대화를 많이 하신다. 나에게도 물론 수없이 많이 사랑을 표현하시고,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나는 물론, '알고있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걸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나 역시 응당 상대를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빠를 사랑하느냐? 이건 글쎄, 잘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인데, 실제로 울엄마의 경우 '아빠가 너한테 엄청 잘해주잖아' 라고 하고, 나 역시 '응 그렇지' 라고 대답하면서도 '무능력해'가 먼저 튀어나와 버리는거다. 여동생과 얘기 하다가 과거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나는 내가 어릴적에 받은 치유되지 않은 바로 그 상처가, 아빠의 무능력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추측을 하게 됐다. 요즘의 나는 나의 어릴적 트라우마를 어떻게든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고 이것은 신경정신과에서 해결가능한 일인가 심리상담사로부터 해결 가능한 일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됐든, 내가 내린 결론과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빠의 무능력을 내가 끔직하게 여기는 건,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든게 그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건데, 이렇게 연결 되는거다. 


나는 어릴 적 폭력에 노출됐다-아빠 엄마가 없었다-아빠도 돈 벌러 갔지만 엄마도 돈 벌러 갔다-엄마가 돈을 벌러 가는 건 잘못한 게 아니다-그렇지만 아빠가 돈이 많았다면 엄마가 돈을 벌지 않아도 됐을것이고-그렇다면 나는 폭력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나에게 내린 잠정적 결론인데, 그러므로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내야 하는가가 남아있다. 차라리 기억이라도 하지 못한다면 좋을것을. 그래서 나는 마음이 따뜻하고 대화가 가능한 남자가 좋아 사귀면서도 그에게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거침없이 돌아서게 되는걸지도 모른다고, 거기까지 생각을 발전시켰다. 이게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겠지만.


내 정신 어딘가는 지금 병들어 있는걸까?





- 제주에 다녀오니 엄마는 아빠에게 서운한 게 있어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이었고, 나는 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굳이 엄마랑 마주 앉아 면세점에서 사온, 내가 여태 산 것 중에 가장 비싼 와인을 꺼내 따랐다. 사실 나는 이 와인을 내 나름의 '61년산 슈발블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므로 대출을 완전히 상환하게 되는 날 혼자 꺼내 파티 하리라, 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트레스 받은 엄마를 보니 이 위로의 자리에 이 와인을 따는 것은 결코 잘못하는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사실 더 깊은 마음으로는 '더 비싼걸 사서 61년산 슈발블랑 삼지 뭐' 하는 생각도 있었고. 킁. 남동생과 엄마와 나, 셋이 식탁에 앉아 제부가 주고 간 스테이크를 구웠다. 마침 호텔로부터 뽀려온(응?) 휴대용 버터도 있던 터라 스테이크에 넉넉하게 발랐다. 맛있었어..




저기 보이는 저 팔뚝은 남동생의 것. ㅎㅎ

그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나는 그러니까 왜 결혼을 하고 왜 자식을 낳아서 인생 피곤하게 사느냐고 엄마에게 말했고, 남동생은 나에게 누나는 왜 자꾸 부정적인 면만 보는거냐고 지청구를 늘어놓고, 엄마는 그래도 너희들이 또 나 스트레스 받았다고 이렇게 위로도 해주잖니, 라고 하는거다. 엄마, 우리가 위로를 해주는 이 과정이 그러니까 아빠랑 결혼해서 잖아. 결혼 안하면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으니 스트레스도 위로도 없겠지, 라고 말했다가 엄마랑 남동생한테 대체 왜 그러느냐고 또 지청구를 먹고...하하하하하. 

득달같이 달려들어 아빠 험담을 우라지게 하다가 또 아빠를 이해하게 되서 아빠편이 되어 얘기도 하다가, 결국 남동생과 함께 외할머니 계신 곳으로 가 삼겹살을 구워 먹고 술을 마시자고 급결론을 내리니(왜 이야기가 이런 방향으로..) 엄마는 그제야 소리내어 깔깔 웃으며 이모에게 전화해서는 '너도 와, 얘네들이 너도 같이 술먹자네, 반차내고 오래~' 라면서 기뻐하는 거다. 여튼 그것은 엄마를 위로하기 위한 최고의 해결책이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와 함께 노는 것. 그자리에서 스맛폰의 달력을 열어 할머니네 가는날을 정해 추가해두었다.




-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ㅎ호텔은 국내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 아닐까 싶은데, 국내외를 통해서 내가 갔던 숙박시설중 가장 최고였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지난번에 갔을 때는 없던 네스프레소 머신이 보였다. 나 사실..캡슐커피 한 번도 안마셔봤어...그래서 어떻게 하는건지도 몰라....우리 집에도 없는데 호텔의 무려 객실에!! 이게 있다니. 여동생과 나는 설명서를 읽어가며 커피를 내렸다. 여기 있는 거 다 내려먹고 가자, 라고 깔깔대며. 캡슐커피를 뽀려가고 싶어도 어차피 집에 머신이 없어 -0-








- 여행으로 지친 몸을 바로 쉬지 못하고 피곤에 쩔은 상태에서 또 술을 마시고 바로 자서 아침에 좀 유쾌하지 못한 상태로 잠에서 깼는데, 핸드폰에 문자가 와있었다. JS의 사진이었다. 지금 있는 곳의 사진 좀 찍어 보내줘, 셀카도 포함해서. 라고 말했더니 그렇게 한 것. 활짝 웃는 얼굴이 너무 좋아서 사진을 보자마자 웃어버렸다. 나빴던 기분도 좋아지고. 우울할때마다 보면서 웃어야지.




- 결혼은 구역질 나지만, 동거라면 괜찮겠다, 고 생각한다. 가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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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4. 9. 22. 09:30




졸리면서, 무척 졸리면서도 안 졸리다고 눈을 부러 크게 뜨는 아이. 제 외할머니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갓난장이 제 동생을 예쁘다고 할 때마다 꼭 그 사이로 파고 들어가 저를 봐달라고 한다. 한창 재롱질 시작한 둘째에게 모두 예쁘다 할 때, 남동생과 나는 꿋꿋하게 여전히, 타미가 훨씬 더 예쁘다고, 그건 아마 이모와 삼촌이라 그런 것 같다며 우리 둘은 둘째보다 타미를 훨씬 더 많이 본다. 


눈 밑에 작은 상처가 나있어서 그게 무어냐 물었더니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가 할퀴었단다. 아마도 하나의 장난감을 가지고 티격태격했는가본데, 눈 밑의 상처를 보니 정말 큰일날 뻔 했다 싶으면서 또 무척 속상한거다. 울엄마랑 여동생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눈 밑에 상처가 있는 걸 보고 너무 속상해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너도 때리고 할퀴어야지!' 했단다. 그런데 타미는 그러면 선생님한테 혼나..했다고.


하아- 너무 힘들다.


나는 엄마랑 동생이 타미에게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때리고 할퀴고 꼬집는 것은 나쁜 거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말라고, 그건 나쁜 짓이라고 해서 저 아이만 자꾸 상처를 입고 돌아오면 어쩌나 싶어져 어찌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거니까 그냥 넌 맞기만 하렴, 하는 건 아니니까. 엄마는 맞고 들어오는 것 보다는 같이 때리는 게 낫다고 하고 나는 도무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저 아이가 누군가를 때리는 아이가 되는 것도 싫고 저 아이가 누군가에게 맞고 들어오는 것도 싫다. 아이들끼리의 티격태격이니 이건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이 일을 보니 앞으로의 일들이 너무나 걱정이 되는거다. 저 아이도 이제 학교를 가게 될텐데, 더 거친 세계에 자꾸 들어가게 될텐데.


선생님한테 혼날까봐 눈 밑에 상처를 입고도 한 대 때리지도 못한 아이의 마음이 너무 여린 것 같아 또 그건 그것대로 속상했다. 집에서는 제 할미에게며 엄마에게며 그리고 이모에게도 큰소리 떵떵 치는 아이인데, 나가서는 선생님 한테 혼나는 걸 무서워하다니. 뭔가 속이 터지기도 하고.. 하아- 뭔가 지혜로운 방법이 있다면 내가 기꺼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데, 나는 다섯살 아이가 다섯살 아이한테 상처를 입고 돌아온 상황에서 도무지 뭐라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금요일에는 여동생 생일이어서 안산엘 갔다. 홍콩 갈 때 사왔던 양주를 들고갔고 제부는 얼음을 얼려두고 꽃게와 대하를 잔뜩 사와 배터지게 구워주었다. 졸린 타미는 제 삼촌과 장난 치고 놀며 크게 웃었고, 나는 그게 좋다고 행복해서는 영상을 찍고 그랬다. 취한 남동생이라 영상을 공개할 순 없지만, 그 영상을 볼 때마다 타미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와 마음이 아주 좋다. 게다가 내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눕고 남동생 무릎에 다리를 뻗어 누워서는 제 이모와 삼촌의 사랑을 고스란히 받았다. 나는 한껏 이마를 쓰다듬어 주며 우리 타미는 어쩜 이렇게 이마도 이뻐, 하고 남동생은 발이며 다리를 쓰다듬으며 다리도 이뻐, 하고 양껏 사랑해주었다. 잠깐 자리를 떴다가도 이내 다시 제 자리를 찾아 머리며 다리를 뻗는 타미를 보노라니, 이 아이도 지금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걸 알고있구나, 싶어 무척 흡족했다. 그 순간이 자꾸만 생각난다. 양껏 사랑해준 것 같아, 흠뻑 사랑해준 것 같아 흡족하다. 그런 우리를 보며 제부도 좋아했다. 



아무쪼록, 이 아이가 자라면서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모든 순간에, 우리로부터 받았던 큰 사랑이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해줄 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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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4. 9. 17. 19:05

퇴근하는 길. 걷고 있는데 마르고 코가 크며 하늘색 백을 들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혼자였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는데, 그녀의 모습이 어딘가 J와 비슷해, 나는 갑자기 J가 보고싶어졌다. J가 코가 컸던가?

보고싶다, 고 생각하는 순간
아, 나는 J를 많이 좋아했나봐,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가?
아무쪼록 단단히 살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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