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조카는 학급의 친구와 싸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일로 담임선생님께 혼난 모양이다. 자세한 사정을 알기전에 내가 들은건, 친구가 조카를 괴롭혔고, 이에 조카가 버럭버럭 화를 내며 그 아이에게 소리지르고 기분 나쁘게 말을 했고, 선생님이 이 둘을 불러 혼냈다, 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나의 조카는 선생님한테 혼나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어떡하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일로 애가 위축되면 어떡하지..하는 것과.. 여러가지 고민과 생각들이 한데 묶여서 나를 좀 우울하게 만들었는데, 그 날 저녁 조카로부터 문자메세지가 왔다. 평소에 나한테 문자는 잘 안보내는데, 가끔 전화는 해도 안그러는데 문자가 왔더라. 이모 어디냐고 물어서 집이라고 했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조카가 이렇게 보내왔다.
- 오늘 친구랑 싸웠어
?? 어?? 얘 지금 친구랑 싸웠다고 얘기하는거야, 나한테? 나는 조카가 친구랑 싸운 일, 선생님한테 혼난 일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는 척도 하지 않았는데, 조카가 이렇게 먼저 얘길한거다. 그래서 놀란 나는 아 그랬어? 왜 싸웠어? 물으니,
-비밀
이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그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그래서 지금 타미 속상해?
-어
-타미야 이모랑 전화하고 싶어?
-이모 마음대로 해
-이모가 전화할게
-언제
-지금
이러고 조카에게 전화를 했다. 여덟살 아이가 친구랑 싸워서 속상할 때 나는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위로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그래도 이 아이가 내게 이렇게 말을 했으니 내가 무언가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는, 생각나는 말들로 위로를 하려 했다. 많이 속상했겠구나, 속상한 마음 풀어지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어떻게 하고 싶어? 물으니, 선생님으로부터도 혼나고 엄마아빠한테도 혼났다고 한다.
-타미 선생님한테 혼나서 속상했겠다
-응
-타미 선생님한테 혼나는 거 정말 싫어하잖아.
-응.
내가 그랬다. 물론 선생님한테 혼나는 거 누가 좋아하겠느냐마는, 나는 그게 진짜 끔찍하게 싫어서, 누가 혼나는 걸 보는 것도 싫고 내가 혼나는 건 더 싫어서, 혼나지 않으려고 뭐든 다 잘하는 타입이었다. 지각 하지 않고, 숙제를 꼬박꼬박 해가고, 준비물 잘 챙겨가는, 그런 학생. 잔소리든 혼나는 거든, 그게 나한테 닥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어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언제나 미리미리 해오라는 건 다 잘해가는 아이였던 거다. 내 조카도 그랬다. 조카도 뭐든 완벽하게 해가려고 했다. 잘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엄청 많은 아이라, 이 아이가 선생님한테 혼났을 때 얼마나 속상했을지 너무 알겠는 거다. 어차피 친구와 싸운 일로 선생님과 부모님께 혼났다면, 나까지 거기에 대고 혼낼 이유는 없지. 이 아이가 다 혼나니 혼내지 않을 어른이 필요해 내게 연락한 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듣고는, 응 속상했겠다, 하고 받아주었다. 그리고는
-타미야 열다섯밤 자고 이모 만날 수 있어. 이모 만나러 와.
-응. 이모 생일이잖아.
-응. 다같이 저녁먹자.
-이모 선물은 뭐 줘?
아니 ㅋㅋㅋㅋㅋ 니가 선물 물어보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줄 수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넘나 웃겨서 이모는 그냥 타미 보고 싶으니까 타미 와서 이모 꼭 안아주면 돼, 라고 말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는데, 나에게 재차 강조한다.
-이모 비밀이야!
응. 알았어.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 일을 여동생에게 얘기했다. 물론, 조카의 비밀을 지켜줘야 하지만, 그래서 고민했지만, 이 일을 여동생에게 얘기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동생과 남동생에게 이 일을 얘기하고, 조카에게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하고, 그리고 나는 너무 안심이 되고 좋다고 했다. 이 아이가 속상했을 때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했다는 것, 그리고 그게 나라는 게 진짜 너무 좋아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쓰면서도 또 눈물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안심이 되고 고맙고 좋았다. 물론 더 자라면서는 이제 이런 일에 나를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그간 아이에게 의지가 될 만한 사람이었던거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아이가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래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 이 아이가 건강하게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든거다.
상황은 내가 생각한것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여동생에게 얘길 들으니, 여동생은 조카에게 '엄마는 언제나 무조건 네 편이야' 라고 말을 해줬다고 한다. '그렇지만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나빠' 하고, 그 행동에 대해서는 꾸중을 했다 하고. 조카는 선생님한테 혼난게 무엇보다 충격이었을 텐데(처음 선생님한테 혼나는 것 ㅠㅠ), 그 다음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조카와 얘기를 나누었고 조카의 기분이 좀 나아졌다 라는 긴 문자메세지를 여동생은 받기도 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고, 여동생이 내가 생각한것보다 더 좋은 엄마인 것 같아서 그것도 너무 다행이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일을 나의 아빠 엄마에게도 얘기했다. 조카야, 비밀인데 이모가 다 얘기해서 넘나 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지만 앞으로 잘 지켜줄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모가 잘못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엄마는 내 얘기를 듣다가 정말 다행이라고, 조카가 그럴 때 이모한테 전화할 생각을 해서 너무 다행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좀 서운해 하셨다.
'나한테 맨날 연락하면서 왜 친구랑 싸운 건 너한테 얘기하지?'
라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애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의 고민이나 힘든 일에 대해 얘기를 듣노라면 기운이 빠지고 에너지 빼앗기는 기분인데, 왜 조카가 내게 자신의 속상한 일을 얘기할 때는 이 아이 어떡하지, 이 아이 속상한 거 달래주고 싶다, 라는 생각만이 가득할까. 게다가 '나한테 이런 얘길 하다니, 너무 고맙고 다행이고 좋다' 하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아아, 이런 것이 바로 애정이란 것인가... 했다.
조카가 더 나이를 먹으면 아마도 친구들에게 더 많은 고민을 얘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조카를 사랑하고 또 앞으로도 조카를 사랑하겠지만, 지금처럼 조카가 나를 의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조카가 나를 의지하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힘든 일이 있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이모, 하고 부르면서 내게 얘기해주었으면 좋겠다. 비밀을 잘 지키는 이모가 되어줄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번에는 정말 미안해, 조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러분, 내가 이런 이모다. 여덟살 조카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떠올리는, 이런 좋은 이모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음..그런데 조카의 버럭버럭은...나를 닮은 것인가... ( ")
(알라딘에 올렸다가 좀 프라이빗 한 것 같아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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