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8. 09:10

- 어제는 집에서 삶은 달걀을 가져와서는 막내에게 두 개를 주고 내 것 두 개를 챙겨두었다. 냉장고에 막내가 사다 두었던 베지밀이 있던게 퍼뜩 생각나, 막내에게 '이따 출출하면 베지밀에 계란 먹자' 고 말했더니, 막내가 꺅 소리를 지르며


과장님은 어쩌면 그렇게 계획을 잘짜세요?


하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면서 이러는 거다.


과장님은 정말 잘 노시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ㅋㅋㅋㅋㅋㅋㅋ내가 못노는 걸로 유명한데 ㅋㅋㅋ 놀긴 뭘 놀아 ㅋㅋㅋㅋㅋㅋ나는 나이트도 안가고 클럽도 안가고 어떤 액티비티도 안하는데. ㅋㅋㅋㅋㅋ 맨날 내가 술과 안주를 정해서 얘기해서 그러는 듯 ㅋㅋㅋㅋ 뭔가 되게 맛있게 잘 먹는 방법을 말해준다고 그러는 듯 ㅋㅋㅋㅋ 아 웃겨가지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앞으로 나를 플랜과장 이라고 불러줘 ㅋㅋㅋㅋㅋ



나랑 뭐 잘 먹으러 다니는 e 양도 그렇고 내 남동생도 그렇고 나한테 '머릿속에 어떻게 더 맛있게 먹을까?'가 들어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다음날 점심 메뉴까지 계획하는 나로서는 먹는게 큰 즐거움이라 그런지도. ㅋㅋㅋㅋ 암튼 엄청 어제 웃겼다.


그러다가 계획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나는 계획하는 걸 싫어한다고 그간 생각해왔다. 계획은 나랑 맞지 않는다고. 무계획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MBTI 검사때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는 계획녀였던 거다! 그래서 '여행갈 때 계획 세우는 거 짱 싫어하는데?' 라고 했더니 친구가 '그건 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는 계획을 니가 세운 거' 라고 하더라.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는게, 내가 여행 스케쥴을 잡지 않는 이유는 그 스케쥴에 끌려가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여서였다. 나는 스트레스 받는 걸 진짜 싫어하고 스트레스에 진짜 취약해서, 뭔가 스트레스 받을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여행에서 스케쥴을 잡았다가 혹여라도 그 스케쥴대로 하기 위해 내가 조금이라도 스트레스 받을까봐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다만 어디에 갔으니 이걸 하자, 라는 굵직한 걸 몇 개 정해둔달까. 이를테면 뉴욕에 가서 센트럴 파크와 엠파이어에 다녀오자, 같은 거다. 이건 지키지 못할 리가 없고 그래서 성취했다는 만족감을 주며 무리한 스케쥴이 아니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게다가 여기에 다른 일정들을 예정에 없이 더하게 되니 계획한 것보다 더했다는 생각마저 준다. 이런 것 자체가 내 계획이로구나 싶은 거다. 그러고보면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머릿속에서 동선과 시간 계산 다 해 언제 일어날지를 알람을 맞추니, 나는 계획적인 여자렸다. 그렇군. 그렇지만 내가 잘 노는 여자는 아니다. 난 잘 못놀고 안논다. 막 놀고 싶다 이런 생각도 안한다. 별로 안들어. 걍 먹고 마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할 뿐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먹고 마시는 게 노는건가? 




- 어제는 백화점에 썬크림을 사기 위해 들러서 일단 스왈롭스키 매장으로 갔다. 반지의 색깔이 좀 변해서 세척을 부탁해두고는 랑콤 매장으로 가 썬크림을 샀다. 그리고 2층에 올라가 잠깐 구두 몇 개 신어보고 다시 내려와 반지를 찾았는데, 고맙습니다, 하고나서 끼우고보니 색이 변질된 부분이 그대로더라. 어? 저는 여기 색이 변해서 세척을 부탁한건데 여기 색은 그대로인데요? 라고 물으니, 그건 도금이 벗겨진거라 세척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아, 그러면 도금을 다시 해주실 수 있나요? 라고 물으니 재도금은 안된단다. 그럼 저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냥 이렇게 둬야 하는 거란다. 헐. 세척은 보석이 되고, 지문 묻는 것을 씻어내는 거지, 도금이 벗겨진 거는 어떻게 손 써줄 수가 없다며.....심하게 변색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들여다보면 좀 티가 나서, 흐음, 하고 일단 매장에서 나가다가 불쑥, 좀 좋아지는 거다. 



어? 새반지 사야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살짝 웃음이 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란 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암튼 그래서 다시 매장으로 돌아갔다. 다시 사기 위해서 사이즈를 알아두는 게 좋을 터. 저 반지 사이즈 잴 수 있을까요? 라고 물으니 이 매장에서는 한국의 종로 금은방 처럼 그런 사이즈로 반지가 나오는 게 아니라 그런 사이즈로 재는 건 불가하다는 거다. 유럽 사이즈로 나오니 유럽 사이즈로 볼 수 있다며. 제기랄 뭔말이야. 여튼 그렇지만 내가 종로 금은방 가서 반지 살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 네, 그럼 그냥 이 사이즈로 봐주세요 했다. 내가 나름 다이아몬드 불매인데 뭐 다른 매장 가서 살 일도 없을 것 같고. 일단 알아나두자 싶어서. 그랬더니 내 반지를 빼서 안쪽을 들여다보며


55사이즈네요.


라는 거다. 읭? 55사이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옷으로는 55사이즈가 안되지만, 앞으로도 내가 55사이즈가 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반지에서 55사이즈를 이룩했구나. 하하하하하하하하.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난다. 뭔가 어처구니 없는 기분으로 집으로 가는 내내 피식거렸다. 


55사이즈....뭔가.......애증의 사이즈 같은 느낌.



자, 그래서 반지를 사자, 라고 생각하고서는, 이래서 내가 아이패드를 안샀군, 훗, 했다. 아이패드를 사느니 반지가 낫지, 하면서. 그러다가 이내....으응? 아이패드 값은...너무하고 아이패드의 반값이나 반의 반값으로 사자, 룰루랄라~ 했다가 한 다섯걸음 걷고서는 으응? 명분이 딱히 좋지 않아. 이 반지가 들여다봐야 변색된 게 보이는데 딱히 사야되는 합당한 이유가 되는 건 아니야...오래 썼지..오래 써서 정도 들었고, 게다가 보는 사람들마다 이쁘다고 해. 얼마전에도 은행 갔다가 앞 창구의 직원이 손 좀 보여 달라며 어머, 무슨 반지가 이렇게 예뻐요? 하고 호들갑을 떨지 않았는가. 보석에는 아무 문제 없고 바닥쪽 링만 변색된 것이니 이대로 써도 사실 큰 문제는 없지.. 자원을 아끼자. 쓸데없는 낭비는 옳지 않아. 그냥 이 반지 쭉 쓰면 돈도 아끼고 물건도 아끼고 쓰레기도 안만들고...그치만 내가 이걸 쓰레기 만들건 아니었고 보관하긴 할거였잖아, 정들었으니까...라고 생각하다가, 아니야 명분이 안 서, 명분을 만들자. 아무런 명분 없이 물건을 들이지 말자, 라고 생각하다가. 아니 그럼, 명분을 만들면 되잖아? 라고 해서는 금세 명분을 만들어냈다. 내가 두번째 책이 나오면, 그때 나한테 선물을 하는거야! 라고. 그렇다면..좀 좋은거 사도 되지 않겠어? 아이패드 반값 정도로 알아보자. 책이 나오면. 알 수 없는 그때...음...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이패드 반값은 너무 비싸. 반의 반값으로 하자. 이러다가, 면세점이 쌀텐데, 그렇다면 제주도 한 번 갈까? 하다가, 비행기값 합치면 도찐개찐이다, ㅋㅋㅋㅋㅋ, 이러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이러고 있다.




- B 는 이번 연애에서, 내가 그어 놓은 선이라든가, 쌓아 놓은 벽이라던가, 세워놓은 담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지우고 허무는 것이 목표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우고 허물면서 자꾸 안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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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4. 7. 17:37


01:48

-나 아직 깨어 있어. 자긴?

02:03

-자긴 나랑 놀고 싶지 않은 모양?

02:20

-아무 때라도 좋으니 대답해줘. 걱정돼서 그래.

02:51

-별일 없는지만 알려줘. 아니면 나 잠 못 자.

03:03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왜 대답 안 해? (p.274-275)




"화가 나서가 아니야. 그냥 수천 개씩 쏟아지는 문자 폭격 같은건 받고 싶지 않을 뿐이야. 내가 답이 없으면 그건 그 순간에 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중에 문자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면 그때 연락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한꺼번에 수백 개씩 보낼 필요는 없는 거 아니겠어?"

"미안해, 걱정이 돼서 그랬어. 갑자기 그렇게 사라져버리니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고..."

"아니, 도대체 뭘 걱정한 건데?내가 자기한테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얘기해줬고 파티에 간다고까지 얘기했었는데."

"그냥 오케이라고만 보내줬으면 됐을 거 아냐. 나중에 통화하자고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걸 가지고...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그렇게 사라지는 대신 그냥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되는 거였잖아."

"난 사라진 적 없어. 그냥 누가 나를 그렇게 몰아세우는 게 익숙하지 않을 뿐이야." (p.278)



-나 여기 왔어.

5분도 안 돼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여기라니, 어디?"

"여기. 바 이름이....'로마'네. 커피 한잔 하고 있어."

침묵이 흘렀다.

"예상 못 했던 모양이지?"

"그래, 데리러 갈게. 5분만 기다려." 

(중략)

조금도 변하지 않는 무뚝뚝한 표정 그대로 그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왜 온 거야?"

가슴팍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솔직하기로 마음먹었다.

"보고 싶었어."

"출발하기 전에 왜 말 안 했어?"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p.300-301)





아침의 첫 햇살

저자
#{for:author::2}, 아침의 첫 햇살#{/for:author} 지음
출판사
소담출판사 | 2014-03-1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아마존 8주 연속 1위, 70만 부 판매 돌파 여성 독자들의 폭...
가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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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abine
2015. 4. 6. 14:42

점심 먹기 전에 포털에 들어갔다가 '페라가모 가방 오늘만 50%할인' 문구를 보고, 딱히 페라가모에 대한 어떤 호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괜히 한번 눌러봤다. 으응? 반값할인? 봄맞이 가방 살까? 라고. 실제 사지도 않을거면서 그냥 한 번 들어가본 것. 들어갔다가 헐- 내가 클릭한 그 반값 상품의 가격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원. ㅋㅋㅋㅋㅋ





야. 이백오십오만원이 뭐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값해서 이십오만원이어도 안살건데 이백오십오만원은 뭐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 진짜 어처구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맙게도 무료 배송해준단다.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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